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
이미령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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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처럼, 책 속의 등장인물처럼 작고 여린 존재입니다.


책이란 작고 여린 것들의 아우성이고, 그 아우성은 내 안의 웅얼거림이란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특히 소설이 주는 위로는 책이란 작은 세상도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준다. 가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주인공을 보면 안타까워 내가 마치 그 사람인 듯 느껴지는 강한 몰입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줄거리를 따라 등장인물의 생각, 속마음, 상황을 투사하며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점이 현실과 다르다. 실제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을 틀어줄 수 없기 때문에 이해란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독서 에세이다. 저자가 그동안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글이 정돈되고 깔끔하다. 보는 시각과 관점이 통찰력이 있어 관심 없던 책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소개하고 읽는 책들 중 내가 읽어본 책은 <나무를 심은 사람>, <파이 이야기>, <어린 왕자> 정도다. 하지만 읽고 싶어 표시해둔 책은 손에 꼽을 수 없다.

그중 <비둘기>, <책 읽어주는 남자>, <속죄> 세 작품은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현대인들은 익명성 속에서 자유를 누린다고 하지요. 하지만 익명성 속에서 지켜지는 자신만의 왕국은 이처럼 덧없고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허수아비보다 못한 현대인의 자존감, 그 무게가 황당할 정도로 가벼워서 오히려 현대인들은 휘정거리며 사는 모양입니다. (p. 85)


견고한 내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기면 순식간에 폐허가 돼버린다. 현대인의 자존감은 이처럼 약하기만 하다. 계획했던 일이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는 짜증을 낸다. 하루에 좋은 일이 쏟아지다가도 한 개의 불행이 생기면 순식간에 별로였던 하루가 된다. 이처럼 부정이 주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고작 비둘기가 준 공포 하나에도 두려워 방으로 뛰어가는 주인공처럼 우리도 작은 흔들림에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깨어난 자는 무지의 상태에서 행한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자각합니다. 자각한 자에게는 지독한 책임이 따르지요. 그 책임은 너무나 무겁고 무섭습니다. (p. 105~106)


모르면 용서해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을 뒤집는 책이었다. 모르고 했다는 변명처럼 하기 쉬운 것도 없다. 나치에 복종하고 일했던 그녀가 몰랐다고 변명하기에는 자신으로 인한 희생자가 너무도 많았다. 몰랐던 그녀가 깨달음을 얻고 난 주변은 모르고 저질렀던 끔찍한 현장이었다. 몰랐던 건 죄였다.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것을 몰라서 했으니까. 그것을 보고 깨달은 죄책감은 매우 컸다. (그녀가 살던 시대배경이 가혹하고 안쓰럽게 느껴지긴 했다.) 나 역시 몰랐단 말로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회피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숱하게 하는 생각과 말은 모두 '안다'는 것과 '본다'라는 것의 차원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과 '본다'라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진실을 알고 있다고들 말하지만 그게 정말 진실일까요? '정말 진실인가요? 사실 그대로인가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지요. "진짜야, 내가 봤다니까!" 하지만 보았다는 사실도 조심해야 합니다. 어쩌면 부분만을 보고서 전체를 본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고, 나의 상태에 따라 내가 본 것이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p. 112~113)


법정물과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목격자의 진술에 의해 피고인이 범인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아는 것과 보는 것에는 차이가 많다. 본 것은 순간이다. 단 몇 초여도 본 것으로 친다. 하지만 아는 것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왜곡되기 쉬운 부분이다. 기억에는 내 감정이 투영되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안다고 칭할 때, "내가 아는데 걔 싸가지가 없더라.", "내가 아는데 진짜 착해" 등의 표현을 한다. 보는 것은 순간의 사실일 수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고, 아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 가진 감정에 잘 짜인 편견이다. 이 책은 그 부분을 말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책들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과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하고. 생각에 맞고 틀림이란 없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해석도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다름에 대한 이야기가 모이면 조금 더 성숙한 내가 되고, '틀에 갇힌 나'에서 '보다 많은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나'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은 항상 생각지도 못했던 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매력이 가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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