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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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수선화에게> 리뷰


 

시를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시를 접한다는 일 자체가 사회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는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하나의 이벤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나마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온갖 형형색색의 볼펜으로 난도질 당하기 일쑤다.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비롯해 온갖 다양한 심상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내려고 안간 힘을 쓰는게 바로 시다. 시 한 번 내 맘대로 읽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그 때문인지,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는 시집을 내 돈 주고 구매해본 적이 없다. 시를 왜 돈 주고 사야하죠? 언제나 시는 가격대비 글씨가 적은, 그야말로 가성비 안 먹히는 책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러다 문득 여백이 그리워지는 시점이 왔다. 시간은 넘쳐나는데 도무지 할 일은 없던 스무살 첫 여름방학에 나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책을 삼켰다. 책의 내용은 중요치 않았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이 넘쳐흐르는 시간을 무엇으로 때울 수 있느냐 뿐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보다 눈길이 빠르기를 바라며, 꾸역꾸역 책을 쌓아놓고 읽는데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던 찰나였다. 순간 빼곡한 활자들이 어지럽게만 느껴졌다. 꼭 이렇게까지 읽어야 하나. 그만하고 싶다.

큰 맘 먹고 시집을 구매했다. 어려운 시도 아니고 그냥 현대시집이었다. 세상에, 아직도 시집을 팔릴 거라 생각하고 내는 시인들이 있다니. 내가 시집을 구매한 사람이지만, 시집을 팔겠다고 쓰는 시인이나 이걸 출판해주는 출판사나 다들 놀랍다고 생각했다. 시집을 읽는 사람은 내 주변에 하나도 없었기에,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 반박이라도 하듯 시집은 시리즈로(!) 판매되고 있었기에.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일이 설명해주는 글은 없이 짧은 몇 가지 문장들로만 페이지가 채워져있으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채 책장을 넘기는 적이 많았고, 가끔은 시인이 어려운 한자나 옛말들을 가져다 놓아서 사전을 찾은 적도 있었다. 이걸 보고 엄마는, 너는 무슨 시를 사전 찾아서 읽냐, 고 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빼곡한 활자가 아닌 여백에 숨겨진 몇 문장을 스스로 찾는 연습을 하면서 시집의 맛을 조금씩 배워갔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내 책장에 몇 안 되는 시집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는 그 몇 안 되는 시집 중 하나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서 다채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주는 시집. 여전히 모든 시를 이해할 순 없지만, 두고 두고 꺼내 읽으며 한 줄 한 줄 되새기고 싶은 그런 문장들이 있다.

오늘도 당신의 밤하늘을 위해

나의 작은 등불을 끄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별들을 위해

나의 작은 촛불을 끄겠습니다

- 당신에게

수선화에게

작가
정호승
출판
비채
발매
201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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