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 한글 580년, 팍스 코리아나로 가는 길
이현준 지음 / 해향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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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이현준 저 | 해향




우리는 과연 한글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매일 읽고 쓰면서도 정작 한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음과 모음이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훈민정음이 처음부터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24자였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다가왔다.

처음부터 흥미로웠던 것은 1부였다.



저자는 오늘날의 한류를 이야기하기 전에 무려 1,200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846년 바그다드의 관료 이븐 쿠르다지바가 신라를 기록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당시 사람들이 왜 먼 동쪽의 신라를 찾아왔는지를 따라간다. 지금의 K-팝과 K-드라마를 생각하며 읽으니 '한류'라는 현상을 단순히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생겨난 문화적 유행으로만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신라를 바라보는 당시 외부인의 기록을 통해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다른 세계의 눈에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를 따라가다 보니 역사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흥미가 있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때 문자를 넘어 소리에 주목했다는 것.

그래서 이 책에서는 훈민정음을 단순히 우리말을 적기 위한 문자로만 보지 않고, 인간의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된 문자 체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부분은 한글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단계 넓혀 주었다. 자음의 모양이 발음기관을 본떴다는 것 역시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발음기관의 형태에서 기본자를 만들고 소리의 성질에 따라 글자를 확장해 나가는 원리를 다시 살펴보니 새삼 놀라웠다.



특히 1940년 안동이라는 장소가 등장하는 순간에는 역사책에서 보던 한글의 역사가 실제 공간과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한 권의 책이 발견되고 보존되는 일이 한 민족의 문자 역사를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한글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독자에게 계속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왜 한글은 만들어졌을까.



왜 28자였을까. 왜 네 글자가 사라졌을까. 왜 세종은 '문자'가 아닌 '소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그리고 지금 세계인은 왜 한국어를 배우고 있을까. 이 질문들이 서로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책은 기존 책처럼 단순히 한글 예찬서라기보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한글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



책을 읽고 나니 '한글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처음의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사용하는 문자이지만 그 안에는 세종의 고민과 당시의 언어 환경, 수백 년의 역사, 사라진 문자들의 흔적, 그리고 지금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어의 미래까지 함께 들어 있었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쓰는 가나다라.


그 네 글자에서 시작해 문자의 역사와 한글의 가능성, 그리고 한국어의 미래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곧 다가올 한글날을 앞두고 읽는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책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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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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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해 물리학은 단순히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설명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작을 통해 이미 그의 독특한 사유 방식에 익숙해졌고 이번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결국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만물의 평등’이라니. 인간과 물고기, 돌과 원자, 별과 나,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물병까지 과연 이 모든 존재를 어떤 의미에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로벨리가 말하는 평등은 모든 것이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가 아닐까?

어떤 존재도 완전히 고립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하나의 사물을 규정하는 순간에도 그 사물은 다른 것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이 관점은 물리학의 설명이면서 동시에 꽤 철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순간에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사랑에 빠지고, 상처받고, 배우고, 잊고, 다시 선택하면서 계속 변화한다.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름과 기억, 육체의 연속성 때문일 뿐, 그 안의 나는 수없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인간을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바라보는 것보다 계속되어 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설득력있다.



우리는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사람도 쉽게 규정하고 싶고, 관계도 이름 붙이고 싶고, 세상도 명확한 답으로 정리하고 싶다. 하지만 로벨리는 과학이 발전해 온 과정 자체가 우리의 확신을 끊임없이 수정해 온 역사였음을 보여준다.



뉴턴 다음에 아인슈타인이 왔다고 해서 뉴턴의 세계가 아무 의미도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과학은 이전의 지식을 폐기하는 방식만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더 넓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설명을 확장하고 수정한다. 이 대목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모른다는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아직 질문할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로벨리가 말하는 과학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답을 갖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질문하고 관찰하고 수정해 나가는 데 있다.

