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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여자 ㅣ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4
까뜨린느 아를레 지음, 송홍빈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흥미로운 전개와 다른 범죄 소설에서 접하지 못한 결말이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다.
힐데가르데 마에나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에서 번역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서른네 살의 가난한 여성이다.
그녀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여 화려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을 꿈꾼다.
매일 같이 신문의 결혼 구인 광고를 살펴보며, 엄청난 재력을 가진 남성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어느날 마침내, 그렇게 기다리던 재력가의 구인 광고가 나타나게 되고, 그녀가 직접
그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작중 마에나가 처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독자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죽은 남편을 변장시켜 휠체어에 태운 채, 여객선에서 저택으로 옮기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그 과정에서 의심하는 운전수와의 대화에서 높은 서스펜스를 체험하게 된다.
또한 형사 케인에게 남편 살해 용의자로 취조를 당하는 장면에선 깊은 고립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 모든 걸 체념한 그녀는, 실크 스타킹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이후 안톤의 완전 범죄가 성공하는 서늘한 결말은 잊히지 않을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결말부에 등장하는 이 실크 스타킹을 비평가들은 '욕망과 파멸의 상징'이라며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특별한 의미없이 이야기의 흐름상 적절하게 떠올린 소품이라 생각한다.
제목이 『실크 스타킹』이었다면 그 의미를 수긍할 수 있겠지만이 책의 제목은
『지푸라기 여자』다.
원제도 La Femme de paille로 같은 뜻이다.
히치콕 감독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그의 손녀가 학교 과제로 히치콕 영화에 대한 리포트를 쓰게 되었다.
그녀는 할아버지에게 어느 영화의 특정 부분에서의 연출 의도를 물었는데,
히치콕이 설명해 준 그대로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했다가, 영화의 상징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해석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꿈보다 해몽'식의 해석은 특히 미술 작품 해설에서 흔하게 보인다.
작품의 해설이 의미를 앞서나가는 순간 감상의 자유는 사라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작품 정보의 불일치도 지적하고 싶다.
작가의 출생년도가 책에서는 1935년으로 나오지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1922년생으로
나온다.
어느 쪽이 확실한지는 모르겠으나, 201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천수를 누렸다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살아가며 자신의 작품이 고전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평생 인정받지 못해 생계에 쫓기듯 살다 사후에야 작품을 인정받은 작가들에겐 분명 드문
행운에 속한다.
이 책은 무료배송을 맞추기 위해 4,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다른 도서와 함께 구매했지만
그 이상의 흥미와 여운을 남겼다.
독서가 지루해졌을 때, 무거운 서적들을 읽다가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