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과학 분자요리
이시카와 신이치 지음, 홍주영 옮김 / 끌레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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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거세게 불어닥친 쿡방 열풍으로 인해, 전국민의 셰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컨텐츠와 뉴페이스의 셰프가 초기보다 새롭게 발굴되지 못하는 면이 있어 아쉽지만, 여전히 요리열풍은 불고있는 중이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요리, 조리기구들이 소개되고 시장에 더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웰빙의 먹거리에서 화려한 요리까지 전방위의 열풍은 결국 분자요리까지 그 신드롬을 이어오고 있다.


 



분자요리가 세상에 눈을 뜬 것은 아마도 1992년 '분자 가스트로노미(molecular gastronomy)'라는 단어가 소개되면서 확고해 진 것 같다. 현재는 초기 멤버들이 대거 이탈하고, 분자 가스트로노미와 선을 긋고 있지만 아주 세세한 사항을 모른다면 현재도 분자 가스트로노미는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분자란 화학적, 물리적인 것을 가리키며, 가스트로노미는 미식학을 의미한다. 요리사들이 그러하듯 번역에 약간의 조미료를 가미한다면 분자요리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분자요리는 우리가 알던 요리의 해체를 분자수준까지 미시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포도를 빻고, 숙성시켜 와인이 되듯. 그 단계를 조금 더 미시적으로 확인하고 증명하겠다는 시도다. 과거 전승되어 오던 전통적인 방식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오류를 바로 잡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전통적인 레시피에서는 물이 끓어오르기 바로 직전 다시마를 건져내는 방법을 채택하였다면 분자수준으로 해체된 레시피에서는 정확한 온도를 제시해준다.


분자요리에 매진하고 있는 유명 셰프들의 첫 번째 고민은 단연 '맛'에 있다. 비주얼과 참신함은 그 다음의 문제다. 따라서 그들이 연구하는 과학적 방식은 오직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맛있다!"고 느끼게 디ㅗ는 과정은 음식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의사전달 게임' 같은 것이다. ... 맛 정보는 맛 분자 → 수용체 → 신경전달 → 뇌 기능 → 인지, 지각 등으로 순차적으로 전달된다."(P.55) 요리사에게 과학은 지식의 자랑이나, 신기함에 대한 추종이 아니다. 오직 맛으로 다가가는 길 목에서 만난 좋은 조력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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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황의 시대, 한국경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동원 지음 / 미래의창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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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

한마디로 세계경제의 뉴 노멀은 해답 없는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라고 할 수 있다. 장기침체란, 한 나라의 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지속할 뿐만 아니라 생산 역량을 완전히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 무기력하게 만드는 힘은 당장의 어려움도, 미래에 대한 불투명도 아니다. 뻔히 보히는 암흑은 인간으로 하여금 나아갈 힘을 더 이상 주지 않는다. 다행히 노력하면 된다고, 이 불황에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지 않냐며 윽박지르던 목소리는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대신에 고개를 든 이야기는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가난이 두렵고 무서운 이유는 비난의 화살이 내게든 가족에게든 또 다른 사회구성원에게든 돌아가기 때문이다. 팍팍한 현실을 그저 운이 없어서 라고 허허 웃을 수 있는 상태를 해탈과 열반의 경지라고 부른다. 그 반열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필요하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왜 이렇게 밖에 되지 못했는지. 이유는 어딘가에게는 있을 것이다. 당신의 노력이 부족했던지, 사회가 구조적으로 붕괴되었던지.


책은 표지에서 부터 지금이 불황의 시대이며, '헬조선'과 'N포'세대를 안아주겠노라 선언하고 있다. 책의 질문대로 '몰락과 도약의 갈림길에서 공생의 빅딜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터, 경제학적 사유를 들어 볼 수 있다.



p.59

"중국발 훈풍이 역풍으로" 중국이 보다 균형 있는 성장 궤도로 전화하기 전까지 세계경제는 '차이나 리스크'에 노출될 것이다. - Martin Wolf


경제학과 교수답게, 감성적이고 공감적인 이야기보다는 현시경제의 문제, 경제구조의 악화상태를 언급하며 현세태가 왜 이렇게 되어왔는지를 분석한다.


p.63

중국경제가 신창타이의 시련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관점, 특히 금융 부실 문제가 심각하다는 해외의 시각이 이른바 경착률론(hard landing scenario) 또는 '중국 위기론'이며, 중국경제가 구조 전화의 고통을 겪지만 극복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연착륙론(soft landing scenario)이다. *신창이는 뉴 노멀의 중국식 표현


익히 알다시피 중국은 '슈퍼차이나'로 불리며, 전세계의 큰 손으로 위치했다. 2009년을 기해 중국의 GDP는 일본을 앞질러 G2로 부상하였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변화다. 내수시장의 경색이 심화된 최근, 중국과의 교역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는 사실이다. 저자는 그들의 동향을 파악한 결과 추후 수십년간은 중국의 태양이 지지 않을 것이라 분석하였다. 



