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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자기 여행 : 서유럽 편 ㅣ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유럽이 가지고 있는 피상적인 이미지는 ‘어느 왕조의 유물’인지 선명하고 풍요롭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 세부가 가지고 있는 기저의 이미지는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 서구문명의 영향과 그들의 우월주의가 각인된 터라 이슬람의 문명에 무지한 것은 문화상대주의로 인식하지만 유럽의 문화에 일천한 지식을 드러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본서를 읽는 데는 그 용기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p.57
식당 안에 들어서면 역시 알카사르에서 익히 보았던 문양의 타일들이 하단부를 장식하고 있고, 벽에는 타일로 만든 주류 회사의 광고 포스터가 마치 회화작품인 양 붙어있다. 와인이나 맥주 등의 술 광고 포스터를 타일로 만드는 것은 안달루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p.22
18세기까지 세비야는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는, 유즘 말로 유행을 선도하는 '핫플레이스'여다. 다들 잘 아는 것처럼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선도적 역할을 했던 대항해시대의 전초기지가 바로 세비야였다. 이후 스페인이 심대륙에서 획득한 금은보화와 향신료 등은 모두 세비야로 모여들었다. 16세기 초반 유럽 최초의 담배공장이 설립된 곳도 세비야였고, 이후 세비야는 전 유럽에 담배를 공급하는 제조업으로도 번성했다. 시 전역에 흩어져 있던 담배공장들을 통합해 1771년 왕립담배공장을 설립했는데, 이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공업용 건물이자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건축물이었다. 이 공장은 당시 유럽 전체 담배 생산량의 75%를 담당했고 여공들의 숫자만 1만 명이 넘었다.
책은 부제 '서유럽편'에 맞게 서유럽 전역을 돌며 작성되었다. 여기에서 탁월한 점은 단지 저자의 호불호에 갈린다거나, 그 기술적인 아름다움에 의해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체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선과 발걸음이 따르지만 가장 중요한 고려사안은 역사적 맥락이었다. 왜 이러한 도기가 이 곳에 있으며, 이 지역은 어떻게 이러한 문화와 전통을 간직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의 흐름에 맞추어 읊고 있다.
p.73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사실 자기라고 할 수 있는 고품질의 그릇이 출현한 적이 없다. 역시 이슬람 문명의 산물인 러스터웨어(lustreware)라고 하는 도기가 수 세기 동안 존재했지만, 현재로서는 그 존재감이 거의 없다. 스페인에는 자기 전문회사가 존재하지 않고, 포루투갈에는 오직 한 곳이 있다. 아마 그래서 도자기 대신 타일 문명이 발달했을 것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306/pimg_7849491281378168.jpg)
ㅣ이집트 러스터웨어
러스터
러스터의 전파는 '당나라 → 중앙아시아 → 이베리아반도'로 정리된다. 러스터가 당나라에서 중앙아시아로 전파된 경위는 평화로운 문명의 교류가 아니었다. 당시 당나라는 실크로드의 연장을 계획하고 있었고, 이슬람제국은 새로운 지역에 대한 개척을 추진하고 있었다.
p.73
러스터는 색이 없는 투명한 유약을 발라 1차로 구운 도가에 금과 은, 구리 등의 광물을 포함하는 진흙 상태의 안료로 그림을 그려 낮은 온도에서 재차 구운 상회기법의 도기이다.
러스터의 전파를 조금 더 세밀히보면, '당나라 → (탈라스전투) → 이슬람제국 → (現 시리아 수도에 위치한 왕조의 몰락, 에스파냐 코르도바로 이전) → 이베리아 반도 → 유럽 전역 및 북아프리카'로 정리된다.
당나라가 보유하고 있던, 러스터 기술은 탈라스 전투를 통해 이슬람제국으로 이식되었다. 이 때 이슬람제국 전역에 러스터 기술이 보급되었는데, 당시 이슬람제국 중 현재의 시리아 수도에 기반을 둔 세력이 있었다. 이 세력을 우마이야 왕조라 하며, 그 지역을 다마스쿠스라 한다. 그런데 다마스쿠스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게 되면서, 기존에 있던 우마이야 왕족이 에스파냐의 코르도바로 축출된다. 따라서 이슬람제국으로 부터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유럽보다 이베리아 반도에 러스터가 먼저 전파된 것이다.
탈라스전투
탈라스 전투는 그 의의가 가지는 크기 때문에 많은 해석이 존재한다. 가장 표면적으로는 이슬람제국과 당나라의 전투로 당나라의 패배하였다는 것이다. 이 결과로 당시 세계 패권국이었던 당나라의 기술이 중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종이의 전달이다. 유럽으로 간 종이는 쿠덴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에 획획한 공헌을 하였다. 이 때, 러스터와 같은 기술이 함께 전달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주요 결과 : 중앙아시아에서의 이슬람 제국의 영향력 공고, 유목민에게 이슬람교 전파, 동에서 서로 제지술 전파, 금 세공술 전파 / 그러나 이 패배가 당나라의 몰락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후에 일어난 안녹산의 난으로 내부가 시끄러워지자 서역경영이 사실상 불가능해 지고, 이후 당이 멸망한 것이다. 보이기에는 탈라스 전투로 인해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진 것 처럼 보이나, 실상은 내부의 문제로 이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pp.77-78
우미야 왕조가 망하고 아바스 왕조가 생기는 과정에서 왕족에 대한 대대적인 척살을 운좋게 피해 코르도바로 탈출해 새 왕조를 연 것이므로 자연스레 다므스쿠수의 도자 기술이 코르도바로 유입된 것이다. 이리하여 코르도바를 대표하는 중심 관광지가 된 메즈키타의 메디나 아즈 자하라는 동양의 러스터웨어를 받아들인 유럽의 첫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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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2년 마다 개최되는 마르세스 도자기 비엔날레(사진은 2015년. 제12회)
아라곤 러스터(Aragonese Luster)
p.81
당시 유일한 이슬람 세력이었던 그라나다만이 외롭게 말라가, 알메리아와 함께 근근이 버티고 잇는 상황이다. 나바르는 여전히 오늘날 바스크라 불리는 북부 산악 지대의 조그만 왕국으로 머물러 있고, 아라곤 왕군은 오늘날 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카탈루냐 지방을 포함해 중부의 발렌시아 지방까지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발렌시아 지방이 아라곤 왕국에 속해있었으므로, 발렌시아 러스터를 아라곤 러스터라고도 한다.
