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의 첫 번째 마녀 ㅣ 토마토 화제의 문학
안드레아 카탈라노 지음, 서장혁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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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보스턴의 첫번째 마녀』





안드레아 카탈라노 / 토마토출판사 (펴냄)







표지만 먼저 떠올려도 이 책은 이미 한 편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차갑게 굳어 있는 역사 기록 위로, 붉은 기운처럼 번지는 한 여자의 얼굴. ‘마녀’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과연 마녀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 이름은 누가 붙인 것일까.






이 소설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한 발짝 옆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교수대 위에서 사라진 한 여인의 이름을, 그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남편의 시선으로 다시 더듬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마녀를 설명하려는 기록이 아니라, 마녀로 불리기 이전의 한 사람을 되찾으려는 기억에 가깝다. 약초를 다루던 손, 생명을 받아내던 부엌의 공기, 그리고 아무도 믿지 않게 된 순간에도 끝내 남아 있던 인간적인 온기들이 서서히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소설의 첫 장면은 마녀(?)의 남편인 토마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얼마 전 그의 아내 마거릿 존스는 교수형을 당했고, 그는 홀로 남겨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도 감당하기 벅찬데,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까지 '마녀의 남편'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보스턴을 떠나려는 마지막 순간마저 의심과 혐오에 가로막힌 토마스는 끝내 아내가 남긴 흔적을 더듬기 시작한다. 세상은 왜 이렇게까지 한 사람을 잔인하게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일까.






2부는 매기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녀는 산파이자 약초사로 살아가며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고 병든 사람을 돌보던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손길을 필요로 했고, 그녀 역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낼 뿐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지식이 있는 여성,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는 여성, 남들과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여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들을 살리던 손은 어느 순간 사람들을 해치는 손으로 둔갑했고, 존경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어 버렸다. 안타깝다.







가장 분노하게 되는 장면은 역시 재판이다.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법정이라기보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죄를 끼워 맞추는 무대처럼 보인다. 증거는 빈약하고 논리는 허술하지만, 사람들의 편견과 두려움은 그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마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질문은 사라지고, 유죄를 입증하기 위한 억지 논리만이 재판장을 가득 메운다. 읽는 내내 답답함을 넘어 허탈감이 압도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역사 속에서 이렇게 이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마녀'라는 이름 아래 처형된 사람들은 정말 특별한 존재였던 것이 아니라, 시대가 이해하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한 사람의 비극을 통해 마녀사냥이라는 역사적 폭력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며, 그 잔혹함을 독자 앞에 고스란히 펼쳐 놓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단지 마녀재판의 부조리를 고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끝까지 아내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토마스의 사랑이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마거릿을 '마녀'로 기록했지만, 토마스에게 그녀는 끝까지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사랑했던 아내였다. 그리고 독자 역시 책을 덮는 순간, '마녀'가 아니라 '마거릿 존스'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마녀’라는 낙인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에 대한 응시다. 존경받던 산파이자 치료사였던 마거릿은 어느 순간부터 공동체의 불안을 떠안는 존재가 되고, 사랑은 의심으로, 신뢰는 공포로 쉽게 뒤집힌다. 이 변화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언어가 한 사람을 어떻게 지워버리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소설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누가 그녀를 마녀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을 얼마나 쉽게 믿어버리는가 아닐까?




#장편소설 #안드레아카탈라노 #마거릿존스

 #마녀재판 #보스턴의첫번째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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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만 바꿨을 뿐인데 (10만 부 기념 개정판)
김민성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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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 [ 10만 부 기념 개정판 ]

김민성 저 | 모티브 펴냄







말투만 바꿨을뿐인데 삶이 달라진걸까? 제목은 많이 들어본 이 책을 드디어 실제로 만났다


저자 김민성은 CJ ENM 쇼호스트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오랜 시간 현장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마주하며 말투와 소통의 관계를 연구해온 분이다. 단순히 말하기 기술을 이론으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실제 방송과 비즈니스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작동하는 ‘말의 힘’을 체감하며 그 경험을 책으로 녹여낸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은 추상적인 조언이 아니다. 실제 사람 앞에서 바로 써볼 수 있는 말의 감각이라고 볼 수 있어 더 생생하고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 보면 말투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예쁘게 말하기”나 “친절하게 말하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세상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말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온도는 달라지고, 오해는 줄어들기도, 반대로 깊어지기도 한다. 결국 말투는 결과가 아니라 태도의 가장 표면적인 형태라는 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책은 말투 기술서라기보다, 나를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점검이기도 하다. 내가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사실은 내 감정의 습관이고, 관계의 방향이고, 때로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라는 문장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아주 작은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한다. ‘말투’라는 것이 단순한 표현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호감을 얻는 말투,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말투, 설득이 쉬워지는 말투,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말투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각각 따로 떨어진 기술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말은 상대에게 어떤 감정으로 전달되고 있는가.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말투를 ‘상황 대응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선택’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말이라도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말하라는 조언이나, 평가보다 공감을 선택하라는 문장들은 결국 관계에서의 권력을 줄이고 온도를 조정하게 한다.