책은

경제학자 다운 책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N포 세대의 참상은 사실 경제로 부터 기인된 것이다. 현세대의 학력과 스펙은 단군이래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취업의 문턱에 번번히 좌절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온상국이 되어버린 헬조선은 경쟁의식만을 부추겨, 바늘구멍을 통과한 일부를 보여주며 미생들을 압박하고 있다. 


취업난과 부모의 도산은 자존감의 하락으로 연결된다. 더 이상 정치적 소신을 말할 힘도 여력도 없다. '제 구실도 못하는 주제에' 세상의 정의를 찾는 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지 모른다. 롤즈의 정의론, 마키아벨리의 국가론을 읽을 시간도 없다. 문송하지 않으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 학문적 가치를 따지고, 우리 역사를 되짚어 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시사사전을 읽어야 하며, 한국사 문제집을 풀어야 한다.


경제의 경색은 나아지리라는 빛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되지 않아도 좋으니, 가능성만 보여준다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중소기업의 도산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도 중소기업에 취업하고 싶은 청년은 없다. 공무원은 꿈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수달의 아비처럼 우리 새끼, 마누라 조개 하나 주기 위한 생존의 꿈을 꾸기게 요새 젊은이 들이 나약하고 꿈이 없는 것이다.


한국 경제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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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 - 옛 초상화에서 찾은 한국인의 모습과 아름다움
이태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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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금새 진경산수화, 풍속화, 초상화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우리 것 보다는 서양의 미술에 노출이 많이 된다. 따라서 미술사라고 하면 바로크, 로코코부터 이야기를 하지 비슷한 시기의 에 일어난 풍속화, 진경산수화에 대해서는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고르게 된,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는 명지대학교 이태호 교수님께서 정년을 오래 두지 않고 쓰신 역작이다. 40년이 다되는 시간 동안 한 분야에 매진한다면, 속된 말로 대충 써도 역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평생을 두고 실견한 초상화 작품만 500여점이라하시니, 그 맥을 꿰뚫는 정도가 놀라울 따름니다. 특히나 이런 깊이 있는, 그리고 필연적으로 현대에는 전혀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다수 등장하는 문서들은 저자들이 일부러 약속을 한 것인지 맥락이 안맞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행간에 담긴 숙의를 파악해야 하는데, 비전문가인 독자가 전문가인 저자의 것을 간파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본서는 교양과 전문서적의 경계를 오가며 쓰여진 책이다. 전문성으로만 저자의 연배를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만 문투로는 저자의 연배를 대략 짐작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없었다면, 젊은 큐레이터가 집필한 책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심어준다. 아마도 책 디자인과 구성 또한 한 몫을 했으리라.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어진으로 고종9년에 다시 그려졌다. 국보 제317호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재위 1661-1722)



명나라 13대 황제. 만력제(생몰 1563-1620)


조선 초기에는 명나라의 어진 제작 방식을 따라 정면의좌상으로 그려졌다. 정면의좌상이란 자리에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구도를 의미한다. 현재 태조의 어진은 남아 있는 어진 중 유일한 정면의좌상 구도.


p.13

조선시대는 초상화의 시대라고 이를 만하다. 한국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초상화가 그려졌고, 500년 동안 예술성 높은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부터 고위 관료인 공신(功臣)이나 문인(文人)의 영정(影幀)에 이르기까지, 초상화 제작은 대부분 도화서 화원들의 몫이었다.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

조선의 초상화는 진솔한 사실성에 기초하여 제작되었다. 심지어는 근자에는 초상화에 그려진 검버섯과 피부병을 분석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사실적인 기치는 단지 외형적인 닮음에 한정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을 담아 내기위하여 배채법을 활용하였다. 


