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못하는 뇌 - 삶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진정한 멈춤의 과학
조지프 제벨리 지음, 고현석 옮김 / 갤리온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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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멈추지 못하는 뇌 (조지프 제벨리, 갤리온(웅진지식하우스), 2025, 초판 1)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뇌의 작동 원리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휴식이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뇌는 집중할 때 가동되는집행 네트워크와 휴식과 사색할 때 가동되는디폴트 네트워크로 활성화되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집행 네트워크만을 강조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지금껏 간과해 온 디폴트 네트워크를 연구하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의 원제인 휴식 상태의 뇌(The Brain at Rest)”는 바로 이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디폴트 네트워크는 휴식과 사색에 최적화된 상태로 진정한 멈춤’, ‘인생 회복을 위한 돌파구’, ‘아무것도 하지 않기’, ‘한발 물러서기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에 중독된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대체로 어떤 상태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피곤한 뇌(집행 네트워크만 활성화된 뇌)를 설명한다.

 

과로는 점진적으로 정신 건강을 갉아먹는 진행성 질환이다. …… 심지어 과로는 나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뇌를 늙게 한다. …… 과로는 몸의 모든 장기에 악영향을 미친다.”(46~47, 과로는 어떻게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가.)

 

과로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내 상태와 너무 유사한 증상들이 보여 깜짝 놀랄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과로로 인한 위험성을 지적하고, 어떻게 지친 뇌를 쉬게 해야 하는지 휴식의 방법을 소개한다. 그리고 단순히 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바탕으로 뇌의 창조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놀이. 저자는 신경과학적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밝혀진 디폴트 네트워크의 효과를 제시하고, 휴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면서 앞으로의 인식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뇌 건강을 위한 선언문(295)-

 

저자는 신경과학자로서 과학적 연구 결과에 따라 주장을 펼친다. 그런데 이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저자 개인의 경험과 실천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다. 저자는 일에 중독되어 결국 건강을 해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고, 이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장기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자기 삶을 재구성해 휴식과 놀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저자의 연구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연구가 발전해나갈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뇌 건강을 위해 실천해야 하는 방법을 휴식놀이로 나누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먼저 휴식은 마음방황(87)’, ‘나무 끌어안기(114)’, ‘의도적 고독(145)’, ‘(177)’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핵심은 지금껏 우리가 바쁘게 일하는 것에만 집중해왔기 때문에 이 휴식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죄책감(84)’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갔다. 일이 최우선이고, 시간을 쪼개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휴식은 견딜 수 없는 시간일 수 있다. 마치 담배나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 겪는 금단증상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 죄책감을 이겨내는 것이 휴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놀이에서는 비디오 게임(217)’, ‘능동적 휴식-운동(237)’, ‘닉센-아무것도 하지 않기(262)’를 제시한다. 특히 그는 모든 놀이를 실천하기보다 자신의 놀이 성격에 맞는 활동을 주로 해 나갈 것을 권장한다. 놀이 활동을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어 그것에 맞는 활동을 찾아 나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로 무언가를 수집하는 사람(223)’에 해당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는 것이 가장 좋은 놀이라 생각했는데, 내 성향에 맞는 것만 실천하기보다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이나 부족해 보이는 놀이를 실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대표적인 것이 운동이다. 운동을 통해 평소 내가 활성화하지 못했던 뇌 영역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내 삶에 더욱 풍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뇌 건강 회복을 통해 우리 삶을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래서 뇌 건강을 위한 일종의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과 휴식의 사회적 통념-

 

근대 이후 우리는 노동이 강조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와 같은 이념만이 아니더라도 노동은 신성하고, 반대로 휴식은 게으름이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도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리고 휴식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건강을 해치며 살아왔다. 나는 그래서 저자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겠지만,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제목 자체도 매우 충격이었지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더욱 생산성을 향상하는 방법이라는 주장에 매우 놀랐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방법이 옳은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는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번 대선에서도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로 다뤄졌지만, 아직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한 주당 4.5일제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노동 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더 늘어날 수 있고, 더 많은 노동자가 노동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점은 여러 실험에서 확인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과감한 도전과 실천만이 남은 상태이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처럼 이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실험이 쉽게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바이러스보다 치명적인 일의 펜데믹”(35, 1장 괄로는 어떻게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가.)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그 바쁨에 대한 집착이 애초에 우리가 바쁨을 견뎌낼 능력 자체를 파괴한다는 사실이다.”(78, 2. 일의 뇌과학)

 

저자의 주장을 보면 왜 우리가 적극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 과감하게 게을러져야만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죄책감을 이겨내고 우리 뇌를 디폴트 네트워크상태로 만들기 위해 도전해보자.

 

 

-휴식은 일의 일부(58)-

 

저자는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는 했지만,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동 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건강을 지키기 위한 건강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휴식은 일의 본질적인 일부(58)’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가진 인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가 제시한 휴식과 놀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가. 처음에는 일에 중독된 뇌가 죄책감을 느끼고 어색해할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궁극적으로 이 모든 노력이 어우러진 가장 건강한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냥 평범하게 행동하라.”(306, 나오며. 휴식하는 삶)

 

사회적 통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삶을 개조하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듯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휴식이 일의 일부라는 인식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당당히 휴식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휴식이 주는 죄책감 따위는 아주 깔끔하게 해소될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평범하게 행동하기 위해 단호한 경계를 세울 것을 주문한다. 우리가 휴식을 요구하는 것은 낙오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위해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다양한 신경과학적 실험과 연구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동양 사상이나 문화를 예로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이 일본 문화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아마도 서양에서는 일본 문화가 더욱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어 발음으로 그대로 표기하는 경우는 정확히 어떤 한자를 사용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도 있어서 비슷한 우리 개념을 추가 설명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저자가 동양 문화에서 근거를 찾고 있다는 점을 통해 동양 문화권에서 저자의 주장이 더 쉽게, 먼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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