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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탐정 사무소 2 - 울음은 금이 될 것이다,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연작
이락 지음 / 안녕로빈 / 2024년 11월
평점 :
나만의 글쓰기 – 시 탐정 사무소 ② (이락, 안녕로빈, 2024, 1판 1쇄)
글이 유독 매끄럽고 편안하다. ‘시’를 억지로 추리소설 속에 억지로 끼워 넣었지만, 그 설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을 받았다. 매력적인 전편만큼 후속편에서도 색다른 즐거움을 기대하면서. 역시나 이번에도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었다. 읽기 전 느꼈던 아쉬운 점은 오직 책이 전편보다 얇아졌다는 것뿐이었다. (전체 쪽수는 줄었지만, 오히려 에피소드는 늘었다. 그 점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독자가 소설적 설정(시를 읽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탐정)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다.”(8쪽, 작가의 말)
나만 유독 이 소설적 설정에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니란 것을 작가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작가는 소설을 통해 ‘시’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 본래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듯하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가 되는 단서가 ‘시’로 대체된 점만 뺀다면, 이 책은 명탐정 셜록과 왓슨의 활약으로 해결되는 흥미진진한 사건들로 가득하다.
-‘시’로 마음을 전하다. -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속마음을 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말을 못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내 마음을 적절한 단어로 바꾸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성격상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속마음을 더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만 끙끙 앓는 상태를 ‘어른스러움’이라 표현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소통의 어려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상황,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시 탐정 설록과 그의 조수 왓슨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물어봤더랬죠. 하지만 도무지 말을 하지 않습니다.”(15쪽, 명태)
왜들 그럴까. 왜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질책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겐 입을 떼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도 어려운 일일 수 있으니. 대신 그 털어놓을 수 없는 심정을 ‘시’로 공감해줄 수 있으면 어떨까.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시’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용기’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 마음에 와닿은 ‘시’-
이번 책에서 내 마음에 와닿은 시는 김종길의 ‘성탄제’다. 특히 다음 구절이 내 마음에 꽂혔다.
“어느새 나도 /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52쪽, 똑같은 부자(父子))
나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다. 사실 아버지를 증오한 시간이 더 많았다.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내 어린 기억 속에 좋지 않게 ‘콕’ 박혀 있는 뺄 수 없는 가시같은 상처가 된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젠 나도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세 아이 모두 나보다 엄마를 더 좋아한다. 그럴 땐 좀 서운하기도 하다.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감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아들의 마음이 어떨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아들일 때, 내 아버지가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는 내 거울일 것이다. 아버지 덕에 나는 아들과 잘 지낼 수 있길 바란다.
저자는 ‘자신에게 맞는 시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끌리게(108쪽)’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좋아하는 음식에 끌리는 것만큼 시가 끌리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배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완승의 ‘시 낭독’이 내게도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낭독은 나같이 시에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가슴으로 읽지 않는 낭독이 이 친구의 장점이죠. 듣는 이로 하여금 작품 자체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낭독이랄까요.”(110쪽, 해바라기 살인 사건)
그리고 비록 ‘시’는 아니지만, 시를 이용한 관계 회복 프로그램이 참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은 정부가 예산을 들여 지원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나도 적극 참여해보고 싶었다.
“신청자는 관계 회복을 원하느 사람과 관련된 시 한 편을 짤막한 사연과 함께 프로그램 주최 부서로 보낸다. 담당자는 사연의 진정성이나 초청에 응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선별한 사연을 설록에게 보낸다. 그러면 설록은 신청자가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사무소로 초청하여 대화를 나누며 둘의 관계 회복을 돕는다.”(83쪽, 금이 될 테지)
-시 탐정이 된 이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탐정보다 형사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사설탐정은 불법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일본이나 영국만큼 탐정 관련 유명한 작품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시 탐정’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처음에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약간 변형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형사가 아니라네. 내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도 있고, 진실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자유도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76쪽, 과거를 묻고)
“자유.” 나는 저자가 그 자유로움을 위해 탐정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를 비롯한 문학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법과 다르다. 시는 자유로워야 한다. 정의로운가를 판가름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법보다 더 정의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은 최소한의 정의이지만, 자유는 우리를 가장 정의로 이끌어줄 수 있다. 그래서 시 탐정 설록은 진상을 밝히는 것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저자에게 ‘시’는 무엇일까. 시는 보통의 이야기(128쪽)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란다. 그러니 수업 시간에 배우는 천편일률적인 해석은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무시하는 행위(136쪽)가 되는 것이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근무하는 나로서는 가장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한국사 수업은 우리 현실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 나는 시험에 무엇이 나오는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시야를 길러야 하는 것보다 문제를 풀 때 필요한 함정을 기억해야 하는 그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오늘도 갈등을 느꼈다. 과연 학생에게는 시험이 중요한가, 현실이 중요한가.
흥미진진한 이 추리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또 다른 후속작을 예고했다. 마치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는 터미네이터의 엄지처럼. 언젠가 다시 돌아올 후속편에서 시 탐정 설록(셜록)과 그의 조수 완승(왓슨), 그리고 괴도 류반(루팡)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