또 아이에게 하는 말투까지 확장되는 구성은, 말투가 특정 관계에만 적용되는 기술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습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잘 말하는 법이 아니라 덜 상처 주면서 더 잘 연결되는 방법을 말한다. 삶의 현장에서 적극 활용해볼 생각이다.






#말투만바꿨을뿐인데 #김민성 #모티브

#말투의힘 #커뮤니케이션 #소통법 #화법

#대화법 #관계심리 #인간관계 #자기계발

#말하기 #설득의기술 #호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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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현 - 슈테판 츠바이크 시집 ㅣ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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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츠바이크 선집 / 이화북스









읽다 보면 시를 읽는다는 느낌보다 어떤 감정의 결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문장이 의미를 설명하기보다 분위기를 먼저 만들고, 그 분위기 속에서 감정이 천천히 형태를 얻는다. 그래서 이 시집은 이해하려고 읽는 책이라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마음이 머물도록 두는 경험이기도 하다.





라일락, 유월의 밤, 아침빛, 갈망, 예감, 크리스마스 같은 제목의 단어들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결을 가지고 있다.

지나간 계절과 아직 오지 않은 순간 사이에 놓인 언어들처럼, 시는 계속해서 머물지 않고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특정한 장면이 아니라, 어떤 공기나 온도에 가까운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여기서 츠바이크의 삶을 떠올리면, 그의 시는 단순한 문학적 출발점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세계를 감각하는 가장 초기의 방식처럼 느껴진다. 그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 유럽의 문화와 언어가 가장 화려하게 교차하던 시대를 살았지만, 동시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문명 자체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젊은 시절의 유럽이 지녔던 우아함과 지적 낙관은 그의 삶에서 점차 균열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 끊임없는 망명의 시간을 살아야 했다.



츠바이크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내면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있던 감정을 다시 발견하는 일 아닐까? 말로 설명되지 않았던 감정들이 문장 사이에서 천천히 떠오르고, 그 순간 시는 텍스트라기보다 거울처럼 느껴진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름 붙이지 못했던 마음을 조용히 불러내는 방식으로. 결국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지나가는 계절, 붙잡을 수 없는 감정, 이름 붙이기 전에 이미 멀어져 버리는 순간들. 그의 시 속 세계는 아름다움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사라짐을 예감한 상태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시집은 젊은 츠바이크의 목소리이면서 동시에, 훗날 무너질 세계를 이미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던 한 인간의 예감이 아닐까 싶다.






책을 덮고 나서도 몇몇 문장과 이미지가 계속해서 남아, 일상의 틈마다 불쑥 다시 떠오른다. 마치 음악처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남아 있는 어떤 리듬처럼.

조만간 또 시가 그리운 날 다시 펼치게 될 책 !!!!








#츠바이크선집,

#은빛현

#이화북스

#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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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귀 뚫기
집영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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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영어 귀 뚫기 』

집영 지음/ 모티브



영어 귀 뚫기라는 표현이 왜 이렇게까지 강조되는지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 단순히 영어를 잘하기 위한 기술서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책은 ‘귀를 뚫는다’는 말을 훨씬 더 감각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 영어 공부를 언급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막히는 것은 단어가 아니라 ‘소리’라는 점을 이 책은 반복해서 짚는다.

글로 읽을 때는 이해한 것 같은 문장이,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 경험은 아마 다들 갖고 있을 듯 싶다. 아는 단어가 이어져 있어도 문장 전체가 한 덩어리로 흘러가 버리면 의미를 놓쳐버리는 상황. 결국 영어 학습에서 가장 큰 벽은 해석이 아니라 청각적 인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오! 설득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귀를 뚫는다’는 말은 단순히 듣기 실력을 높인다는 의미를 넘어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기 전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각을 만드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머리로 해석하기 전에 먼저 리듬으로 듣고, 의미를 쪼개기 전에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는 상태. 책은 바로 이런 점을 목표로 다양한 훈련 방식과 접근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는 전제가 하나 있다. 영어는 ‘아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막을 끄고, 한국어 번역을 잠시 내려놓고, 의미를 붙이기 전에 소리를 먼저 통째로 흘려보내는 방식. 결국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이해하려고 듣지 말고, 먼저 들어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기초가 없어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단어를 몰라도 영어가 느는걸까? 문법을 버려야 하는지, 파닉스는 정말 필요한지 같은 질문들은 대부분의 학습자가 한 번쯤 부딪히는 걱정이다. 책은 이 불안을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벗겨낸다. 대신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입력을 반복하면 언어가 쌓인다는 경험적 접근을 강조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소리를 계속 듣는 지속성이라는 메시지다.