배채법이란 화폭의 뒷면에 채색을 하여 이 것이 앞면으로 나타나도록 한 것인데, 이러한 방법은 은은한 효과 덕에 기풍과 사실성 모두를 잡아낼 수 있었다. 특히나 수염을 그리고, 황인인 조선의 문인을 담아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기법이었다.



초상화의 제작과정(문화유산채널 발췌)1

초상화(肖像畵)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찍부터 발달해 온 미술 장르 중 하나로모범이 되는 역사적 인물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되기 시작했다초상화는 넓은 의미에서 인물화의 범위에 속하지만특정한 인물을 대상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인물의 모습을 그린 일반 인물화와는 구별된다따라서 초상화는 개성을 지닌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지극히 사실적인 태도로 형상화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외형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고 대상 인물의 내면까지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칠실관화설; 바늘구멍사진기

어렸을 적 바늘구멍사진기를 접해본 기억이 있다. 당시에도 원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 이해를 하게 된 것은 조금 더 커서의 일이다. 이 바늘구멍사진기를 왜 사진기라 부르는지는 조금 더 성장했을 때 알게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는 것은 조금 더 지나서의 일이다. 


이 것을 조선시대에는 칠실파려안이라 불렀다. 명칭의 생소함을 떠나 조선에 카메라 옵스큐라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우며, 그 기록은 정약용 선생의 문집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움 속에 다행스러운 반가움이다.


다산문집 10권. 애체출화도설

*애체 렌즈 애체(靉靆 화경(火鏡))의 불은 태양의 난기(煖氣)이다태양의 난기는 강렬하여도 태우지 아니하므로 비록 한여름이라도 사람이 견딜 만하다사람이 견딜 만한 것은 그을려도 불타지 않기 때문이다가령 한 창문이 동그랗게 말굽 크기만하게 있다고 하면거기서 받는 태양의 난기도 말굽 크기만할 것이다방법이 있으니 말굽 크기만한 것을 녹두알만큼 작게 집약한다면 말굽 크기만하게 받은 난기도 녹두알만큼 작게 집약될 것이다말굽만하게 퍼져서 온화하던 것을 녹두만하게 집약한다면 매우 뜨겁지 않겠는가매우 뜨거운 것이 부딪히면 불이 그때 발생되는 것이니이것이 애체가 불을 낼 수 있는 까닭이다.


칠실관화설

*고개지, 육탐미: 둘 다 유명한 화가 / 집을 산과 호수 사이에 지으니 여울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이 좌우에 비춰 들고 죽수 화석(竹樹花石)은 떨기떨기 쌓였으며 누각(樓閣)의 담장과 울이 죽죽 뻗어 있다이에 청명하고 좋은 날을 가려 방에 들어가 외부의 밝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창과 출입구를 다 막아 방안을 칠흑같이 하되오직 한 구멍만 남겨 애체를 그 구멍에 안정시킨다그리고는 눈처럼 하얀 종이판을 애체와 두어 자 거리에 애체에 따라 거리를 조정한다받아서 비추게 하면여울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또는 죽수 화석(竹樹花石)이 떨기져 쌓인 것과 담장과 울이 죽죽 뻗어 있는 것이 모두 판지 위에 반사되어 짙고 옅은 청록색과 성긴 가지와 조밀한 잎의 형태와 색깔이 천연 그대로 선명하고 위치가 정연한 한 폭의 천연적인 그림이 되어섬세하기가 실오라기나 머리털 같아 고개지(顧凱之)육탐미(陸探微)로도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니아마도 천하의 기관(奇觀)일 것이다애석한 것은 바람받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을 묘사하기 어려운 것이다그러나 사물의 형체가 거꾸로 되었으므로 황홀한 감상이 든다지금 어떤 사람이 조금도 틀리지 않은 초상화를 그리려 한다면 이밖에 다시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뜰에 단좌(端坐)하여 마치 이소인(泥塑人흙으로 빚어서 만든 사람 모양)같이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묘사하기 어려움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다를 바 없으리라.