발렌시아에는 투리아(Turia)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는 데, 그 인근에 마니세스(Manises)라는 지역이 있다. 현재는 발렌시아 공항의 입지이기도 하다. 아라곤 러스터, 발렌시아 러스터라고 하는 것은 대개 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다. 구글에 manises를 검색하면 ceramics이 자동완성된다.
피겨린
피겨린(figurine)이 일본으로 넘거가면서 피규어(Figure)로 잘못 읽히게 되었고, 이 것이 우리의 발음에 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우리는 피겨린으로 발음을 고치는 것이 낫다. 아무튼 이 피겨린 또한 발렌시아 지역이 유명하다. 특히 우리에게도 유명한 야드로 피겨린(LLADRO figurine)은 야드로 가문의 삼형제가 발렌시아지역에서 구워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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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본서는 단순히 유럽에 있는 도자기들 중 이쁘고 신기한 것을 모아 책으로 편 것이 아니다. 그 역사적 흐름과 맥락을 따라 도기의 전파와 발전상을 다큐맨터리처럼 보여주고 있다. 도자기를 통하여 유럽 각 지역의 문화를 언급하고, 그 흐름을 통하여 도기의 발전상을 읽어준다. 에스파냐를 시작으로 하여, 포르투갈을 거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통해 영국으로 끝맺음을 한다. 이 동선은 도자기의 전파루트와 같으며, 그 발전상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길이다.
p.141
(알폰소 10세)그가 콘비벤시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은 어린 시절을 보낸 톨레도가 카스티야 왕국의 중심지로서 레콩키스타 이전 이슬람 번영기의 코르도바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톨레도야말로 코르도바 몰락 이후 유럽의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한 '문명의 배꼽'이었다. 주변의 유대인이나 무슬림들과 함께 살다 보니 소년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버칙'에 대해 눈뜬 셈이다.
*톨레도는 위 지도에서 카스티야 왕국의 한 가운데 있다. 바로 위에는 현재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가 있다.
*레콩키스타:(위키피디아)레콩키스타는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레콩키스타는 에스파냐어와 포르투갈어로 ‘재정복’을 뜻하며 한국어로는 '국토 회복 운동'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으로 잃어버린 가톨릭 국가의 영토를 회복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레콩키스타는 보통 722년 코바동가 전투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본다. 포르투갈의 레콩키스타는 1249년에 아폰수 3세가 알가르브를 점령하였을 때 완료되었다. 아폰수 3세는 ‘포르투갈과 알가르브의 국왕’이라는 칭호를 쓴 최초의 포르투갈 군주였다. 1492년에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에스파냐 연합왕국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점령지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레콩키스타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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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행사에서는 마드리드 여행상품에 대한 광고로 '만성 수면부족을 즐기는'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투우와 플라멩고를 즐기던 그들의 국가를 우리는 정열의 나라라고 부른다. 위 사진은 마드리드의 선술집 '보데가스 멜리베아(Bodegas melibea)'로 입구에 대형 아술레호를 장식해두었다. 좌측의 그림은 앵그르의 <샘>이다. 앵그르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오달리스크>와 <터키의 욕탕>이라면 바로 그 다음의 위상을 차지 할 듯 싶다. 그 아래는 내부의 전경인데, 벽에있는 세 개의 아술레호는 모두 레즈비언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앵그르는 고향도 사망지도 모두 프랑스)
pp.164-165
'멜리베아(melibea)'라고 하는 가게 이름은 스페인 문학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멜리베아는 스페인 최초의 소설이자 최초의 사랑 이야기인 『라 셀레스티나』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1499년에 『라 셀레스티나』가 발표되면서 중세 스페인 문학은 마감된다. 이 작품은 늙은 중매쟁이 셀레스티나와 그녀를 후견인으로 둔 고아 소녀들, 두 명의 젊은 연인과 이들의 두 하인에 관한 비극이다. 스페인 문학사에서는 『돈키호테』에 버금가는 것으로, 스페인 문학이 사실주의로 발전해 나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한다.
세비아를 시작으로 이베리아반도 전역에는 타일장식인 아술레호가 즐비하다. 이 중 세비아와 코르도바 지역은 10세기 이전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다면, 마드리드와 톨레도 지역에는 중세 이후의 작품들 또는 현대에 이루어진 중세풍의 작품들이 아주 가까운 곳에 즐비해있다.
p.161
(마드리드 여행에서)제일 좋은 것은 그냥 쏘다니기다. 마드리드는 어디를 가도 그냥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니는 '뚜벅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