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한마디가 조직을 바꾼다 - AI 시대, 말·심리·행동을 움직이는 LPA 리더십
김은성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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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리더의 한마디가 조직을 바꾼다 」

김은성/ 쌤앤파커스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일까?

리더십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결정을 잘 내리는 사람일까,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일까. 아니면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앞에서 이끄는 사람일까.

그런데 어쩌면 좋은 리더는 무엇을 제시하는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움직이게 하느냐를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목차에서 말하듯이 조직에서 말이 사라지면 단순히 소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얼어붙고, 결국 행동까지 멈출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리더의 언어가 방향을 만들고, 심리적 안전감이 사람을 움직이며, 그 움직임이 조직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 궁금했다.

특히 책에서 제시하는 LPA 커뮤니케이션 서클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말에서 시작해 심리를 움직이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리더의 역할을 ‘지시하고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리더를 조직의 언어와 심리, 행동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이 차이가 꽤 중요하게 보인다.

AI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정보를 전달하고 업무를 지시하는 일은 점점 기술이 대신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며, 불안한 순간에도 함께 앞으로 나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일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리더십을 단순한 조직관리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어에 관한 문제로 다시 고민해보게된다.

좋은 리더는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말이 어떻게 조직의 심리를 바꾸고, 심리가 어떻게 행동을 바꾸는지 그 과정을 실제 사례와 함께 접할수 있다.


리더십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일까,

아니면 사람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힘일까.

소통의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자!!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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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 한글 580년, 팍스 코리아나로 가는 길
이현준 지음 / 해향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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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이현준 저 | 해향




우리는 과연 한글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매일 읽고 쓰면서도 정작 한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음과 모음이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훈민정음이 처음부터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24자였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다가왔다.

처음부터 흥미로웠던 것은 1부였다.



저자는 오늘날의 한류를 이야기하기 전에 무려 1,200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846년 바그다드의 관료 이븐 쿠르다지바가 신라를 기록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당시 사람들이 왜 먼 동쪽의 신라를 찾아왔는지를 따라간다. 지금의 K-팝과 K-드라마를 생각하며 읽으니 '한류'라는 현상을 단순히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생겨난 문화적 유행으로만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신라를 바라보는 당시 외부인의 기록을 통해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다른 세계의 눈에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를 따라가다 보니 역사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흥미가 있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때 문자를 넘어 소리에 주목했다는 것.

그래서 이 책에서는 훈민정음을 단순히 우리말을 적기 위한 문자로만 보지 않고, 인간의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된 문자 체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부분은 한글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단계 넓혀 주었다. 자음의 모양이 발음기관을 본떴다는 것 역시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발음기관의 형태에서 기본자를 만들고 소리의 성질에 따라 글자를 확장해 나가는 원리를 다시 살펴보니 새삼 놀라웠다.



특히 1940년 안동이라는 장소가 등장하는 순간에는 역사책에서 보던 한글의 역사가 실제 공간과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한 권의 책이 발견되고 보존되는 일이 한 민족의 문자 역사를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한글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독자에게 계속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왜 한글은 만들어졌을까.



왜 28자였을까. 왜 네 글자가 사라졌을까. 왜 세종은 '문자'가 아닌 '소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그리고 지금 세계인은 왜 한국어를 배우고 있을까. 이 질문들이 서로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책은 기존 책처럼 단순히 한글 예찬서라기보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한글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



책을 읽고 나니 '한글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처음의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사용하는 문자이지만 그 안에는 세종의 고민과 당시의 언어 환경, 수백 년의 역사, 사라진 문자들의 흔적, 그리고 지금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어의 미래까지 함께 들어 있었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쓰는 가나다라.


그 네 글자에서 시작해 문자의 역사와 한글의 가능성, 그리고 한국어의 미래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곧 다가올 한글날을 앞두고 읽는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책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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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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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해 물리학은 단순히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설명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작을 통해 이미 그의 독특한 사유 방식에 익숙해졌고 이번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결국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만물의 평등’이라니. 인간과 물고기, 돌과 원자, 별과 나,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물병까지 과연 이 모든 존재를 어떤 의미에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로벨리가 말하는 평등은 모든 것이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가 아닐까?

어떤 존재도 완전히 고립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하나의 사물을 규정하는 순간에도 그 사물은 다른 것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이 관점은 물리학의 설명이면서 동시에 꽤 철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순간에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사랑에 빠지고, 상처받고, 배우고, 잊고, 다시 선택하면서 계속 변화한다.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름과 기억, 육체의 연속성 때문일 뿐, 그 안의 나는 수없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인간을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바라보는 것보다 계속되어 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설득력있다.



우리는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사람도 쉽게 규정하고 싶고, 관계도 이름 붙이고 싶고, 세상도 명확한 답으로 정리하고 싶다. 하지만 로벨리는 과학이 발전해 온 과정 자체가 우리의 확신을 끊임없이 수정해 온 역사였음을 보여준다.



뉴턴 다음에 아인슈타인이 왔다고 해서 뉴턴의 세계가 아무 의미도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과학은 이전의 지식을 폐기하는 방식만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더 넓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설명을 확장하고 수정한다. 이 대목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모른다는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아직 질문할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로벨리가 말하는 과학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답을 갖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질문하고 관찰하고 수정해 나가는 데 있다.