2




<유언호 초상화> 이명기, 1787


위는 도화서 화원 이명기가 그린 유언호의 초상화로 당시 우의정이었다. 저자는 이 그림을 카메라 옵스쿠라로 그렸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 근거가 명확하다. 초상화 우측 하단에 쓰여있는 작은 글귀는 '용체장활시원신감일반'으로, 뜻을 풀어보면, '얼굴과 몸의 길이와 폭은 원래의 신장에 견주어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이다. 즉, 배율조정이 가능한 카메라 옵스쿠라로 초본을 떳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ㅣ<이기양 초상>, 작자미상. 1780-1790추정. 한국미술감정평가원에서는 가치를 5~8천만원으로 추산


복암 이기양 묘지명

*나=정약용, 형=정약전, 이기양과 정약전은 베프 / "복암이 일찍이 나의 형 집에서 칠실파려안(camera obscura)을 설치하고 거기에 거꾸로 비친 그림자를 따라서 초상화 초본을 그리게 하였다. 복암공은 뜰에 설치된 의자에 태양을 향해 앉아 있었다. 털끝 하나라도 움직익이면 모사하기 어려운데, 공은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의연하게 오랫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윤증초상> 장경주, 1744



<윤증초상> 이명기, 1788


윤증초상

윤증초상은 1744년 장경주에 의해 제작되었다가, 1788년 이명기가 이모하였다. 그런데 이 이모과정에서 카메라 옵스큐라가 사용되었을지 모르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우선 제의적 의미가 강한 초상화를 밑에 두고 배끼는 작업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모는 그림을 옆에 두고 따라 그리는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p.115

소품의 초본은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로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원본을 옆에 놓고 보면서 그렸다면 두 그림 사이에 차이가 있어야 할 것인데, 장경주본과 이명기의 구법 초상화는 외관상으로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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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자기 여행 : 서유럽 편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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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가지고 있는 피상적인 이미지는 어느 왕조의 유물인지 선명하고 풍요롭게 드러난다그러나 그 세부가 가지고 있는 기저의 이미지는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서구문명의 영향과 그들의 우월주의가 각인된 터라 이슬람의 문명에 무지한 것은 문화상대주의로 인식하지만 유럽의 문화에 일천한 지식을 드러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본서를 읽는 데는 그 용기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p.57

식당 안에 들어서면 역시 알카사르에서 익히 보았던 문양의 타일들이 하단부를 장식하고 있고벽에는 타일로 만든 주류 회사의 광고 포스터가 마치 회화작품인 양 붙어있다와인이나 맥주 등의 술 광고 포스터를 타일로 만드는 것은 안달루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p.22

 

 

18세기까지 세비야는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는, 유즘 말로 유행을 선도하는 '핫플레이스'여다. 다들 잘 아는 것처럼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선도적 역할을 했던 대항해시대의 전초기지가 바로 세비야였다. 이후 스페인이 심대륙에서 획득한 금은보화와 향신료 등은 모두 세비야로 모여들었다. 16세기 초반 유럽 최초의 담배공장이 설립된 곳도 세비야였고, 이후 세비야는 전 유럽에 담배를 공급하는 제조업으로도 번성했다. 시 전역에 흩어져 있던 담배공장들을 통합해 1771년 왕립담배공장을 설립했는데, 이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공업용 건물이자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건축물이었다. 이 공장은 당시 유럽 전체 담배 생산량의 75%를 담당했고 여공들의 숫자만 1만 명이 넘었다.


책은 부제 '서유럽편'에 맞게 서유럽 전역을 돌며 작성되었다. 여기에서 탁월한 점은 단지 저자의 호불호에 갈린다거나, 그 기술적인 아름다움에 의해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체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선과 발걸음이 따르지만 가장 중요한 고려사안은 역사적 맥락이었다. 왜 이러한 도기가 이 곳에 있으며, 이 지역은 어떻게 이러한 문화와 전통을 간직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의 흐름에 맞추어 읊고 있다.


p.73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사실 자기라고 할 수 있는 고품질의 그릇이 출현한 적이 없다. 역시 이슬람 문명의 산물인 러스터웨어(lustreware)라고 하는 도기가 수 세기 동안 존재했지만, 현재로서는 그 존재감이 거의 없다. 스페인에는 자기 전문회사가 존재하지 않고, 포루투갈에는 오직 한 곳이 있다. 아마 그래서 도자기 대신 타일 문명이 발달했을 것이다.



이집트 러스터웨어


러스터

러스터의 전파는 '당나라 → 중앙아시아 → 이베리아반도'로 정리된다. 러스터가 당나라에서 중앙아시아로 전파된 경위는 평화로운 문명의 교류가 아니었다. 당시 당나라는 실크로드의 연장을 계획하고 있었고, 이슬람제국은 새로운 지역에 대한 개척을 추진하고 있었다. 


p.73

러스터는 색이 없는 투명한 유약을 발라 1차로 구운 도가에 금과 은, 구리 등의 광물을 포함하는 진흙 상태의 안료로 그림을 그려 낮은 온도에서 재차 구운 상회기법의 도기이다.


