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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무궁화 - 국가상징 바로잡기
강효백 지음, 김원웅 감수 / 이담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의 국화인 무궁화는 그 이름은 익숙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수 있는 꽃은 아니다.
꽃 가게에 들러 '무궁화 한단이요' 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길가에 핀 무궁화를 흔하게 본 적도 없다
무궁화가 일제강점시대 당시
교묘하게 한국의 나라꽃으로
둔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에도시대까지
기모노, 신발, 장신구, 생리대 문양등에
무궁화 문양이 광범위하게 사용됐었으며
현재 전쟁범죄자 위패를 모아둔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도
무궁화가 만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5년 광복 이후로 오늘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아직까지 우리 민족의 얼을 완벽히 돌려 놓지 못했는데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대표적인 국화인 '무궁화'마저도
일본의 잔재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상상만으로도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틀린 것은 바로잡아야 하기에
정말 무궁화가 일본 제국주의 잔재인지에
대한 증거들이 담긴 책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파헤쳐보게 되었다.

대통령 훈장, 휘장, 뱃지 등 국가상징물 대부분에
국화로서의 무궁화가 새겨져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러나 과거를 보면
고려는 매화를 ,
백제는 국화,
신라는 모란을 선호했다.
선덕여왕때는 당나라 태종이 모란을 보내와
신라 후기 전국 사찰에 모란을 심은 적도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복숭아꽃, 오얏꽃,장미,송화,배꽃 등
각종 꽃이 등장함에도 무궁화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사이자 국보 322호인 삼국사기에
대한민국 국화인 무궁화가 한 송이도 기록되지 않았을까
삼국유사, 제왕운기, 고려속요에도 무궁화는 피지 않는다.

흥미로운것은
일본 옛 문헌 대표 사서에는 무궁화 기록이 수두룩하다.
751년 이전 출간된 만엽집에도 등장한다.
또한 일본 중부 혼슈,
와카야마현, 야마구치현에서는
무궁화 야생 군락지가 형성되어있다.
하지만 한국의 야생 무궁화 자생지는 전혀 없다.
재배 가능지 또한 일본에서는 훗카이도에서 남쪽 끝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재배되어 토착화된 꽃나무다.
훗카이도 중부도시 호쿠토시의 시화로,
남부의 기요사토정,소베스정의 마을 꽃으로 지정되어있다.
우리나라 무궁화는 재배가능 범위조차도 남한 땅으로 제한되어
이북 에서는 자생과 재배 모두 불가능하다
무궁화 3천리가 아니라 무궁화 1천리로
볼 수 있다는 책 속 말처럼
의문은 커져만 간다.
무엇보다 사진자료로 책 속에 나오는
무궁화와 똑같은 일본 꽃들을 보길 바란다.
같은 과목의 식물이고
일본 주요 재래종 무궁화 품종
8세기부터의 나열된 사진들을 보면
놀랄만큼 닮아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런것은 발행지폐에도 드러나는데
한창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북방대륙을 집어삼킨 일본은
무궁화 도안으로 6종의 지폐를 발행하여
조선과 만주와 중국의 널리 유통시켰다.
책을 읽을수록 일본인 생활속에 얼마나
무궁화가 깊이 들어와있는지 실감했다.
책 표지의 전범기(욱일기)과
무궁화의 연관성이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책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실마리가 풀렸다.

참고문헌과 사진, 정리한 표까지 자료가 방대하여
얼마나 정성을 들여 책을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궁화 톺아보기 100선으로 핵심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어서
나중에 책을 읽은 뒤 되새기며 정리하기에도 좋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도 일본의 잔재가 많은 부분 존재한다.
문화적인 부분은 너무 많고
우리나라의 지명도 그렇다.
인사동은 인근 지역인 대사동, 관인방의
둘을 합쳐 인사동으로 이름을 바꾼 케이스다.
일본식 지명도 많이 갖다붙였는데
너더리->관수동, 탑골->낙원동, 잣골->동숭동이 대표적이다.
특히나 인천 송도는 더 노골적으로
청일.러일전쟁 당시 일본 군함 이름을 그대로 갖다붙였다
송도의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하면 마츠시마(松島).
속상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서 식민지배 흔적을 싹 다 치우고 민족의 얼을 찾았으면 좋겠다.
우리 민족혼의 표상인 무궁화가
정말로 국가상징의 왜곡인지
한민족 고유의 나라 꽃 상징이었는데
왜색이 짙은 꽃이라 평가되고 있는것인지
의문이 들면 이 책을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