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꿀벌 키우는 사람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집어 들었으나 첫 장을 넘기자마자 아 너무 좋다 하고는 읽는 속도를 늦췄다. 인생을 아우르는 은유이자 시적 장면과 소설적 서사가 합쳐지는데 이런 글은 어떻게 쓰는 걸까 감탄했고 감탄과 별개로 빠져들었다.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막상스 페르민, 그 이름을 기억하기로 했다.


'색채 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연결하여 읽을 책이 두 권이나 더 있다! (좋아) 이번에 읽은 것은 금색. 기다리는 책은 흰색과 검정. 주요 색 외에도 색으로 표현되는 배경과 인물이 곳곳에 숨어있는데,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질 때마다 으아... 하고 멈추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이전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궁금하다. 한 편의 시소설을 써내는 능력은 훔치고 싶기도 해. 흑흑.


여백을 넉넉하게 살린 편집 디자인도 이 글의 매력을 한층 살렸다고 생각한다. 머무르며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다. 글과 잘 어울렸다.


프랑스 소설에서 비슷한 매력을 느끼곤 하는데 취향이 통하는 독자라면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읽으면서 나 프랑스 소설 좋아하네... 했는데 그렇기도 하나 이 책이 확실히 매력적이다.



(여기서부터는 읽는 이에 따라 스포일러 가미된 감상일 수 있다)

삶을 가로지르는 순수한 마법의 순간들속에서 꿀벌을 만났을까. 꿀벌을 통해 그런 순간을 만났을까. 전자이기도 후자이기도 하겠지. 좋아하는 일을 찾고 확실히 가졌으면 해. 주저하지 말고, 멈추지 말고, 쟁취하고, 나아가기. 좋아하는 일은 흘러가는 시간에 양보하고 싶지 않다.

기술자 만나서 일 벌이는 부분은 할아버지와 입장을 같이 했던 독자로서 아니, 아닌 게 뻔한 일을 왜 신나서 벌이고 있는 거야? 사실 그런 게 인생이고. 인생 왜 멀리서 봐야 보일까? 내 인생은 너무 가깝기만 해.

잊을 수 없고 사라지지 않을 시간을 강렬한 기억을 마음에 남긴 채 결국, 돌아와 사랑을 알아보고 택하는 결론. 어떻게 보면 허무한데, 또 그게 너무 인생이다. 사랑을 알아보고 사랑하기로 하는 것.

잘 사랑하고 싶다. 내 꿀벌 키우면서.

오렐리앙 로슈페르는 금에 대한 취향으로 인해 꿀벌 키우는 사람이 되었다. 부를 탐해서가 아니었다. 꿀을 수확하면 돈을 벌 수도 있지만, 그가 꿀벌을 키우게 된 건 전적으로, 그가 ‘인생의 금‘이라고 부르던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를 찾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삶이란 그것을 가로지르는 순수한 마법의 순간들이 있기에 살 만한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생의 심장 가까이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스펙토르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이전에 발간된 소설집 <달걀과 닭> <G.H.에 따른 수난>을 통해서였다. 범상치 않았다. 이미지 조각조각, 잘 연결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서사, 그러나 분명하게 남는 어떤 인상. 그것을 쉬이 떨쳐낼 수 없어서 이름을 기억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강렬한 첫인상으로 기억하는 작가의 데뷔작 출간 소식에 반가움이 일었다. 잘 읽어낼 수 있을까? 첫 작품부터 그랬(?)을까 궁금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속 문장에서 차용된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그래서 짐작할 수 있었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번역자 님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드릴 것이 박수 밖에 없는 독자의 이야기.

사랑하는 서점극장 라블레의 지기에게 리스펙토르의 글을 번역하기가 유난히 어렵다는 이야길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워낙 중의적인 의미가 많은 데다 어휘 하나로 쌓는 겹이 무성해서 번역자와 편집자가 고심해서 문단을 완성한다는 이야기였다. 실로 그럴 듯하다.


언어로 표현된 순간 사라지고 마는 내밀한 무엇. 감정과 인상. 내면의 소용돌이.

그런 것을 끊임없이 들여다 본다. 독자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어질 때까지. 그런 순간을 엮어 소설을 완성한다.