이 책은 물리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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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초인 수업 - 당신 안의 초인을 깨워줄 차라투스트라의 질문들
강용수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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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초인 수업》 당신의 삶은 당신 자신의 작품인가




니체를 읽는 일은 편안하지 않다.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초인'이라는 개념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는 삶이 힘들 때 다독여주기보다 오히려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묻는다. 지금의 삶에 정말 만족하는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정말 당신의 길인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붙잡고 있는 것은 없는가. 그리고 만약 지금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당신은 이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가.


강용수의 이 책은 니체의 철학을 어렵게 해설하는 데 머물지 않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문장과 질문을 오늘의 삶으로 가져온다. 25개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초인’이라는 낯선 개념이 어느 순간 멀리 있는 철학적 이상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던지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으로 바뀐다.

책의 시작은 의외로 ‘초인’이 아니라 ‘몰락’이다.


처음에는 왜 초인을 이야기하면서 어둠과 몰락에서 시작할까 싶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면 먼저 내가 지금까지 의지해온 것들이 흔들리는 순간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니체의 사유도 그러하다.

익숙한 삶이 더 이상 나를 설명하지 못할 때, 내가 믿어왔던 가치가 흔들릴 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니체에게 어둠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둠 속으로 내려가야 자기 삶의 깊이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어둠을 너무 빨리 없애려고 한다. 불안하면 괜찮은 척하고, 실패하면 실패하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상처받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감정과 기억은 다른 모습으로 계속 삶에 따라붙는다.

니체가 말하는 몰락은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려간다는 것은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깊이 내려갈수록 높이 자란다는 문장이 그래서 단순한 위로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극복’이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극복은 남을 이기는 일이 아니다. 어제의 나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 것에 더 가깝다. 책을 읽으며 ‘나는 아직 완성된 인간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을 완성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이것이 나의 성격이고, 나는 이런 선택을 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니체에게 인간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다.

그래서 초인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가는 인간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니체의 철학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안전한 길을 좋아한다. 실패할 가능성이 적고,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며, 이미 익숙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삶은 어느 순간 나의 삶인지 타인의 기대에 맞춘 삶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니체는 위험하게 살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을 무모하게 살라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 익숙함을 벗어날 용기도 필요하다는 뜻에 더 가까울 것이다.


오히려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나에게 질문하게 만들어서.

그리고 어쩌면 철학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정답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살아보게 만드는 질문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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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팀은 비틀즈처럼 일한다 - 서로 다른 재능은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이 되는가
이두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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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위대한 팀은 비틀즈처럼 일한다」 서로 다른 재능은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이 되는가

이두헌 저/ 쌤앤파커스 (펴냄)



경제·경영·전략 카테고리의 책이다.

그런데 첫 장을 펼쳤을 때만 해도 비틀즈의 음악 이야기가 경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비틀즈라면 음악이고, 창작이고, 대중문화의 역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을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비틀즈를 최고의 경영 전략의 관점으로 분석하다니, 놀라웠다.



세계적인 밴드가 탄생하는 과정을 단순히 네 명의 천재적인 음악가가 만난 결과로 설명하지 않는다. 리버풀의 작은 밴드가 함부르크의 클럽을 거쳐 세계적인 밴드가 되고, 미국 시장을 장악하고, 애비로드에서 창작 방식 자체를 바꾸어가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 과정 속에서 하나의 조직이 성장하고 확장되는 원리를 찾아낸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오히려 비틀즈가 얼마나 뛰어난 음악을 만들었는가보다 그 뛰어난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환경은 무엇이었는가를 찾는 점이다. 비틀즈가 처음부터 완벽한 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한다. 무대에서 수없이 연주하며 실력을 쌓는 시간이 있었다. 서로 다른 성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부딪히고 경쟁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성장했던 점이다. 이런 부분이 경영 전략의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는 주제가 되었던걸까??



여기에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조지 마틴이라는 두 명의 조력자가 등장하는데 이 부분 흥미롭다. 이 부분을 읽으며 팀에서 리더나 구성원만큼 중요한 것이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인재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위대한 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방향을 제시하고,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을 발견해주고, 때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실험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나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비틀즈의 성공을 이렇게 바라보니 특히 조지 마틴의 존재가 인상적이다.



