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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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카페 이 달의 이색리뷰 선정도서로서 만나 보게 된 책. 표지에서도 볼 수 있듯,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삽화가 참 귀엽다. 여왕을 주요 렌즈로 보는 왕실이란 카메라를 들고 이야기를 담느라, 좀 더 심각하거나 중대한 내용이 뒤따를까 싶어지는데 웬 걸, 이렇게 귀여운 삽화들이 짠 등장한다. 어렸을 적 그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조마조마 책장을 넘기던 동화 같아 웃음이 나고, 그러니까 이거, 노년에 책읽기에 빠진 여왕의 이야기구나, 하게 된다. 괜히 여왕이라고 긴장했네.

 

 

 

 

 

(저 꺼먼 부분은 핸드폰 카메라를 탓하고 싶지만 내가 그저 빛이 저렇게 드는 자리에서 찍었을 뿐이라는 점...^^; 아무튼, 귀여운 삽화.)

 

 

 

그렇다. 괜히 긴장했다.

어느 날 우연히 들게 된 이동도서관을 시작으로, 책읽기에 빠져드는 여왕을 지켜보고 있는 일은 내가 다 뿌듯하고 웃음이 나더라. 책 좋아하는 사람, 일상 속에 책 읽는 행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보면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고 더 대화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그 마음으로 눈은 다음 문장을 따라가고 있었다.

 

여왕의, 책 속의 책을 만나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노먼에게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책읽기에의 욕망을 내비치는 모습이, 그렇게 게걸스레 책을 읽어치우듯 하는 모든 것이 마냥 즐거웠다. 여왕의 입에서 새로운 작가의 이름이 나오고 그것이 점차 풍성해지는 것도, 만나는 사람마다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지 묻는 것도,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디 밖에서는 저, 책, 좋아해요, 하고 당당하지 못하게 혹은 조심스럽게(??) 말해오던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모습이 그득 담겨있었기 때문이겠지.

 

여왕이 새로운 작가나 작품을 말할 때마다, 이걸 다 적어두어야 하는데 싶었지만 자꾸 일단 미뤄두게 되었...어도 책의 어느 쪽을 펴거나 그 이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기에 다행이다(? 먼 길 돌아온 문장이지만 그 뜻은 알겠지...??).

 

 

단순히 책읽기가 좋고 그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만 끝났으면 작품이 덜 살았겠다 싶은 것은, 여왕이 읽기에서 쓰기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데서의 감동에 있다. 결국 책은 책으로 끝날 뿐이며, 실천적 행위일 수 없음을 말하는 그 단상이 이 소설을 하나의 동화 같은 서사에서 한 층 나아간 영역으로 옮겨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감히. 그 영역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혹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뭐라 단정하는 것도 섣부른 것 같고).

 

분명한 것은 140쪽 이야기의 시작에서 내가 그저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던 여왕은, 그 중반부 어딘가부터 이제는 존경의 마음이 드는 대상으로 그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어느 새, 현재 내 책읽기의 수준은 한참 지나 있었다는 것. 닮았다고 좋아하다가, 얼마 후 아, 새롭게 보게 되는 것.

 

 

 

 

독서 근육을 키워가며 곁에 두고 읽고픈, 책에 관한 책이다. :) 나의 책읽기가 얼마큼 자랐는지, 이 책을 통해 재 볼 수 있을 것 같아. 책읽기의 또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새로운 적용점을 찾아갈 수도 있겠지. 이 책은 특별히, 책 좋아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폐하께서도 심심풀이가 필요하다는 것은 저도 이해합니다."

"심심풀이? 책은 심심풀이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네. 책은 다른 삶, 다른 세상을 다루는 것이야. 심심풀이와는 거리가 멀어. 케빈 경, 짐은 다른 세상을 더 알고 싶을 뿐이야. 짐이 심심풀이를 원했다면 뉴질랜드로 갔겠지." (37/이 부분은 공감도 공감이지만. 뉴질랜드... 이것이 여왕의 패기, 덜덜.)

 

 

 

 

책 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 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에는 당당함이 있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여왕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독자는 평등했다.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은 연방이고, 문자는 공화국이라고. 사실, 이전에 들은 구절이었다. 문자공화국. (……) 책은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독자는 누구나 평등하다. (39~40)

 

 

 

 

그 때문이 아니었다. 책 읽기 때문이었다. 여왕은 책 읽기를 사랑했지만, 책장을 펼쳐서 다른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예 없었더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다. 책 읽기가 여왕을 망쳐놓았다. 아니, 책 읽기를 위해서 여왕이 망가졌다. (73)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에는 느리다고 생각했던 그 소설이 이제 가슴 시원할 만큼 활기차게 느껴졌고, 여전히 건조하기는 하지만 신랄하게 건조했다. 아이비 경의 담백한 문체와 여왕 자신의 문체가 비슷해서 여왕은 자기 글에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자 여왕은 생각하게 되었다(그리고 이튿날 공책에 적었다). 독서는 근육과 같고, 자신은 그 근육을 발달시킨 것 같다고. 여왕은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작가의 말들(농담이 아닌 말도 있었다)에 웃으며 아이비의 소설을 쉽고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116)

 

 

이 책의 원제는 『The Uncommon Reader』로, 'common'에는 영국에서 '왕족이 아닌, 평민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uncommon'은 그에 반대되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common reader'를 하나의 의미로 보면 학자나 비평가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니, 그 반대의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아니, 책에서도 말하듯 이제는 아무도 책을 읽지 않으니 '책을 읽는 사람'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지은이가 던지는 걱정과 충고인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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