이 대단하게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고 싶어진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느낄 수 있는 소설도 있으니. 읽다 멈추고 멈추었다 읽는 모든 순간이 좋았다.


더불어 을유의 새로운 암실문고 시리즈를 기대하게 된다.

이제 그녀의 시간은 모두 그에게 주어졌고, 작은 얼음조각들로 쪼개졌다. 그녀는 그것들이 녹기 전에 재빨리 마셔 버려야 했다. 그러고는 전속력으로 달리라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간만이 자유니까! 어서, 빨리 생각해, 어서, 빨리 너 자신을 찾아, 어서…… 끝났어! 이제는─얼음조각들이 든 쟁반은 나중에야 다시 나타난다. 그때 당신은 거기에 있다. 이미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물방울들을 홀린 듯 바라보며. - P1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캔터베리 이야기 -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120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니 제가 하는 조언을 마음에 새겨 두십시오.

죄가 그대를 망쳐 버리기 전에 죄를 버리라.

/의사의 이야기


여기서 당신은 아실 수 있죠, 만약 여성이 선한 존재가 아니고, 여자의 조언이 선하고 유익하지 않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주 하느님께서는 여자를 만들지 않으셨을 것이고, 여자를 남자의 돕는 자라고 부르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오히려 남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자라고 부르셨을 거예요.

.

당신의 이름은 멜리비, 즉 '꿀을 마시는 자'라는 뜻이지요. 당신은 세상의 달콤한 부유함, 이 세상의 즐거움과 명예라는 꿀을 너무 많이 마시고 거기에 취해 당신의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잊었어요. 당신이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영광을 그분께 바치지 않았고 경외하지도 않았습니다.

/ 멜리비 이야기


내 아들아, 이야기를 덜하는 것이 좋단다.

생각도 해 보지 않고 이야기를 많이 하면 해를 당한단다.

이렇게 나는 듣고 배웠어.

말을 많이 하면 죄를 짓기 쉬워.

혀를 경솔하게 굴리면 어떤 일을 당하는지 알고 있니?

/ 식품 조달업자의 이야기


다시 말하면, 사람이 자기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먹고 마실 때마다 사람은 분명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또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죄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들도 모두 죄입니다.

.

하느님은 여자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는데, 이는 여자가 남자의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 교구 주임 신부의 이야기



상권을 읽고는 재미있는 이야기 모음집 정도로 생각했다. 천일야화 같은. 그런데 하권을 읽으면서 마주치는 성경 구절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용구 앞에서, 이 이야기들은 어쩌면 이래서 살아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성의 강인함과 지혜가 드러나는 곳곳 좋다고 상권 리뷰에도 언급했었는데, 하권의 '멜리비 이야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먼 발치에서 보면 교훈적이라는 말로 깎아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남편의 판단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유하고도 단단하게 전달하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 멋졌다. 깊이 있는 지혜와 따뜻하고도 올곧은 태도. 자고로 아내란 이래야 할 것 같아. 바로 다음 장에 이어지던 불같이 화내는 아내의 모습이 친숙하지만….

과연 마음에 드는 이야기 하나를 고를 수 있을까 했는데, 나중에 투표할 수 있다면 완전 이거다, 마음 속으로 찜해두었다.


마지막을 갈무리하던 '교구 주임 신부의 이야기'는 한 편의 긴 설교문 같았다. 그렇지 하며 읽다가 호되게 혼나는 기분도 들었고 참 묘했다. 성경 읽고 싶어졌다. 플래그를 가장 많이 붙였지 싶다.


초서의 '철회문'에서 강하게 한 방 맞은 것 같았는데, 이야기 가운데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셨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리시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지혜와 선함이 그리스도에게 나오므로.


갑자기 아멘 했고.

아, 700년을 살아남아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구나. 이래야지. 절로 끄덕여졌다.


아주 오랜만에 문학 해설 꼼꼼히 읽었다.

이 작품이 쓰여진 당시 영국의 문학은 주로 프랑스어로 된 것이었으며, 영어는 그 위상이 상당히 낮아 영어의 문학적 가능성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봤을 정도라 한다. 그래서 영문학의 아버지라 하는구나…. 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 같은 옛 표기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학적 언어로의 격상을 이루어낸 셈이다.


