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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메리앤섀퍼, 애니배로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리뷰

© 네이버 책 정보
"다들 독서가 취미라고 하니까 막상 취미로 적으면 내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야."
주변에 책 많이 읽는 사람 보기 쉽지 않다.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취미로 독서를 적어내는 사람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이럴 때, 정말로 책 읽기를 좋아해서 읽는 나로서는 약간 억울해진다. 취미로 적어낼 것이 독서 말고는 마땅치 않아 억울해하는 내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어쩌다 가끔 해야 취미지, 그러니까 책 안 읽는 사람들은 취미로 독서를 쓰는 거야. 너는 '필사적으로' 읽잖아."
책 읽어서 어디다 써요?
꼭 어디다 써야만 의미있는 활동이라면 애초에 독서는 참으로 의미가 없는 일 중에 하나다. 독서라는 활동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활자를 읽어내고 정보를 습득하는 간단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우선 독서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책의 서문부터 시작해서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작가가 무슨 말을 이렇게나 길게 하는지 하나하나 스스로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다. 꽤나 머리 쓰는 일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경우에 따라서는 책이 무겁고 부피가 커서 가방에 넣기 부담스러울 때도 많다. 이리저리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이유도 알만하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각종 전자기기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나름의 최첨단(?) 시대에 종이를 넘겨가며 책을 읽는다니, 약간은 구식일지도 모른다.
당장에 책이 내 대학교 학점을 올려주지는 못할지라도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책을 많이 읽는 것만큼 보탬이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책, 특히 문학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인생 전반에서 겪는 위기나 고난에 대한 대처 능력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는 책을 가까이 두고 읽어 온 사람들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자세에서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그리고 독서 클럽 하나로 끔찍했던 전쟁을 견디고 지나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책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의 점령 하에서 심각한 전쟁 기근과 탄압에서 맞서 살아 남은 '건지' 섬 사람들의 스토리다. 잘 알려지지 않은 외딴 섬에서 소수의 마을 사람들이 극심한 배고픔과 고통을 견뎌낸 원동력은 바로 북클럽이었다. 식량도 귀해서 숨겨 놓고 먹어야 했던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자 꾀를 낸 것은 바로 독서 클럽이었고, 이를 계기로 전쟁 이후에도 건지 섬 사람들의 북클럽은 지속된다. 책읽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책을 만나 삶의 의미를 되찾아 가는 독특하고 기발한 이야기다.
그리고 주인공은 줄리엣은 우연한 계기로 건지 섬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편지를 통해 전쟁 당시의 사연을 주고 받다가 건지 섬 사람들을 직접 조우한다. 그녀 또한 전쟁을 버텨 온 또 한 명의 사람으로 건지 섬 주민들의 힘들었던 당시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정말 별것 아닌 일로 시작된 하나의 독서 모임은 섬 밖에 있던 줄리엣은 물론 그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편지소설
특이한 점은 <건지 감자껌질파이 북클럽>은 책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줄리엣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머러스한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전쟁을 견뎌 내게 만들고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지위까지 등극한 인물이다. 이러한 줄리엣이라는 한 명의 인물이 주변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내용만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건지 섬 사람들, 가까운 친구인 시드니와 소피까지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독자에게 상상력을 있는 그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편지와 편지 사이에 놓인 사건들은 오롯이 독자들이 편지의 내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편지 형식의 전개에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끊김없이 술술 이루어진다는 점.
주인공의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실존했던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책 제목들이 편지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에밀리 브론테 전기를 썼다는 줄리엣의 이야기부터, 건지 섬 북클럽 사람들이 인용하는 각종 작가들의 말과 책의 문장들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하나하나 짚어가는 재미가 있는 대목이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통해 또 다른 작가와 책을 만나는 계기를 가질 수도 있다.
정말 책 하나로 전쟁을 버텨낼 수 있다면
동시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에게 보내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서사다. 정말 책 하나로 전쟁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 책은 단순히 독서를 했기에 끔찍한 전쟁도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는 이야기가 아니라, 북클럽이라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안에서 전쟁이라는 어려움의 시기를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다는 하나의 기적적인 스토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각자의 인물들이 전쟁을 통해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아픔들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인물들이 책과 모임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두고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은 시시할 수도 있는 북클럽 이야기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