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옛사람과의 만남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포스트 모더니즘이 세상을 점령한 시대에 수 세기전의 그림을 들여다 본다는 일은 어쩌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찾아 가는 고루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박물관에 전시된 옛그림을 유리 칸막이 넘어 올려다 보면서 현대인은 앤디 워홀의 강렬한 색체와 명확한 선을 그리워한다. 그러므로 현대의 박물관이란 그저 옛것의 전시장으로 그 모습을 굳힌지 오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진다. 진정, 내가 찾아간 박물관에는 지나간 것의 죽은 그림자만 있던가. '온고이지신'이라는 말은 사전속에 깊숙히 안장되고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소비성의 그림을 보면서 그것에 '자유분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거나 '파격'이라는 칭호를 내려준다. 내가 옛그림을 탐닉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그저 옛그림이 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먼 데 있는 것을 어렵게 찾아 다니는 일에 진력이 났기 때문이라는 구태의연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톨스토이는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보는 것의 갈증을 요구하는 순간에 내 앞에 옛그림이 놓여 있었고, 거기서 나는 옛사람들의 사상과 가치와 신념과 이념과 일상과 사랑까지 흡수하고 싶은 욕심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서 그림속으로 풍덩 빠질수만 있다면 그리해도 좋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루 아침에 탄생한 개벽천지가 아니다. 옛그림이 밑바탕으로 그 디딤돌을 다 해주지 못했다면 앤디워홀도, 백남준도, 몬드리안도, 김환기도 없다. 이렇게 내가 옛그림에 대한 찬사와 결론을 내린다면 역설이다. 현대의 그림은 훌륭하고 천재적인 정교함과 기술적인 뛰어난 테크닉으로 관객을 매혹시키고 있지만 아직 옛그림을 물리칠만한 내 고집을 이길 것은 만나지 못했다. 오늘도 옛그림속으로 터벅터벅 들어가는 나. 그곳에서 나는 상상의 양탄자를 타고 마음껏 유영하고 다닌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이 책의 저자인 '오주석'은 간송 미술관 연구위원이다. 이 직함 하나만 믿고 책을 구입했다. 최완수 선생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아주 신뢰할만한 문화적 소질과 안목을 지닌 인물이라고 철썩같이 믿어버리는 나의 고정관념때문이다. 우리그림에 대한 애정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간송 미술관에 몸 담고 있지 않을 거라는 이 믿음은 오래전 우연한 일로 최완수 선생을 만난 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그 때 행정적인 절차를 위한 형식적인 만남이었지만 작달만한 키에 또박또박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시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간송 미술관은 모든것을 신뢰하게 되는 보증서 같은 명사로 내게 굳어졌다.


12편의 그림을 소개하는 흑백 화면은 눈부신 칼라의 인식에 길들여진 요즈음 세대들에게는 어쩌면 하나의 흠이 될지도 모른다. 나도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 어, 흑백이네 하는 작은 탄성을 자아냈으나 책을 읽는 동안 그것은 단점이면서 동시에 장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흑백이 주는 과거로의 회귀는 옛그림이라는 명제를 부각시키고, 오래된 골동품적인 가치를 유발한다. 그러한 의도가 아닌 제 삼의 다른 뜻이 있었다면 그것은 저자나 출판사의 고유 마케팅에 속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흑백이 주는 의미가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전혀 나쁜지는 않았다. 책 말미에 부록처럼 붙어 온 별도로 첨부 되어 있는 원색도판의 그림으로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그림이 그려지게 된 배경, 그림을 그리는 과정, 당시의 시대상황등을 한 가지씩 접근하며 그림 설명을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옛사람의 시각으로 그림을 보고, 옛사람의 마음 가짐으로 그림속을 읽으라는 의미다. 그의 인문학적인 그림읽는 방식은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 사상, 풍속까지 모두 총망라하며 개인과 국가라는 조직과의 연계과정을 섭렵하여 이해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읽기는 일회성으로 즐기는 쾌락적인 심미안도 아니며, 거기엔 제법 어려운 철학이 숨어 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읽어내는 일은 관객의 몫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목의 중요성이 이럴때에 등장한다. 안목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오래 고민한 적이 있다. 누군가 썼음직한 말로 나 역시 대신해야 하리."세월이 알게 해 주리라."그러나 그 세월의 주체자는 관객 자신이다. 거저 세월이 아니다. 삶의 다단함을 겪어내었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며, 지식의 충족으로 채워지는 것도 아닌 안목. 보고 또 보며 깨우치는 안목. 그렇다. 안목은 놓치지 말고 계속 보는 수고를 요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보았지만 못 보았고 들었지만 못 들었다.'는 정황이 있음을 종종 경험한다. "(184쪽)엉뚱하게 마음을 쓰는 사람에게는 안목이 생길리 없다는 말이다.


훌륭한 그림에는 그 당시 화가가 살았던 모든 것이 녹아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하여 저자는 말한다. 그림속으로 들어가라고. 최상의 방법이란 직접 그것을 내 손으로 해 보는 일이다. 그것을 위하여 바쁜 현대인은 정석의 공부를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 하는 반문을 가져본다. 내가 이 책의 12점의 그림을 보면서 느껴야 했던 것은 저자의 유려한 입담보다는 그림을 그린 조선시대 화가들의 삶과 그들의 지난한 애절함이 포스트모더니즘을 하나의 이념처럼 신봉하는 오늘날에도 그 유려함의 색이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마도>의 그림처럼 그의 그림을 읽는 내면은 김명국의 호쾌한 선(線)보다 더 시적이며, <인왕제색도>에서 보여지는 친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그림속에 등장하는 비안개속에서 움직인다. 김정희가 <세한도>에서 나무 가지를 왜 하늘로 뻗뻗하게 올라가게 그렸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독자는 저자의 숙성된 안목을 만날 수 있다. 옛그림속에는 우리들의 과거만 휑하니 낡은 유물처럼 쓸쓸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한것처럼 옛그림에는 인스턴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려준다.


이 책으로 처음 옛그림을 만나는 독자라면 각장마다 뒤에 따라붙은 '옛 그림의 색채` `옛 그림의 원근법` `옛 그림의 여백` 등의 글도 옛 그림을 읽을 수 있는 공부에 초보자로서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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