그저 궁금했던 책 한 권 잘 읽었다는 말로 끝날 줄 알았는데, 보다 의미가 큰 독서였다.


"여기에 하느님의 풍성함이 있다(Here is God's Plenty)" (존 드라이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캔터베리 이야기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19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어떤 때는 나무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다음에는 찔레나무 속으로 휙 떨어지고
마치 우물의 두레박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기분이 변화무쌍합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해가 쨍쨍하다가 세차게 비가 내리는 금요일 날씨 같습니다.
(78, 기사의 이야기)

우리는 우리가 어딜 가는지 알려 하고 감독하려는 남자 싫어해.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290)

"내가 죽을 때까지 늙고 못생긴 대신에
당신에게 진실하고 겸손한 아내가 되어
평생 당신 마음을 거스르는 일이 없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내가 젊고 아름다워서
저로 인해 집이나 다른 곳 어디에서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쪽을 원하시나요?
이제 당신 마음에 드는 대로 선택해 보세요."
(330, 바스에서 온 부인의 이야기)

말하자면, 분노는 교만의 집행자라 할 수 있지.
분노가 빚어낸 슬픈 사연이 얼마나 많은지
아마 내일까지라도 계속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367, 법정 소환인의 이야기)

침묵하지 말고 항상 말대꾸하던
메아리의 신 에코를 본받으시오.
순진해서 속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배권을 잡으시오.
(435, 대학생의 이야기)

-

여기 캔터베리 순례 여행을 떠나는 유쾌한 일행,
본격 저녁 내기 토크 대결이 펼쳐진다!

중세 영어를 문학의 언어로 격상시켰다는
작가 소개글은 얼마나 놀라운가!
중세 영어는 나랏말싸미듕귁에달아…
정도를 연상해 볼 수 있을까?

을유세계문학전집 중 책장이 이렇게 쉽게 넘어가는 책은 없을 것이다!
운문 형식 또한 이에 한 몫 하는데
번역의 노고에 감탄하고 말 것이다!

성경과 그리스로마신화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욱 풍성하게 읽힐 것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쫄지 말고 빠르게 맨 뒤 페이지로 가 보라
든든한 주석이 펼쳐질 테니
이것은 우리만의 비밀이다

각자의 이야기 한 판 승부에 마음을 쏟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고
사실 이 이야기 전부를 작가 한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면
이 대단한 사람 과연
전투 포로로 잡혀, 풀려나, 시인 친구에, 번역가, 군인, 외교 사절, 세관 감사관, 왕실 공사 감독, 의회 의원, 부삼림 감독관 등으로
다양한 위치에서 인생 살며 쓸 거리를 얻었을까
하다가도 그저 감탄할 따름이며

육백 년을 살아남은 이야기에
진취적이고도 독립적인 여성의 발언이 그득해서
눈도 마음도 번쩍 뜨인다는 후문

아아,
하권이여 어서 오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동네 카페 이 달의 이색리뷰 선정도서로서 만나 보게 된 책. 표지에서도 볼 수 있듯,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삽화가 참 귀엽다. 여왕을 주요 렌즈로 보는 왕실이란 카메라를 들고 이야기를 담느라, 좀 더 심각하거나 중대한 내용이 뒤따를까 싶어지는데 웬 걸, 이렇게 귀여운 삽화들이 짠 등장한다. 어렸을 적 그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조마조마 책장을 넘기던 동화 같아 웃음이 나고, 그러니까 이거, 노년에 책읽기에 빠진 여왕의 이야기구나, 하게 된다. 괜히 여왕이라고 긴장했네.

 

 

 

 

 

(저 꺼먼 부분은 핸드폰 카메라를 탓하고 싶지만 내가 그저 빛이 저렇게 드는 자리에서 찍었을 뿐이라는 점...^^; 아무튼, 귀여운 삽화.)

 

 

 

그렇다. 괜히 긴장했다.

어느 날 우연히 들게 된 이동도서관을 시작으로, 책읽기에 빠져드는 여왕을 지켜보고 있는 일은 내가 다 뿌듯하고 웃음이 나더라. 책 좋아하는 사람, 일상 속에 책 읽는 행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보면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고 더 대화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그 마음으로 눈은 다음 문장을 따라가고 있었다.

