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창비청소년문학 135
이라야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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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파이트 (이라야, 창비청소년문학, 2025, 초판 1)

어쩌면 사람을 어려워하고 마음 터놓기를 두려워하는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된 발상일지 모른다. 한편으로 내가 전달받은 위로의 힘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201, 작가의 말)

 

어릴 적 상처로 인해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린 하람이가 주인공이다. 그녀의 상처는 어쩌면 부모를 닮았는지 모른다. 사람을 어려워하고, 마음 터놓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빠도, 엄마도, 하람이에게서도 잘 드러나는 모습이다. 지독히도 닮은 가족들이다. 아빠는 아내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캄보디아로 떠나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상처를 보듬는 데에만 최선을 다한다. 엄마는 가족의 상처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파괴하기만 한다. 하람이는 그런 엄마를 보살피며, 엄마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달려간다. 격투기를 배울 수 있는 체육관이다. 하람이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기에 엄마의 시선이 머물렀던 그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람이를 바라봐주던 유일한 존재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다.

 

 

-투정부리지 않는 아이-

 

하람이의 어려운 상황보다도 더 가슴이 아팠던 것은 그녀가 투정조차 부리지 않는 아이였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잘 보살피지 못한다고 탓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한국으로의 도피 과정에서도 엄마를 놓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고 어른인 척 살아야만 하는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럴 거면 왜 나를 낳았느냐고 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억울할 이유도 없다. 임신과 출산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엄마가 선택한 일이고, 그 선택권자인 엄마가 나를 외면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또한 엄마의 마음 아닌가. 그 결과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불합리하지만 내 선택이 아니니 따지고 들 일도 못 된다.”(111, 엄마의 생일)

 

그래서 하람이는 격투기 선수(파이터)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속에 꽁꽁 감춰둔 투정을 온몸으로 쏟아낼 수 있었을 테니까. 격투기 덕분에 하람이는 또래 친구 무하와 원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격투기는 하람이에게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파이트인 이유도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닐까.

 

 

-마음을 두드리는 위로-

 

캄보디아(아빠가 있는 보금자리)를 떠나 돌아가신 한국 할머니의 집을 찾아왔을 때, 하람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수중에 돈은 없었고, 한겨울임에도 두꺼운 외투조차 없었으며,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혼자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람이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주변의 도움 덕분이었다. SNS에서 만났던 무하는 시시콜콜 묻지 않고 그저 도움을 주었으며, 이웃집 할머니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들의 겨울옷을 내주었다. 심지어 원지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오갈 데 없는 하람이의 엄마를 덜컥 받아준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모습이다.

 

단단하고 철벽같은 내 감정선 사이를 얇은 실금처럼 깊게 파고든다.”(59, 방심은 금물)

 

하람이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결국 마음을 연다. 마음의 문은 꼭꼭 닫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려주길 기다렸을 뿐이다. 주변의 가벼운 두드림(위로)만으로 하람이의 마음은 열릴 수 있었다.

 

 

-어른의 역할-

 

하람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주변의 어른들이 그녀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갔을 뿐이다. 하나님을 모시는 아빠가 하람이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는 것은 큰 아이러니였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 했지만 아빠는 사람이라 똑같이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만 절실히 깨달았다.”(92, 찾아오는 사람들)

 

하나님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 혼자 버티게 내버려 둔다는 거. 살든지, 나가떨어지든지, 죽든지.”(144, 울지마, 제발)

 

아마도 하나님은 아빠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하람이가 원한 것은 매우 간단했다. 아이니까, 당연히 바랄 수 있는 것. 바로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죄책감에 빠져 아이를 외면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하람이를 방치했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준 것은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아주 가끔 다녀가시는 할머니뿐이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마저도 돌아가셨으니 하람이에게 남은 어른은 이제 없는 셈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한국에서는 하람이 편에 서주는, 그녀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어른을 만난다. 하람이가 어린아이였고, 그녀가 바란 것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 어른들이 제대로 확인시켜준다. 그들은 권 경위와 체육관 관장님이었다.

 

하람이는 안 불쌍해요? 왜 얘가 엄마의 상처, 고통을 모조리 뒤집어써야 하냐고요, 왜요? …… 얘 아픈 건 누가 알아줄 건데요. 누가요!”(157, 울지마, 제발)

 

그 말을 들으니 속이 좀 풀렸다. 나의 가능성을 평가해주는 거, 지금은 그것도 내게 필요한 양분이었다.”(167, 파이트!)

 

하람이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두드려준 것은 또래 친구 무하와 원지였다. 그런데 권 경위와 체육관 관장님은 하람이가 받은 상처를 치유했다. 하람이가 스스로 할 수 없었던 것. 그녀가 온전히 자기 힘으로 설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그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주었다. 하람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이 어른들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매우 감동적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떤 부모이고 어떤 어른일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살필 수 있는 부모인지, 학생의 든든한 한편이 되어줄 수 있는 어른인지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하람이의 성장 과정은 매우 눈물겹다. 그런데 더 감동적인 것은 그녀의 마음을 두드려주는 친구들,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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