이 책은 물리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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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초인 수업 - 당신 안의 초인을 깨워줄 차라투스트라의 질문들
강용수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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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초인 수업》 당신의 삶은 당신 자신의 작품인가




니체를 읽는 일은 편안하지 않다.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초인'이라는 개념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는 삶이 힘들 때 다독여주기보다 오히려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묻는다. 지금의 삶에 정말 만족하는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정말 당신의 길인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붙잡고 있는 것은 없는가. 그리고 만약 지금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당신은 이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가.


강용수의 이 책은 니체의 철학을 어렵게 해설하는 데 머물지 않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문장과 질문을 오늘의 삶으로 가져온다. 25개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초인’이라는 낯선 개념이 어느 순간 멀리 있는 철학적 이상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던지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으로 바뀐다.

책의 시작은 의외로 ‘초인’이 아니라 ‘몰락’이다.


처음에는 왜 초인을 이야기하면서 어둠과 몰락에서 시작할까 싶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면 먼저 내가 지금까지 의지해온 것들이 흔들리는 순간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니체의 사유도 그러하다.

익숙한 삶이 더 이상 나를 설명하지 못할 때, 내가 믿어왔던 가치가 흔들릴 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니체에게 어둠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둠 속으로 내려가야 자기 삶의 깊이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어둠을 너무 빨리 없애려고 한다. 불안하면 괜찮은 척하고, 실패하면 실패하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상처받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감정과 기억은 다른 모습으로 계속 삶에 따라붙는다.

니체가 말하는 몰락은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려간다는 것은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깊이 내려갈수록 높이 자란다는 문장이 그래서 단순한 위로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극복’이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극복은 남을 이기는 일이 아니다. 어제의 나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 것에 더 가깝다. 책을 읽으며 ‘나는 아직 완성된 인간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을 완성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이것이 나의 성격이고, 나는 이런 선택을 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니체에게 인간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다.

그래서 초인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가는 인간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니체의 철학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안전한 길을 좋아한다. 실패할 가능성이 적고,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며, 이미 익숙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삶은 어느 순간 나의 삶인지 타인의 기대에 맞춘 삶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니체는 위험하게 살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을 무모하게 살라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 익숙함을 벗어날 용기도 필요하다는 뜻에 더 가까울 것이다.


오히려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나에게 질문하게 만들어서.

그리고 어쩌면 철학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정답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살아보게 만드는 질문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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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팀은 비틀즈처럼 일한다 - 서로 다른 재능은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이 되는가
이두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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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위대한 팀은 비틀즈처럼 일한다」 서로 다른 재능은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이 되는가

이두헌 저/ 쌤앤파커스 (펴냄)



경제·경영·전략 카테고리의 책이다.

그런데 첫 장을 펼쳤을 때만 해도 비틀즈의 음악 이야기가 경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비틀즈라면 음악이고, 창작이고, 대중문화의 역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을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비틀즈를 최고의 경영 전략의 관점으로 분석하다니, 놀라웠다.



세계적인 밴드가 탄생하는 과정을 단순히 네 명의 천재적인 음악가가 만난 결과로 설명하지 않는다. 리버풀의 작은 밴드가 함부르크의 클럽을 거쳐 세계적인 밴드가 되고, 미국 시장을 장악하고, 애비로드에서 창작 방식 자체를 바꾸어가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 과정 속에서 하나의 조직이 성장하고 확장되는 원리를 찾아낸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오히려 비틀즈가 얼마나 뛰어난 음악을 만들었는가보다 그 뛰어난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환경은 무엇이었는가를 찾는 점이다. 비틀즈가 처음부터 완벽한 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한다. 무대에서 수없이 연주하며 실력을 쌓는 시간이 있었다. 서로 다른 성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부딪히고 경쟁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성장했던 점이다. 이런 부분이 경영 전략의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는 주제가 되었던걸까??



여기에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조지 마틴이라는 두 명의 조력자가 등장하는데 이 부분 흥미롭다. 이 부분을 읽으며 팀에서 리더나 구성원만큼 중요한 것이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인재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위대한 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방향을 제시하고,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을 발견해주고, 때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실험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나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비틀즈의 성공을 이렇게 바라보니 특히 조지 마틴의 존재가 인상적이다.



무대의 가장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니지만, 비틀즈의 음악적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것을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뛰어난 팀에는 반드시 뛰어난 구성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능을 연결하고 증폭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중반부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 경쟁하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상대방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창작 능력을 확장하는 부분.

흔히 좋은 팀을 이야기할 때 ‘사이가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비틀즈의 사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차이가 반드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잘 작동하는 차이는 오히려 창조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서로 비슷한 사람만 모아놓는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강점과 관점이 다르고, 그 차이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때 팀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

애비로드의 실험실이라는 표현도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비틀즈는 성공한 뒤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이 하던 방식을 의심하고 새로운 창작 방식을 시도했다. 익숙한 성공 공식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을 만드는 단위 자체를 바꾸어갔다. 성공한 조직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성공했던 방식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틀즈는 성공할수록 더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좋은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인재들이 모였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결국 팀을 유지하는 것은 능력만이 아니라 신뢰와 소통이다.






비틀즈는 누구의 것인가.

존 레논의 것도, 폴 매카트니의 것도, 조지 해리슨이나 링고 스타의 것도 아니다. 동시에 그 누구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비틀즈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재능과 관계, 갈등과 협력, 외부의 조력과 시대적 환경이 함께 작동했다.

책을 읽고 나니 비틀즈의 음악을 들을 때도 조금 다른 것이 들릴 것 같다.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비틀즈의 사례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재능을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 것인가’를 묻는다면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저자가 꺼내든 가장 흥미로운 사례가 바로 비틀즈였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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