러스터의 전파를 조금 더 세밀히보면, '당나라  (탈라스전투)   이슬람제국  (現 시리아 수도에 위치한 왕조의 몰락, 에스파냐 코르도바로 이전)   이베리아 반도  유럽 전역 및 북아프리카'로 정리된다.


당나라가 보유하고 있던, 러스터 기술은 탈라스 전투를 통해 이슬람제국으로 이식되었다. 이 때 이슬람제국 전역에 러스터 기술이 보급되었는데, 당시 이슬람제국 중 현재의 시리아 수도에 기반을 둔 세력이 있었다. 이 세력을 우마이야 왕조라 하며, 그 지역을 다마스쿠스라 한다. 그런데 다마스쿠스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게 되면서, 기존에 있던 우마이야 왕족이 에스파냐의 코르도바로 축출된다. 따라서 이슬람제국으로 부터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유럽보다 이베리아 반도에 러스터가 먼저 전파된 것이다.



탈라스전투

탈라스 전투는 그 의의가 가지는 크기 때문에 많은 해석이 존재한다. 가장 표면적으로는 이슬람제국과 당나라의 전투로 당나라의 패배하였다는 것이다. 이 결과로 당시 세계 패권국이었던 당나라의 기술이 중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종이의 전달이다. 유럽으로 간 종이는 쿠덴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에 획획한 공헌을 하였다. 이 때, 러스터와 같은 기술이 함께 전달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주요 결과 : 중앙아시아에서의 이슬람 제국의 영향력 공고, 유목민에게 이슬람교 전파, 동에서 서로 제지술 전파, 금 세공술 전파 / 그러나 이 패배가 당나라의 몰락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후에 일어난 안녹산의 난으로 내부가 시끄러워지자 서역경영이 사실상 불가능해 지고, 이후 당이 멸망한 것이다. 보이기에는 탈라스 전투로 인해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진 것 처럼 보이나, 실상은 내부의 문제로 이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pp.77-78

우미야 왕조가 망하고 아바스 왕조가 생기는 과정에서 왕족에 대한 대대적인 척살을 운좋게 피해 코르도바로 탈출해 새 왕조를 연 것이므로 자연스레 다므스쿠수의 도자 기술이 코르도바로 유입된 것이다. 이리하여 코르도바를 대표하는 중심 관광지가 된 메즈키타의 메디나 아즈 자하라는 동양의 러스터웨어를 받아들인 유럽의 첫 중심지가 되었다.




2년 마다 개최되는 마르세스 도자기 비엔날레(사진은 2015년. 제12회)


아라곤 러스터(Aragonese Luster)

p.81

당시 유일한 이슬람 세력이었던 그라나다만이 외롭게 말라가, 알메리아와 함께 근근이 버티고 잇는 상황이다. 나바르는 여전히 오늘날 바스크라 불리는 북부 산악 지대의 조그만 왕국으로 머물러 있고, 아라곤 왕군은 오늘날 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카탈루냐 지방을 포함해 중부의 발렌시아 지방까지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발렌시아 지방이 아라곤 왕국에 속해있었으므로, 발렌시아 러스터를 아라곤 러스터라고도 한다.


발렌시아에는 투리아(Turia)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는 데, 그 인근에 마니세스(Manises)라는 지역이 있다. 현재는 발렌시아 공항의 입지이기도 하다. 아라곤 러스터, 발렌시아 러스터라고 하는 것은 대개 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다. 구글에 manises를 검색하면 ceramics이 자동완성된다.



