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속
장폴 뒤부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애미에서 성수기라는 이 계절,
그러니까 겨울이 달갑지 않다고 했다.
이 도시는 여름에 제물을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라고 했다.'
처음 '상속'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때, 가문의 재산 상속에 대한
가족들의 분쟁을 다룬 글이 아닐까 유추했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상속'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 상속' 이라는
더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었다.
주인공 폴은 그 부조리한 '상속'을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예견된 미래이다.
누구나 가까운 이의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잡는데
'폴'의 경우에는 더 그러했다.
어느 때와 같이 똑같은 일상생활을 보내던 가족들이 차례대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할아버지, 삼촌,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들의 마지막 하루는 언제나와 똑같았다.
폴이 가족의 인원수가 점점 줄어든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땐,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종국에는 주인공 폴 카트라킬리스 혼자 덩그러니 남는다.
그리고 폴은 떠난 가족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오랜 시간동안 흔적을 되짚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 의 포맷과 비슷하지만
상속은 그보다 좀 더 염세적이고, 정적이면서도 가끔은 아슬아슬하게 흘러간다.
소설 내내 폴의 감정은 불안정 하다.
폴은 가족 중 유일하게 상속이라는 굴레를 끊고 이겨내려 노력한다.
가족들이 죽음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고, 폴은 유전자를 끊어내기위해 어떻게 극복해내는지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고 보게 하는 몰입감이 있다.
상실의 슬픔은 고통을 겪지 않고는 치유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슬픔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을 회피해버린다.
가뜩이나 슬픈 상황에서 겪어보지 못한 아주 큰 고통이라는 감정까지
연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며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회피하려 한다.
심리학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적인 감정보다 훨씬 더 전염성이 높다고 말한다.
게다가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감정전염은 누구보다 빠르다.
서로를 비슷하게 모방하며 살아가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어느순간 물결처럼 흘러 가까운 이들에게 전염된다.
폴도 어느 순간에는 상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다가
또 다른 순간에는 마음 속 죄책감과 추억을 꺼내 고통을 다시 되새김한다.
폴은 한 번씩 가족들에 대한 상실감과 슬픔이 크게 밀려올 때마다
그걸 자기 머릿속에 애벌레들이 돌아왔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정서를 마음껏 분출해 내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된다.
하지만, 정서 경험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이치라고 한다.
이 말은, 같은 정서상황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신체.정서적 변화를 겪게 되기 때문에
분출하는 사람과 분출하지 않는 사람 모두 결과적으로 동일한 정서를 겪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가 그 슬픔을 가늠할 길이 없을 뿐 결국 느끼는 감정은 모두가 비슷할 지도 모른다.
슬픔을 억지로 기쁨으로 왜곡시킬 필요도 없고 축소할 이유도 없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왜곡된 감정이나 억압보다 정신건강에 훨씬 건강하다.
삶의 환상을 깨부수고 현실을 보게 하면서도,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을 수 있기에 행복한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