 

여왕의, 책 속의 책을 만나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노먼에게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책읽기에의 욕망을 내비치는 모습이, 그렇게 게걸스레 책을 읽어치우듯 하는 모든 것이 마냥 즐거웠다. 여왕의 입에서 새로운 작가의 이름이 나오고 그것이 점차 풍성해지는 것도, 만나는 사람마다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지 묻는 것도,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디 밖에서는 저, 책, 좋아해요, 하고 당당하지 못하게 혹은 조심스럽게(??) 말해오던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모습이 그득 담겨있었기 때문이겠지.

 

여왕이 새로운 작가나 작품을 말할 때마다, 이걸 다 적어두어야 하는데 싶었지만 자꾸 일단 미뤄두게 되었...어도 책의 어느 쪽을 펴거나 그 이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기에 다행이다(? 먼 길 돌아온 문장이지만 그 뜻은 알겠지...??).

 

 

단순히 책읽기가 좋고 그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만 끝났으면 작품이 덜 살았겠다 싶은 것은, 여왕이 읽기에서 쓰기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데서의 감동에 있다. 결국 책은 책으로 끝날 뿐이며, 실천적 행위일 수 없음을 말하는 그 단상이 이 소설을 하나의 동화 같은 서사에서 한 층 나아간 영역으로 옮겨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감히. 그 영역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혹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뭐라 단정하는 것도 섣부른 것 같고).

 

분명한 것은 140쪽 이야기의 시작에서 내가 그저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던 여왕은, 그 중반부 어딘가부터 이제는 존경의 마음이 드는 대상으로 그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어느 새, 현재 내 책읽기의 수준은 한참 지나 있었다는 것. 닮았다고 좋아하다가, 얼마 후 아, 새롭게 보게 되는 것.

 

 

 

 

독서 근육을 키워가며 곁에 두고 읽고픈, 책에 관한 책이다. :) 나의 책읽기가 얼마큼 자랐는지, 이 책을 통해 재 볼 수 있을 것 같아. 책읽기의 또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새로운 적용점을 찾아갈 수도 있겠지. 이 책은 특별히, 책 좋아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폐하께서도 심심풀이가 필요하다는 것은 저도 이해합니다."

"심심풀이? 책은 심심풀이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네. 책은 다른 삶, 다른 세상을 다루는 것이야. 심심풀이와는 거리가 멀어. 케빈 경, 짐은 다른 세상을 더 알고 싶을 뿐이야. 짐이 심심풀이를 원했다면 뉴질랜드로 갔겠지." (37/이 부분은 공감도 공감이지만. 뉴질랜드... 이것이 여왕의 패기, 덜덜.)

 

 

 

 

책 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 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에는 당당함이 있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여왕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독자는 평등했다.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은 연방이고, 문자는 공화국이라고. 사실, 이전에 들은 구절이었다. 문자공화국. (……) 책은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독자는 누구나 평등하다. (39~40)

 

 

 

 

그 때문이 아니었다. 책 읽기 때문이었다. 여왕은 책 읽기를 사랑했지만, 책장을 펼쳐서 다른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예 없었더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다. 책 읽기가 여왕을 망쳐놓았다. 아니, 책 읽기를 위해서 여왕이 망가졌다. (73)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에는 느리다고 생각했던 그 소설이 이제 가슴 시원할 만큼 활기차게 느껴졌고, 여전히 건조하기는 하지만 신랄하게 건조했다. 아이비 경의 담백한 문체와 여왕 자신의 문체가 비슷해서 여왕은 자기 글에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자 여왕은 생각하게 되었다(그리고 이튿날 공책에 적었다). 독서는 근육과 같고, 자신은 그 근육을 발달시킨 것 같다고. 여왕은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작가의 말들(농담이 아닌 말도 있었다)에 웃으며 아이비의 소설을 쉽고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116)

 

 

이 책의 원제는 『The Uncommon Reader』로, 'common'에는 영국에서 '왕족이 아닌, 평민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uncommon'은 그에 반대되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common reader'를 하나의 의미로 보면 학자나 비평가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니, 그 반대의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아니, 책에서도 말하듯 이제는 아무도 책을 읽지 않으니 '책을 읽는 사람'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지은이가 던지는 걱정과 충고인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