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동서 미스터리 북스 99
로스 맥도날드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작품을 읽어나가며 당혹감을 느꼈다.

이전에 읽었던 『지하인간』과 이야기의 구성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마치 완성된 작품의 틀에 등장인물과 소재라는 부품만 갈아끼운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추리 소설은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긴장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치밀한 논리적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로스 맥도날드의 작품에선 탐정이 인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내막을 추적하고 서서히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 과정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미스터리 분위기마저 유사하다.

또한 수십 년 전 벌어진 사건이 현재의 사건과 연결된다는 공통점도 있다.
헬렌 해거티는 달리의 주임 교수이다. 그녀는 살해 협박을 받는다며 루 아처에게

하룻밤 같이 지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아처는 요청을 거절하고 다음 날 헬렌은 누군가의 총에 의해 살해 당한다. 
그녀는 20~30년 전 루크 딜로니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데 같은 범인에 의해 살해 당한 것으로

추리된다.

두 세대에 걸친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마저 이제는 친근하다.
헬렌이 살해되자 사건 현장에 있던 달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달리는 10년 전, 아버지 첵 베그리가 엄마를 살해했다는 결정적인 증언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베그리는 10년을 복역하고 막 출소한 상태다. 그는 현재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호프만은 헬렌의 아버지로 전직 경찰이다. 그는 수십 년 전 벌어진 로크 딜로니 사건을

담당한 후 괴로운 기억으로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
로이 브래드쇼는 달리의 대학 지도부장이며, 그의 어머니 미세스 브래드쇼와 함께

어딘가 미심쩍은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더해 많은 주변 인물들까지 등장하여 독자가 따로 인물 관계도를 작성해야 될 정도인데, 이 역시 『지하인간』과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구조는 소름이 더 세련된 느낌이었다. 
마지막까지 범인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빈틈없는 짜임새가 돋보였다.
반면 작품을 감싸는 어두운 분위기는 거대한 산불을 배경으로 한 『지하인간』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책을 덮고 나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저자는 두 이야기의 구조를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세대간의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정한 걸까?
이 작품들이 출간된 1960~70년대의 미국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희미해진 시대였던걸까?
일반적으로 작가는 사회적 현상을 작품에 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두 작품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써 내려간 것일까?
이 물음이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게 만들었다.

1969년, 무과실 이혼법이 통과되었다. 
명확한 잘못을 증명하기 전에는 이혼하기 어렵던 관례를 성격 차이만으로도

이혼을 가능하게 하였고,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쉬워져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는 이혼율이 급증하게 되는 원인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젊은 세대는 반전 운동에 참여하며, 기성세대의 애국주의 가치관과

부딪쳐 점차 갈등으로 심화된다. 
결국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결속이 느슨해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역시 맥도날드는 이유가 있었구나!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두 작품 모두 강영길 역인데

『소름』은 DMB(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번역 수준에선 꽤나 양호한 편이었다. 
DMB 특유의 오래된 번역 스타일은 같지만, 『지하인간』처럼 등장인물의 말투가 바뀌거나

어색한 문장은 없었다.
이 묘한 상황을 루 아처처럼 추리해본다면 출판사에서 교정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시리즈 전체의 번역 수준이 『소름』정도만 되었어도 독자들에게 만족을 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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