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에 만나요
용윤선 지음 / 달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전작인 <울기 좋은 방>은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슬프고 힘든 책으로 꼽힌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덮었는지 모를 만큼 작가님의 심정이, 정서가 가슴 깊이 와닿아 좋아하면서도 함부로 꺼내읽지 못하는 책이 되었다. < 13월의 만나요>도 혹시나 그럴까봐 걱정이 되었다. 13월이란 존재하지 않는 계절처럼 기약 없이 책장에 꽂혀질까 봐 조심스레 한 문장씩 읽어내려 갔다. 그녀를 스쳐간 인연들과 커피를 향한 애증 섞인 시선, 복잡하게 얽힌 마음의 실타래를 푸는 과정은 소복이 쌓인 눈밭에 내 발자국을 새기는 과정 같았다.


 

건조한 영혼 틈으로 스며드는 생각,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란 말 자체만을 생각해보면 살기 싫어진다. 사는 일이 너덜너덜해진다. 폐허가 될 때마다 사람에게 기대려고 해본 적 없었더도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듯, 기댈 사람이 누구라도 관계없다. (p. 19~20)



 

사람에 대한 감정으로부터 사람은 보호되어야 한다.(p.15)는 말처럼 그녀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여 섣불리 다가서거나 다가오는 관계를 지양한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긴다. 매 장마다 주인공이 되는 인연과 장소는 경계하면서 기대었던 자신의 마음이 놓여있다. 너덜너덜 떨어질 듯 애처로운 심장을 꿰매주던 사람과 무심히 건넸던 질문들, 정확한 마음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과 놓지 못한 미련들을 정갈하게 정리한다.



 

이제는 그 소망조차 놓았으나 이것이 내 꿈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고 그 시절 슬픔도 깊어서 더 깊은 슬픔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슬픔은 또 오더라. 슬픔은 왜 끝없이 오는가. 꿈을 꾼다는 것은 슬픔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겪은 것을 겪지 않기 위해 단단히 경계하고 살았는데 내 앞에 깊은 강과 험난한 바다가 있다. (p. 87)


 


나는 나를 많이 좋아하나 보다. 내가 아직도 소중한가 보다. 나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이 깊어 멈출 줄을 모르는(p.38) 모습은 곧 나였따. 타인에게 상처도 주고 정말 무결한 사람처럼 구는 못된 사람과 티 나게 심술부리며 관심을 표현하기도 하는 보통 사람은 사랑을 만나며 특별해진다. 어쩌면 만남과 헤어짐, 태어남과 죽음처럼 알면서도 끌려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이란 자산을 기억이란 생동감으로 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나는 순간, 헤어지는 일은 만나는 일의 기약처럼 다가온다. 우리 모두 헤어지고 우리 모두 죽는다. 나도 헤어질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헤어지고 죽는다고 모두 헤어지고 죽는 것이 아니었다. 잘 헤어지지 못하고 잘 죽지 못하면, 이루지 못한 사랑은 이룰 때까지 사랑하는 수밖에 없듯 헤어지지 못하고 죽지 못한다. (p. 292)


 

단단했던 다짐과 철저했던 계획이 무용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12월은 멜랑꼴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삶이 기록한 기억이 때론 독처럼 괴롭게도 만들고 새로운 기억에 지난 기억이 지워지기도 하는 시기는 아멜리가 그녀가 적어준 '지금부터 행복해지겠습니다'같다. 쓰지만 말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언어. 13월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가 그리워진다(p.165)는 문장처럼 보고 싶은 사람, 보기 싫은 사람 모두 그리워하게 되는 묘한 계절의 신기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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