피겨린

피겨린(figurine)이 일본으로 넘거가면서 피규어(Figure)로 잘못 읽히게 되었고, 이 것이 우리의 발음에 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우리는 피겨린으로 발음을 고치는 것이 낫다. 아무튼 이 피겨린 또한 발렌시아 지역이 유명하다. 특히 우리에게도 유명한 야드로 피겨린(LLADRO figurine)은 야드로 가문의 삼형제가 발렌시아지역에서 구워낸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본서는 단순히 유럽에 있는 도자기들 중 이쁘고 신기한 것을 모아 책으로 편 것이 아니다. 그 역사적 흐름과 맥락을 따라 도기의 전파와 발전상을 다큐맨터리처럼 보여주고 있다. 도자기를 통하여 유럽 각 지역의 문화를 언급하고, 그 흐름을 통하여 도기의 발전상을 읽어준다. 에스파냐를 시작으로 하여, 포르투갈을 거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통해 영국으로 끝맺음을 한다. 이 동선은 도자기의 전파루트와 같으며, 그 발전상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길이다.


p.141

(알폰소 10세)그가 콘비벤시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은 어린 시절을 보낸 톨레도가 카스티야 왕국의 중심지로서 레콩키스타 이전 이슬람 번영기의 코르도바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톨레도야말로 코르도바 몰락 이후 유럽의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한 '문명의 배꼽'이었다. 주변의 유대인이나 무슬림들과 함께 살다 보니 소년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버칙'에 대해 눈뜬 셈이다.


*톨레도는 위 지도에서 카스티야 왕국의 한 가운데 있다. 바로 위에는 현재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가 있다.

*레콩키스타:(위키피디아)레콩키스타는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레콩키스타는 에스파냐어와 포르투갈어로 ‘재정복’을 뜻하며 한국어로는 '국토 회복 운동'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으로 잃어버린 가톨릭 국가의 영토를 회복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레콩키스타는 보통 722년 코바동가 전투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본다. 포르투갈의 레콩키스타는 1249년에 아폰수 3세가 알가르브를 점령하였을 때 완료되었다. 아폰수 3세는 ‘포르투갈과 알가르브의 국왕’이라는 칭호를 쓴 최초의 포르투갈 군주였다. 1492년에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에스파냐 연합왕국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점령지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레콩키스타는 마무리된다.




한 여행사에서는 마드리드 여행상품에 대한 광고로 '만성 수면부족을 즐기는'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투우와 플라멩고를 즐기던 그들의 국가를 우리는 정열의 나라라고 부른다. 위 사진은 마드리드의 선술집 '보데가스 멜리베아(Bodegas melibea)'로 입구에 대형 아술레호를 장식해두었다. 좌측의 그림은 앵그르의 <샘>이다. 앵그르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오달리스크>와 <터키의 욕탕>이라면 바로 그 다음의 위상을 차지 할 듯 싶다. 그 아래는 내부의 전경인데, 벽에있는 세 개의 아술레호는 모두 레즈비언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앵그르는 고향도 사망지도 모두 프랑스)


pp.164-165

'멜리베아(melibea)'라고 하는 가게 이름은 스페인 문학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멜리베아는 스페인 최초의 소설이자 최초의 사랑 이야기인 『라 셀레스티나』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1499년에 『라 셀레스티나』가 발표되면서 중세 스페인 문학은 마감된다. 이 작품은 늙은 중매쟁이 셀레스티나와 그녀를 후견인으로 둔 고아 소녀들, 두 명의 젊은 연인과 이들의 두 하인에 관한 비극이다. 스페인 문학사에서는 『돈키호테』에 버금가는 것으로, 스페인 문학이 사실주의로 발전해 나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한다.


세비아를 시작으로 이베리아반도 전역에는 타일장식인 아술레호가 즐비하다. 이 중 세비아와 코르도바 지역은 10세기 이전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다면, 마드리드와 톨레도 지역에는 중세 이후의 작품들 또는 현대에 이루어진 중세풍의 작품들이 아주 가까운 곳에 즐비해있다. 


p.161

(마드리드 여행에서)제일 좋은 것은 그냥 쏘다니기다. 마드리드는 어디를 가도 그냥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니는 '뚜벅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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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의 철학수업 -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생각법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3
후쿠하라 마사히로 지음, 임해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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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의 문제가 꺼림직하고, 용서가 어렵기는 하지만 동일한 문화권, 블록경제로 그들과 우리는 경제, 사회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 닮은 점이 많다는 것과 친밀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 담은 '더욱 친해지고 싶은 이웃나라 한국의 평화와 발전을 기원하며'라는 문장이 일본인 저자라는 이유로 고깝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배울 것은 배우고, 같은 처지인 부분에 한해 앎을 공유하는 것은 용서와는 별개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일본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다른 사회적, 문화적 기반이 취약한 실정이다. 이들에게도 공학에 밀려 인문학은 뒷방 노인네의 학문이 되었으며, '1+1=2'임을 증명하기 위해 철학적 사고는 정답을 내놓지 못하는 사변에 지나지 못하게되었다. 이 안타까움으로 인해 저자는 일본에서 책을 펴냈으며, 인문소양의 빈곤에 동감하는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는 이를 수입하게 되었다.


