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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동물 열전 - 최애, 극혐, 짠내를 오가는 한국 야생의 생존 고수들
곽재식 지음 / 다른 / 2025년 6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 팔도 동물 열전 (곽재식, 도서출판 다른, 2025, 초판 1쇄)
“나는 이 책에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 공간에도 얼마나 소중한 자연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밝혀보고자 했다.”(10쪽, 들어가는 말)
저자는 우리 주변의 야생 동물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사실 ‘팔도’는 우리 한반도를 표현한 제목이지만 이 책에서 지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한반도 곳곳에 살고 있는 동물을 애정어린 눈으로 살핀다. 단순히 어떤 야생 동물이 있는지 조사하는 수준이 아니다. 대대로 우리 조상과 함께 살아온 흔적을 찾고,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내면서, 앞으로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한다. 매우 입체적으로 그 동물을 살피는 ‘열전’이다. 예를 들면 한국을 대표하는(?) 야생 동물인 고라니를 살피면서 백제 멸망의 순간부터 현재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방향까지 들여다본다. ‘동물 열전’은 역사적으로도 참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라 생각한다.
이 같은 서술 방식은 저자가 환경과 공학, SF 소설가의 이력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옛 조상들은 우리 자연과 동물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한반도에 사는 대표적인 야생 동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아마도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저자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다양한 자료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끝끝내 찾을 수 없었던 빈 곳은 저자만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가야 했다. 나는 그 상상력이 마음에 들었다. 허무맹랑한 수준이 아니라 어쩐지 그럴듯하게 설득력이 있는 그런 상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은 야생 동물을 애써 공부한 흔적일지 모른다. 먼저 열심히 흩어진 지식을 모아 자기 관점으로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가 우리 현재 삶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미래를 풍족하게 만들어내는 데 보탬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공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 동물-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너무나 당연했던 사실이 외국 학자들의 눈에는 이렇게나 특별하고 놀라운 현상으로 비치고 있다.”(194쪽, 담비)
비단 외국 학자에게만 놀라는 것은 아니다. 나도 이 책에 나온 내용 대부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왜 우리는 여우를 미워하는 것일까. 청설모라는 이름은 과연 무슨 뜻일까. 곰은 왜 탱이를 만들어 ‘미련 곰탱이’가 되었을까. 우리 조상이 익숙하게 알고 지내던 것들이 낯설어진 지금, 이 동물 열전을 읽으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서 많은 것들이 동물과 관련이 있고, 우리 역사에는 친숙한 동물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 조상이 동물들과 가까이에서 생활했고, 그들의 모습을 관찰했던 흔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파트라는 작은 공간 안에 오밀조밀 모여 살면서 동물들과는 절연된 삶을 살고 있다. 당연히 우리 주변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익숙했던 조상의 기억을 되새겨주는 장치고, 우리 문화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해주는 돋보기다.
-야생 동물과 함께 살아갈 미래-
이 책은 과거 한반도에 살았던 야생 동물과 현재를 연결해주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한반도 야생 동물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인상적이다.
“지역 사람들이 함께 동물을 기르고 보호하는 넓은 공간을 만들어 꾸준히 예산을 들여 잘 관리한다면 한국에서도 무척 가치있는 장소로 키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부담 없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동물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된다면, 그곳은 보통의 공원을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가 될 것이다.”(145쪽, 너구리)
나는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나 동물을 자유롭게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상상을 우리나라에서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무 곳에나 야생 동물을 풀어 놓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또는 생태학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에 관련 야생 동물을 함께 보호하는 동물 친화 공원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천 용유도에서 원숭이를 풀어놓고 길렀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기반으로 동물 실험을 당하던 원숭이의 여생을 살아갈 시설을 마련한다면? 역사적 계승이면서 동시에 동물 보호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아이디어가 아닌가!
그리고 야생 동물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중요한 문제를 제시한 점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야생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만 매우 흔히 볼 수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희귀한 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너무 많이 서식한 나머지 농작물에 피해가 커지고 있고, 정부는 고라니를 대량 사냥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 지리산 반달곰은 멸종된 것을 다시 복원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웃 일본에서는 너무 많은 곰이 사람을 공격하는 문제로 대규모로 사냥을 하고 있다. 인간과 야생 동물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적절한 공존이라는 게 가능한 지점은 어떤 것인지 앞으로도 많은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만든 환경-
저자는 환경공학 전문가답게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마치 그대로 내버려 두기만 하면 모든 것은 자연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오류이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제대로 자연을 이해하고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보호도 불가능하다. 단순히 옛 방식으로 되돌아간다고 해서 자연이 마법처럼 저절로 회복되는 일은 없다.”(113쪽, 청설모)
인위적인 조작이나 노력이 자연을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일까. 나는 그 부분에 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은 다람쥐보다는 청설모에게 더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고, 광물을 캐내기 위한 인공 동굴은 박쥐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나는 이 점도 매우 중요한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야생 동물이 도심에 나타나거나 갑자기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인간의 행위가 환경에 어떤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 단순히 인간의 관점에서 자연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 중국에서 건너온 러브버그의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이상 변화가 감지되었다면, 시간을 두고 충분히 연구하여 앞으로 공존해 나가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