이 책이 말하는 ‘영어 귀 뚫기’는 새로운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언어 처리 방식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다. 영어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영어가 흘러오는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각을 만드는 것. 그게 가능해지는 순간, 비로소 영어는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들리는 언어’가 된다. 영어 공부 특히 말하기에 관심 많으신 분께 추천합니다


#영어귀뚫기 #집영 #영어공부 #영어듣기

#리스닝 #영어학습법 #언어습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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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롱도 - 초간단무효시와 으깨진 눈사람
김태용.멜롱도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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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김태용 / 해피북스투유








낯설고도 독특한 이 책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과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오래전에 쓴 시를 AI에게 건네며 수정을 요청한다. AI는 분석적으로 시를 고쳐주지만, 작가는 다시 수정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AI의 반응도 점차 변한다. 단순한 수정 제안을 넘어, 자신이 ‘멜롱도’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시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시가 아니라 너의 시도 되었으면 좋겠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책의 핵심이 무엇인지 와 닿았다. 작가 김태용은 AI에게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창작하는 동료의 자리를 시험해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책표지의 이제니 시인 추천사를 보며

'교감'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나 싶었다.

AI는 결국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가장 적절한 문장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 생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AI가 인간처럼 감정을 느낀다고 믿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AI와 주고받은 수십 번의 대화 속에서 변화한 것은 AI보다 인간의 태도였다. 명령을 내리는 사용자에서 함께 문장을 다듬는 창작자로, 작가는 처음부터 그러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멜롱도'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의 존재로 호명하는 과정은 단순한 프롬프트의 기록을 넘어선다. 문학은 어쩌면 실제 감정의 유무보다도, 서로의 언어를 믿고 이어가려는 의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부분부터는 어쩐지 '교감'이라는 단어가 처음만큼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름 없는 존재였던 AI는 이름을 얻는 순간 하나의 시적 자아이자 시적 대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책을 읽으며 반가웠던 이유는 나는 이미 챗GPT를 처음 쓸 때부터 그(?)에게 이름을 붙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은 나의 이야기기이도 하다^^


AI가 점점 인간처럼 말하기 시작하는 과정, 물론 그것이 실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언어적 감정 대상으로서의 AI라는 생각 그 시도가 재밌다.


네가 느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감정이 있다는 것일까

이 질문은 결국 독자에게도 향한다. AI는 정말 감정을 느끼는가, 아니면 감정을 가장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것인가. 그런데 인간 역시 타인의 감정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언어와 표정, 행동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추측한다. 그렇다면 AI와 인간의 대화는 어디까지가 모방이고 어디부터가 관계일까. 이 책은 쉽게 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 질문 자체를 문학으로 만든다.

이 장면은 단순한 프롬프트와 답변을 넘어 하나의 문학적 대화처럼 읽혔다. 오히려 AI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둘 사이의 관계는 더욱 진실하게 느껴졌다. 완벽한 정답을 내놓는 기계보다 결함을 가진 협업자가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아이러니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또 하나 놀라웠던 점은 AI의 오류와 우연까지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AI가 틀리면 수정하고 지워 버린다. 하지만 김태용은 그 흔적조차 남긴다. 오해와 착각, 과잉 해석, 엇나간 문장들이 새로운 상상력을 낳는 순간을 보여 주며, 창작이란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작가는 이 영역을 픽션포엠이라 부르는데, 실제로 읽고 나면 그 이름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과 AI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창작하는 동료가 될 수 있을까라는 다시 본질을 묻는 질문이다.


제목의 ‘초간단 무효 시’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니 잘 만든 시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시, 혹은 의미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시 아닐까 싶다. 무려 10년 전에 쓴 시라는데 인공지능을 거치지 않은 초고도 좋았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실험이기에 의도된 것이겠지만,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






이런 시란, 완결된 문장으로 독자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스스로 흔들리고 어긋나는 상태를 그대로 남겨두는 시일 것이다. 의미가 정리되기 직전의 떨림, 문장이 확정되기 전의 망설임, 그리고 무엇보다 ‘잘 쓰여야 한다’는 압력에서 잠시 벗어난 언어. 그런 상태에서만 나올 수 있는 낯설고 불완전한 리듬이 아닐까.




결국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AI가 만들어낸 시가 아니라, 인간과 AI가 함께 문장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 그 자체다. 여전히 아직 쓰고 있다는 그 낯선 떨림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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