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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평점 :
‘인문 건축가 – 문과와 이과의 만남’
나는 ‘문과’다. 문‧이과를 구분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일지 모르지만, 나는 문과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 왔고, 그 세상 너머에 있는 ‘이과’를 동경했다. 그런 점에서 유현준 교수는 내게 이과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다. 그것도 이과에서 출발해 문과로 통찰의 범위를 넓힌 나와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선 하나하나가 모두 새로웠다. 놀라웠다. ‘어떻게 이런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인간은 초당 2백여 장의 망막 위에 맺힌 이미지 외에도 음향과 그림자 같은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게 인지 능력이 발달해 있다.”(32쪽)
- ‘역시 이과다.’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나는 내 눈이 세상을 바라볼 때 이런 원리로 움직인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 뇌가 들어있다는 것도, 눈이 렌즈와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3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유현준 교수의 책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수렵과 채집만으로는 먹고살기가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 농업은 좁은 땅에서 더 많은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 최초의 문명인 농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41쪽)
- 역사를 공부하면서 농업이 혁명이었다는 점은 누누이 들어왔다. 너무 진부해서 그냥 암기하고 지나쳐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사에서 ‘혁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신기술이며, 이 시대에서 말하는 개혁, 혁신이었다는 점은 한 번도 대입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우연히 땅에 떨어진 씨앗이 자라는 것을 보고 농업을 ‘발견’했다고만 생각해왔다. 농업을 기술 혁신이자, 위기 극복을 위한 인공생태계의 조성이었다는 그의 설명은 매우 놀라웠다. 모든 역사적 혁명, 변화들이 당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니!! 이제 역사적 사건들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온돌 때문에 단층짜리 집만 짓고 살았던 조선은 고밀화된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주변에 물건을 사줄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할 수 없었다.”(175쪽)
- 온돌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일종의 ‘자랑스러운’문화다. 그렇기 때문에 발해가 고구려의 온돌을 계승하였다는 설명이 한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다. 그런 온돌이 근대의 출발인 상업화, 상품 화폐 경제의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은 이번에 처음 알 수 있었다. 온돌이 건축에서 그런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역사 영역에서 큰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자랑스럽고, 뿌듯한 부분만 강조하는 것이 문제점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다. 좀더 ‘이과’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동양과 서양의 프레임 – 단순함이 오히려 더 강하다.’
유현준 교수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프레임으로 두 문화를 비교한다. 동양과 서양이 처한 기후 조건에서 건축 등 문화적 정체성이 형성되었다고 둘의 차이점을 비교한다. 문과적 정체성을 가진 나는 이 부분에 계속 딴지를 걸고 싶었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 자체부터가 일단 명확한 개념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문화적 다양성, 기후와 지리의 다양성을 모두 포괄할 수 없는 것이 아닌지, 명확하지 않은 프레임에서 출발한 그의 주장은 그 기반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 아닌지 비판하고 싶었다. 일례로 ‘석굴암’이 동아시아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유럽의 문화를 전수받은 결과물이라는 그의 주장은 사실 신라 자체적인 기하학적 발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모두 읽고 나면 그의 생각이 오히려 더 발전적인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동서양이라는 단순함으로 문화적 코드를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건축사의 거장들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그 해답을 제시하였다.
“제대로 된 창조적 생각을 위해서는 디지털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가장 쉬운 방법중 하나는 루이스 칸처럼 과거에서 문화 유전자를 찾는 것이다.”(382쪽)
시대의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함께 타인의 문화적 유전자를 찾아 이를 융합시키는 것. 그는 이것이 새로운 생각, 창조적인 생각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라 주장한다. 과거를 동서양이라는 문화적 코드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결합할 수 있는 요소로 쉽게 활용할 수 있었고, 현대의 최첨단 기술과 함께 융합하여 새로운 생각,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문과적 정체성이 갖는 알량함은 이 부분에서 바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이과’적인 힘!. 그것이 바로 동서양이라는 프레임이었다.
‘창조와 융합 – 미래를 만드는 힘.’
유현준 교수의 글은 배울 점이 참 많다. 문과인 내가 그의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적절하면서도 쉬운 예시를 드는 부분이다. 교사로서 그의 이러한 능력은 꼭 배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우수함, 역량, 발전적 측면만을 주목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우리의 한계가 무엇인지, 문제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반성하는 측면 또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례들을 우리 역사에서 발굴해 내 그것을 교육해서 학생들이 반성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글을 보면서 지금까지의 내 삶의 방식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문과인 내가 문과적인 정체성으로 문과적 시선이 가득한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면, 당연히 문과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금방 진부한 소리로 치부하고 지루해 할 것이다. 또한 이과적 성향을 갖춘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말을 듣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이과의 중간에 서서 그 둘을 융합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의 글에서 건축사적인 이야기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공감하기 어려웠다. 물론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가장 신나게! 재미나게 써 내려갔을 것이지만 말이다. 내가 유현준 교수처럼 문과와 이과의 경계선에서 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모두에게 새로운 이야기이면서, 기존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던 사람들의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세계를 설계하는 힘. 창조는 바로 융합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유현준 교수의 통찰은 이 시대 전공별로 나뉜 학문 세계에 대한 대안으로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최첨단 기술을 습득하는 것만 강조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도 적절한 비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대로 우리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반성,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최첨단 기술이 사용될 수 있어야 진정한 미래 세계를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