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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 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쇄)
하승민을 비롯한 19명의 작가가 짧은 글을 담았다. 모두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1996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한겨레문학상은 총 서른 번의 수상작과 작가를 남겼다. 책의 맨 뒤를 보면 제2회부터 29회까지 수상작과 작가가 기록되어 있다. (왜 1회와 30회는 빠졌는지 의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집을 읽으며 ‘30(서른)’과 ‘힌트’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짧은 글을 보면서 수상작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제29회 수상작인 하승민의 “멜라닌”을 읽어서 그런지 이 소설집에 실려 있는 글이 수상작의 확장된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가 수상 이후 갖게 된 생각이나 경험을 알게 해준 작품들도 있어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여기 실린 19편의 작품 중에서 특히 강화길 작가의 ‘종이탈’과 최진영의 ‘무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최진영의 작품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짧은 글이었지만 읽고 난 후 ‘역시 최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0(서른), 힌트-
“그렇게 서른 번째”(150쪽, 강화길, 종이탈)
“서른!”(179쪽, 강태식, 모든 고릴라에게)
“일단 ‘30’이라고 번호를 쓴다.”(253쪽, 서진, 웰컴 투더 로스트앤드 파운드)
“서른!”(312쪽, 권리, 어나니)
“그러기에 서른 살 전후가 되면 고난이 닥친다.”(371쪽, 한창훈, 홍합, 이시죠?)
이 책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들이 보내온 30주년 기념 글들이다. 30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를 작가마다 개성 있게 풀어냈다. 30이라는 숫자를 보면 뭔가 긴 시간 같기도 하고, 나이 서른을 의미하는 것 같다.(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떠오른다.) 내가 어릴 때 나이 서른은 매우 큰 숫자였지만, 지금은 서른이 그다지 많은 나이가 아니다. 한겨레문학상이 달려온 30년이라는 긴 세월 작가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한겨레출판은 한겨레문학상 30주년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 세대는 <한겨레>에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362쪽, 한창훈, 홍합, 이시죠?)
작가, 출판사, 독자에게 한겨레문학상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아마도 나의 선배 세대들에게 한겨레는 뭔가 뜨거움을 느끼게 만든 상징이었는가보다. 출판사나 작가는 한겨레문학상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의미가 모두에게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힌트’를 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출판사, 작가, 독자는 아마도 저마다의 의미를 힌트 속에 감춰 공유하려고 한 것 같다.
“힌트인가?”(96쪽, 김유원, 힌트)
-한겨레문학상의 역사-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역대 수상자의 글이 수상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나는 이 점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30년간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던 작가에게도 시간의 무게가 쌓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29회 수상자인 하승민 작가의 글이 가장 최근의 한겨레문학상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고, 제2회 수상자인 김연 작가의 글은 아마도 시간의 무게와 함께 작품의 의미가 약간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대체로 최근 수상자의 글은 수상작의 세계관을 확장하거나 반영했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오래전 수상자들은 한겨레출판과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치된 글을 통해 ‘힌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승민의 글에서는 ‘색’이 갖는 차별적 시선을, 김유원의 글에서는 ‘좋아함’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서수진의 글에서는 소수의 남성이 다수의 여성 집단 안에서 받는 ‘역차별’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박서련의 글에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갖게 되는 생각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생각들이 이 책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나는 이런 것들이 바로 한겨레문학상의 역사를 담고 있는 ‘힌트’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래서 그만큼 인식하지 못하는, 인식할 수 없는 가벼운 소재를 소설로 무겁게 다루고 있다. 나는 그렇게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158쪽)’ 그런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길-
한겨레문학상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만큼 인정받고 대접받지 못한다. 그래서 한겨레문학상은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조두진의 ‘표범’에 나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한겨레출판도 아마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겨레문학상을 30년간 지켜온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을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아니라 집에 사는 흑돼지이고 싶었다. …… 킬리만자로에 무슨 놈의 자유가 있어? 종일 먹이를 찾아 헤매고, 천적을 피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는데……”(297쪽, 조두진, 표범)
쉴 새 없이 달려온 한겨레문학상.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30년을 버텨온 그 길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평원을 호령하는 표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아빠다.”(335쪽, 심윤경, 너를 응원해)
한겨레문학상은 아빠와도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뭔가 허술해 보이지만 아이들을 든든하게 보듬어 주어야 하는 존재.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만큼은 꼭 지켜내야 하는 존재. 나는 한겨레문학상이 아빠와 같은 존재로 지금처럼 계속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은 든든한 아빠를 믿고 두렵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더욱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