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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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애프터 다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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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싸우는 전쟁터가 다 다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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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 정보


사람마다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은 제각각이겠지만, 유독 자신을 '관계'로서 표현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어쩌면 관계를 통해 나 자신을 모르는 이에게 소개한다는 건 가장 쉽고 어색하지 않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 누구누구의 친구에요" 혹은 "저는 누구누구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같은 말들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처음 보는 이 앞에서 잠시동안만이라도 웃음을 짓게 만드니까. 예전에는 관계로서 자기자신을 소개하는 누군가의 방식에 대해 유난히 불평하거나 고쳐주려는 사람들을 본 적도 적지 않았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관계로서 나 자신을 정의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보다 시야가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나 자신을 포함해 내 옆, 내 행동 반경 또한 나를 이루는 하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있지, 미안한데 너 아사이 에리의 동생 아니야?"

​이 말 한 마디로 시작되는 스토리는 '아사이 에리'의 동생 '마리'의 시선을 통해 움직인다. 오직 이들의 공통점은 마리의 언니인 '에리'지만, 실제로 이야기 전개 상 언니 에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동생인 마리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존재할 뿐이다. <애프터 다크>는 비슷한 듯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자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집에 있기 싫어 밖으로 나와 카페에서 밤을 지새우는 마리는 하룻밤동안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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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한테 안부 전해달라고?"

"그것도 약간은 있을지 몰라."

"우리 언니는 트롬본이랑 오븐토스터의 차이도 잘 모를 텐데. 구치랑 프라다의 차이라면 단박에 알 것 같지만."

"사람마다 싸우는 전쟁터가 다 다른 거야."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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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남자

<애프터 다크>는 주인공인 마리의 하룻밤과 '얼굴 없는 남자'의 일상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조금은 독특한 방식이다. 얼굴 없는 남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가 알 수 없는 침입자이자 범죄자(?)라는 점이다. 특히 마리의 언니인 '아사이 에리'의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얼굴 없는 남자에 대한 묘사는 섬뜩하면서도 알 수 없는 궁금증에 빠지게 만든다. 더불어 독자들에게 이러한 얼굴 없는 남자의 '시선'을 공유할 수 있게끔 하면서 범죄 현장을 함께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들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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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의 시점이 되어 그녀를 보고 있다. 어쩌면 훔쳐보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점은 공중에 뜬 카메라가 되어 방 안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현재 카메라는 침대 바로 위에 위치하며 그녀의 잠든 얼굴을 포착하고 있다. 사람이 눈을 깜박이듯 간격을 두고 앵글이 바뀐다. 그녀의 잘생긴 입술은 한일자로 곧게 다물어져 있다.

p.31



동은 트고


"언니가 두 달쯤 전에 '지금부터 얼마 동안 자야겠다'라고 말했어요. (...) 우리는 '잘 자'라고 했어요.

언니는 식사에는 손을 거의 안 대고 자기 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웠어요. 그 이래로 계속 잠만 자요."

"계속?"

"네."

p.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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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계속해서 잠에 빠져들어 가지만, 정작 마리는 잠에 들지 못하는 밤이 더 많다. 깨어있는 모습보다 잠들어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는 언니 '에리'는 동생인 '마리'와 그다지 살가운 관계는 아니였다. 언니와의 따뜻하고 정답던 기억들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마리의 이야기를 통해, 마리가 끊임없이 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하룻밤을 지나며 마리는 서로가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던 어릴 적 언니와의 기억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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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하는 건데,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신문 광고지가 됐든, 철학책이 됐든, 야한 화보사진이 됐든,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 됐든, 불을 지필 때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불은 '오오, 이건 칸트잖아'라든지 '이건 요미우리 신문 석간이군'이라든지 '가슴 끝내주네'라든지 생각하면서 타는 게 아니야. (...)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

p.202


마리에게 기억을 되새기는 과정인 이 하룻밤은 어떻게 끝이 날까.

기한 없는 잠에 빠져들어 나올 줄 모르는 에리는 깨어날 순 있는 걸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프터 다크>였다.



 

애프터 다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비채
발매
2015.08.28.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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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운 점

재미도 있고, 특히 재미가 보장되는, '실패하기 어려운 작가'의 책이긴하나

소설치고 약간 '형이상학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얼굴 없는 남자에 대한 서술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장면은 흥미롭지만

그 감상을 말로 설명하기가 참 힘들다.(...)


또한 굉장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의 책이지만, 가끔 과도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애프터 다크>는 특히나 영화적인 기법을 사용한 점이 눈에 띄어서 그런지

완전한 팬(...)이 아닌 나로서는 좀 어색하게 느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읽는 데 무리가 있는 정도는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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