무대의 가장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니지만, 비틀즈의 음악적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것을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뛰어난 팀에는 반드시 뛰어난 구성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능을 연결하고 증폭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중반부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 경쟁하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상대방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창작 능력을 확장하는 부분.

흔히 좋은 팀을 이야기할 때 ‘사이가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비틀즈의 사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차이가 반드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잘 작동하는 차이는 오히려 창조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서로 비슷한 사람만 모아놓는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강점과 관점이 다르고, 그 차이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때 팀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

애비로드의 실험실이라는 표현도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비틀즈는 성공한 뒤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이 하던 방식을 의심하고 새로운 창작 방식을 시도했다. 익숙한 성공 공식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을 만드는 단위 자체를 바꾸어갔다. 성공한 조직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성공했던 방식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틀즈는 성공할수록 더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좋은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인재들이 모였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결국 팀을 유지하는 것은 능력만이 아니라 신뢰와 소통이다.






비틀즈는 누구의 것인가.

존 레논의 것도, 폴 매카트니의 것도, 조지 해리슨이나 링고 스타의 것도 아니다. 동시에 그 누구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비틀즈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재능과 관계, 갈등과 협력, 외부의 조력과 시대적 환경이 함께 작동했다.

책을 읽고 나니 비틀즈의 음악을 들을 때도 조금 다른 것이 들릴 것 같다.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비틀즈의 사례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재능을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 것인가’를 묻는다면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저자가 꺼내든 가장 흥미로운 사례가 바로 비틀즈였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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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태주 지음, 나난 그림 / OTD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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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도 분명 꽃인데

나만 그걸

몰랐던 거다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인의 시는 유능한 화가들, 그림작가들의 손끝에서 수없이 다시 태어났다. 얼마나 좋으실까? 아니 어떤 기분이실지 궁금하다. 이 책을 통해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꽃 한 송이, 계절의 변화,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었다.




아마도 제목의 오래 머무는 마음이라는 글귀처럼, 시인의 시는 사람을 오래 잡아두는 무언가가 있다. 읽는 순간에는 그저 한 문장, 한 편의 시였는데 책을 덮고 나면 문득 다시 떠오른다. 책의 삽화처럼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에서, 오래전 헤어진 사람의 이름에서 그 문장이 되살아난다. 그렇게 시는 우리의 하루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다가 어느 순간 마음 한가운데 내려앉는다. 아마 좋은 시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에 더 오래 생각나고, 평범했던 풍경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것. 이 책에는 쉽게 지나치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오래도록 피어 있다.



처음에는 꽃과 사랑에 관한 따뜻한 시화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이 책이 말하는 사랑은 생각보다 넓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혼자인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 떠나간 사람을 보내는 마음,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평범한 하루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의 꽃은 쉽게 알아보면서 정작 자신의 꽃이 피고 있다는 사실은 자주 잊는다. 잘하고 있는지, 충분히 괜찮은지 끊임없이 확인하느라 지금의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



기억에 남는 시는 《혼자서》였다. 혼자 피어 있는 꽃을 두고 당당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인. 외로움을 없애주겠다고 말하는 대신, 혼자 있는 시간에도 내가 하나의 꽃으로 서 있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작가 나난의 그림은 시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시가 지나간 자리에 조용히 머문다.

색과 선, 꽃과 사람의 모습이 시 사이에 놓여 있어서 한 편의 시를 읽고 잠시 그림을 바라보게 된다. 그 짧은 멈춤 속에서 시는 내 기억과 만나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빨리 읽을 책이 아니었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읽기보다 마음에 닿는 한 편을 골라 천천히 읽고, 그림을 보고, 잠시 덮어두었다가 다시 펼치게 되는 책이었다.



내 마음을 바라보게 하는 책. 어쩌면 오래 머무는 마음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좋았던 순간을 오래 바라보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은 시의 계절, 이 시집 추천하고 싶다.




#나태주

#풀꽃시인

#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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