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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역사는 힘 있는 자의 편에 선다.
"짐은 일본의 지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진심 어린 바람에서 미국과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을 뿐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적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탄을 새로이 사용해 무고한 생명을 무시로 빼앗기 시작햇으니 그 피해가 실로 어디까지 갈지 헤아릴 수 없구나. 이 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일본 한 나라의 파괴와 소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절멸로 이어질 것이니라....."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문이다.
피해 당사국인 한국이나 중국, 필리핀, 인도네이시아와 같은 나라에 끼친 피해 행위에 대한 사죄는 고사하고 언급조차 없다.
이것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다.
일본은 철저한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에 의한 피해국일 뿐이다.
1937년 12월에 시작되어 1938년 초에 끝이난 난징에서의 대학살의 희생자 수 최소 26만 명에서 최대 35만 명,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으로 인한 희생자 수 14만 명과 7만 명.
일왕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관점에서는 비슷한 피해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징은 일본 군인의 총검술 연습 대상으로, 목 베기 시합의 대상으로, 생매장의 방식으로, 방화의 방식으로 희생되었고, 히로시마는 폭탄으로 희생된 것이다.
어느 것을 더 잔인한 학살이라 불러야 하는 것일까?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언하겠다.
힘있는 자의 편에 선다고.
일본과 똑같은 전범 국가였던 독일은 피해 당사국에 배상금과 함께 기회가 될 때마다 무릎 꿇고 사죄한다.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침략을 당했던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일본으로 부터 제대로 된 배상을 받았거나 침략 행위에 대한 사죄를 받은 국가가 있을까?
나는 일본이 자신들의 행위를 사죄하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보고 싶다.
첫째, 그들은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일왕의 항복문에는 그들의 침략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다. 심지어는 '장래를 건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라.'라는 명령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사죄할 것이 없는데 무엇을 사죄하겠는가?
둘째, 일본이 경제적 강자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아니었던가?
사죄나 배상이란 것은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것이다. 일본에게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나라는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약자다.
그렇다면 난징 대학살이나 일본의 위안부 문제와 같은 전쟁 범죄는 그대로 덮힐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
난징 대학살 당시의 피해자였던 조부모 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에 의해 이 책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가 쓰여지던 1997년의 일본은 세계 최강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경제 대국인 반면 중국은 경제 규모로 세계 10위 권에도 못 들던 아시아의 낙후한 사회주의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 현재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음은 물론 일부에서는 2016년 쯤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중국은 난징 대학살과 관련한 영화와 다큐 제작 뿐 아니라 1985년 난징 대학살 기념관을 건립했으며, 기념관을 방문한 덴마크 여왕에게 난징 대학살 당시 2만 명의 난징 시민들의 피신시켜 생명을 지켜주었던 덴마크인 사업가 신드 버그에 대한 감사 전하는 것과 같은 외교적인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
홍콩을 되찾기 위해 백 년을 기다린 중국이다.
역사를 잊은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린 것이리라.
이 책을 덮으면서 난징 대학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마저 파괴되어 버렸고, 일본인들의 끝없는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아이리스 장의 죽음을 보면서, 일본의 사죄와 전범의 처벌 없이는 난징 대학살은 결코 끝날 수 없음을 다시 확인케 되었다.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역사는 잊지 않는 자의 편에 선다.
아이리스 장의 죽음을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