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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25, 개정판 1쇄)
“이 책은 오웰이 썼던 수많은 에세이 가운데 옮긴이가 31편을 뽑아 쓰인 순서대로 엮은 것입니다.”(일러두기)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웰이 생계형 작가였다는 점이다. 오웰은 죽기 직전까지도 수많은 글을 남겼다. 그래서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이지만, 이 책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수많은 속살을 드러낸다. 특히 내가 관심이 생긴 부분은 세 지점이다.
그는 매우 정치적이었다. 그의 정치적인 지향점을 글로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 그 현장에 들어가 행동했다. 파시즘에 반대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었으며,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허상을 드러내기 위해 직접 부랑자로 살았다. 이 사실은 멀끔한 복장에 향긋한 차를 마시며 비싼 타자기로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던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는 매우 역사적이었다. 그는 1903년에 태어나 길지 않은 생을 살았다. 정확히 20세기 초입을 살았다. 격동의 시대, 제1, 2차 세계 대전을 겪었으며, 인도 식민지에서 관료로 근무했으며, 모로코 식민지에서 부랑자 생활을 했다. 내게는 교과서 속 시대이지만, 그에게는 삶이었다. 나는 역사이지만,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는 매우 미래지향적이었다. 자기 시대를 매우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고자 노력했고, 행동을 통해 현실을 바꾸고자 했다. 동물농장과 1984는 현실에 기반한 소설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예측하고자 시도했던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장미 묘목’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심었던 장미 묘목은 그다지 큰 가치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미는 자라서 큰 나무를 이루고, 매년 아름다운 장미를 피워낸다. 그는 장미나 과실수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자본주의적 아름다움과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작은 행위로 인해 후손들에게 큰 결과를 남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직접 체험하고 묘사하는 작가-
오웰이 쓴 글 대부분은 그가 직접 체험한 것이다. 그는 경험을 묘사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아마도 이 능력이 그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비결이지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아마도 글을 쓰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처럼 평생에 걸쳐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그처럼 위대한 소설을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사람은 특히 “어느 서평자의 고백”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첫 글인 “스파이크”나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는 매우 충격적이다. 그는 직접 부랑자의 삶을 경험한다. 그리고 당시 부랑자를 수용하는 시설이나 하층민들을 위한 무료 병원을 찾는다. 솔직히 그가 왜 이런 경험을 하려고 했을지 궁금하다. 정말 돈이 없었을까. 아니면 그가 언급했던 인도의 간디처럼 단지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싶어서였을까. 그것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의 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단선한 체험의 수준을 넘어 그 상황 속으로 완전히 몰입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의 설명이 뒤따른다. 마치 그들의 삶을 내가 겪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가 직접 체험을 통해 묘사한 글은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동시에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감정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나는 이 방법이 당시 권력의 더러운 속내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부랑자)는 이 병원에(가난한 자들을 위한 무료 병원) 오래 있으면서 강의의 단골 교재 노릇을 한 게 분명해 보였다.”(370쪽,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빈부격차가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자본주의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는 저 한 줄의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오웰의 글이 갖는 매우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는 작가-
오웰은 영국 제국주의의 하급 엘리트 출신이었다. 그는 기득권이 행한 교육을 제대로 받아들인 일종의 모범생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나 착취에 대해 전면적인 저항을 하지 않는다. (마치 간디와 같은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그의 글이 간디에 대한 평가여서 조금 놀랐다) 영국 제국주의가 있기에 그가 이런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군국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그 뒤로는 날마다 나팔 소리를 들으며 따분한 5년을 보냈다.”(86쪽, 좌든 우든 나의 조국)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처한 상황에서 영국 제국주의를 비롯한 부당한 권력에 대해 저항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는 글로 그것을 알리려 노력했으며, 그것을 위해 당시 현실을 가장 냉철하고 철저하게 분석하고자 시도했다. “교수형”과 “코끼리를 쏘다”에서는 영국의 식민 지배의 허상을 폭로하는 동시에 무기력한 식민지인의 모습을 묘사한다.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와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를 통해서는 파시즘과 영국 자유주의, 공산주의와 소련의 독재 권력에 대한 처절한 비판을 쏟아낸다. 당대인이라면 거의 관심이 없었을 주제에 대해 그는 글로써 그토록 맹렬히 저항했다. 나는 그 어떤 신문 사설보다도 그의 글이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인도의 식민지 관료로 생활했으며,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외국인 병사였다. 그래서 그의 현실 분석은 다른 곳에서 전해 들은 사람에 비해 더 냉철하고 정확할 수 있었다.
“시와 마이크”, “당신과 원자탄”, “과학이란 무엇인가”, “행락지” 같은 작품은 그가 당시 현실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시를 읽지 않는 세태를 보고 시인들을 위해 라디오 방송에 나와 마이크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고, 과학만을 중시하는 풍토에 대해 인문학적 비판을 가하고 있다. 행락지를 마구잡이로 건설하는 당시 세태를 비판하며 자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다.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었기에, 그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동물농장과 같은 현실에 관심을 두고 비판하지 않으면 1984와 같은 미래가 닥칠 수 있다고 그는 경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을 왜 어떻게 쓰는지 분명한 작가-
오웰은 40대 후반에 죽었다. 지금으로 치면 그다지 긴 생을 산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 “나는 왜 쓰는가”에는 그 목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정치적 목표와 예술적 목적을 융합시키려 한 것이다.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325쪽, 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그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작가다. 그래서 그는 이와 같은 글을 평생에 걸쳐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낮은 수준이 아닌 이상, 문학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시도다.”(243쪽, 문학예방)
나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단지 재능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 오웰의 글을 보며 무언가 분명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처럼 나도 무엇을 어떻게 왜 써야 하는지부터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글을 쓰려고 앉아 있을 때의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보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서점의 추억”, “어느 서평자의 고백”, “작가의 수입”은 정말 현실적인 조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도 책을 좋아해서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솔직히 돈만 충분히 있다면 생계형이 아닌 취미형 서점을 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또 서평은 어떤가. 책을 읽고 싶지만, 수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서평단에 도전하는 것이다. 읽고 쓰고 하는 행위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약간의 강제력이 있어 좋다. 기한이 정해져 있으므로 게을러질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작가의 수입은, 글쎄. 지금 글을 쓰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오웰이 했던 경험과 고민이 이런 글에서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모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아닐까 싶다.
“정말, 정말 좋았지”, “간디에 대한 소견”은 나에겐 정말 두고두고 계속 읽어야 할 글이다. 앞의 글은 ‘학교’를 부정적으로 경험하는 학생의 경험담이고, 뒤의 글은 영국인 식민 관료가 인도인 피식민 민족지도자를 평가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이면서 역사를 가르친다. 두 글에는 내게 정말 소중한 내용이 담겨 있다. 기회가 된다면 위 두 글만을 가지고 새로 서평을 써야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