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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나만의 글쓰기 –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한겨레출판, 2024, 초판 1쇄)
산문, 에세이를 읽은 것이 참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뭔가 허름한 노포 술자리에서 임지은이라는 사람과 진지한 대화를 하며 술 한잔을 진하게 기울인 듯한 느낌이 든달까. 그녀가 내 곁에 앉아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최근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매우 진솔하게 말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세이란게 이런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이 매우 신선했다.
“선생님, 에세이는 도대체 뭘까요? …… 그러니까 에세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고 급기야는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야말로 에세이인가 싶기도 하고 …… 아직까지 제게는, ‘나 자신의 이럴 수밖에 없음’에 대한 글이긴 한데요.”(221~222쪽, 우정)
저자의 말 대로라면, 작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쓴 이 글이야말로 에세이인가 싶다.
-좋아함과 싫어함-
작가의 깊은 통찰에 탄복했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한 쌍이라는 부분을 읽으며 내가 왜 그토록 밋밋한 삶을 사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없는 만큼, 싫어하는 것도 별로 없다.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길수록 거기에는 모난 마음들이 불현듯 솟아나는 나에게 짙은 애정과 미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쌍이다.”(7쪽, 작가의 말)
내가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좋아하게 될수록, 그것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떤 친구를 매우 좋아한다면, 그 친구가 내게 소홀히 대하는 경우, 나는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작가의 이 통찰 덕분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비법(?)같은 것을 하나 얻을 수 있었는데, ‘이유 없이’싫어하는 마음은 분명 어떤 ‘좋아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균등하지 않은 사랑’(15쪽)이다.
비단 이 진실은 내 마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내가 싫어하는 만큼, 다른 누군가도 나를 싫어할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쉽게 알아챌 수 있지만, 그가 나를 왜 싫어하는 지는 사실 잘 알아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지 생각해 본다면, 나를 싫어하는 그는 바로 그것이 싫었던 것일테니까.
-타인으로 인한 그늘-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지만, 모두 다 의존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만큼이나 ‘타인으로 인한 그늘’(33쪽)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심지어 그것은 자라나기까지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나보다 훨씬 잘 알려진 사람이기에 분명 많은 사람으로부터 수많은 말을 들을 것이다. 나 또한 지금껏 살아오면서 타인에게 나에 대한 다양한 말들을 들었다. 오늘만 해도 어떤 말이 내 기분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것이 나를 흔들고 불쾌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꼭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말 덕분에 내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불필요한 눈치를 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비유해 보자면, 나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다. 수많은 말(파도)이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 댄다. 나는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무거운 평형추(타인으로 인한 그늘)가 필요하다. 타인의 말을 들으며 자라난 그 평형추는 큰 파도가 몰아쳐도 나를 안정감 있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라나는 그 그늘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자신의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의 세상을 벗어나려 애썼다. 자신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설정하고 배반(54쪽)하며 살았다. 안정감 있는 평형추가 있었기에 작가는 좁은 연안을 벗어나 더 넓고 거친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작가가 그 흔들림과 든든함을, 밝은 면과 어두운 그늘을 함께 가져가려고 한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내가 더 오래 세상을 살아왔지만, 작가는 마치 인생 선배인 양 내게 아주 훌륭한 조언을 건네고 있었다.
-묘한 기시감-
이 책을 읽으면서 든 그 기시감. 너무도 이상했다. 뭔가 작가의 모습 속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이 겹쳐 보인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봐야겠다.
일단 어린 시절 가정환경으로 반지하. 맞벌이로 귀가가 늦은 부모님. 나를 위해 사주신 비싼 전집, 대백과사전. 그리고 그걸 열심히 읽는 나. 그 덕에 부모님보다 더 좋은 학력을 갖게 되었고, 인생을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술을 마셔도 절대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취한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일 바엔 위험하더라도 그냥 집에 혼자 가버리는 나. 외로움에 사무쳐 친구보다는 연애에만 집중했던 대학 생활. 미친 듯이 이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마셔버리겠다는 호기로 매일 술을 마셨지만, 지금은 술을 거의 입에 대지도 않는 모습. 결정적으로! 작가의 동거인의 이름이 나오는데... 내 이름과 같다. 뭔가 이 부분에서는 화들짝 놀라게 되었다. 덕분에 이 책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작가의 마음과 생각을 따라가며 예전의 내 모습과 지금을 비교해 보았다. 무엇이 달라졌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작가가 언급한 그 ‘리셋 버튼’(177쪽)도 지금의 내가 거의 매일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내 인생에 후회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작가는 화실에서 강사로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이 부분 또한 내게 뭔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가 도망가지 않으면 아이들도 도망가지 않는다. 내가 진지하게 대하면 아이들도 진지해진다. …… 아이들은 어른보다 심장도 빠르게 뛰고 체온도 높아서 그 열기로 뭐든 익힐 수 있다.”(192쪽, 쓰잘데기 없는 예체능)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당당함, 진지함, 아이들을 존중하고 믿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 아이들을 충분히 믿고 있는지를 반성해 본다. 작가는 내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사람, 뭔가 멋짐이 뿜뿜 느껴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는 친구가 되어보고 싶다. 간절히 이런 친구를 사귀고 싶다. 어쩌면 작가는 내가 학생들 때문에 열을 뿜어내고 화를 토해낼 때,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사다 줄 것(208쪽)만 같은 그런 친구다.
작가는 이미 충분히 든든한 어른이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나도 그처럼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어른들처럼 힘 있는 인간은 힘없고 연약한 인간을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었다.”(227쪽, 나의 쪼그라든 개구리)
“같이, 많이 웃고 살아!”(247쪽, 죽은 할머니 안심시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