pp.44-45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강연회가 끝난 뒤 질문을 한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광경이었다. "정말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도움이 됐습니다." 강연자가 아니라 질문자에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은 일본엥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나도 이 광경을 처음 봤을 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무척 신선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한 모습이었다.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

저자는 일본의 입시제도에 대해, 정확히는 그 문항에 대해 통탄을 하고 있다. 참으로 익숙한 모습이다. 오래전에 최승호 시인으로 기억이 되는데, 본인의 시를 제제로 한 수능 문제를 풀었더니 75점이 나오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맥락적으로는 맞으나,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 있음). 아래는 저자가 제시한 2014학년도 일본 대학입시 '윤리'과목의 문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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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7. 구조주의의 대표적 사상가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있다. 다음 3가지 설명을 잘 읽고 그의 사상을 올바르게 설명한 것을 모두 고르시오.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의 절대화를 비판하고 '야생의 사고'와 '과학적 사고'사이에 우열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성적 사고'를 언어의 관점에서 다시 고찰했으며, 언어 활동은 일정한 법칙에 따르는 '언어 게임'이며 '공동체'를 통해 얻게 된다고 보았다.

㉢'미개 사회'의 씨족 및 신화 연구를 통해 개인의 주관적 의의를 넘어서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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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항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시험 다음날 신문에 게재된 이 문제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너무나도 무의미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요즘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게 무슨 윤리 문제인가. 적어도 윤리 분야의 시험이라면 기억력의 정확성을 측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상가의 생각에 대한 학생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문제가 나와야 하지 않은가?(p.49)'


이는 우리나라 문제를 두고 언급을 해도 괴리감이 들지 않는다. 아래는 2016학년도. 즉 2015년 11월에 치루어진 '윤리와 사상'과목의 수능문제다.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상가와 사상의 대응을 묻는 일본 보다는 낫다. 문제를 읽고, 해석함으로서 사상을 추론해 볼 수 있는 여지는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력을 측정할 수 없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출제자의 한계나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OMR카드에 5지선다로 체킹을 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해야 하며, 이원목적분류표라 하여 단순암기를 묻는 문제를 일정 비율 출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p.51

하지만 한편으로 기대할 만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대학 입시가 큰 폭으로 바뀌려는 조짐이 그것이다. 암기력으로 풀 수 있는 지식 편중의 마크 시트 방식의 시험을 폐지하고 종합적인 사고력이나 판단력을 묻는 서술형 문제를 출제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물고기는 헤엄친다" "새는 (  )"

일본 초등학교의 문제다. 물론 정답은 '난다'이며, 일본에서는 그렇게 쓰지 않은 답은 모조리 틀렸다고 처리되었다. 우리라고해서 다를까.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문제를 출제한 교사의 자질을 의심할 것이다. 이유는 정답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상황은 정답이 하나인 경우는 극히 드물며, 여러 개인 경우도 다행히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답이 모호하다.



저 일본인 벙어리인가?

p.87

(프랑스 유학 중)그렇게 한 학기가 끝날 때쯤 학생들이 모여 지난 수업 내용을 점검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 신랄한 지적을 당했다. "너는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토론을 피하고만 있잖아. 네가 외국인인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영어를 못하는 건 당연해.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어?"


제목 또한 본서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TV에 또는 직장에서 외국인이 한국말을 서툴게 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깔보거나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취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어를 사용한데 있어 지나치게 두려움을 가지고있다. 간혹 노래를 듣다보면 한국어인데도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럼 그러려니 하는데, 팝송에서 놓치는 단어가 있으면 그렇게도 악착같이 듣고자 한다.




국제바칼로레아

바칼로레아는 1808년 나폴레옹시대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시험제도로, 우리나라로 치면 논술시험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과 문항의 형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바칼로레아는 세계적으로 그 가치와 위상을 인정받아 국제평가의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식의 문제인데, 이것이 우리의 수능과 같은 영향력을 지닌다. 책에 소개된 국제 바칼로레아의 이념은 아래와 같다. ⓐ국제 바칼로레아는 다른 문화의 이해와 존중의 정신을 통해 보다 좋고 평등한 세계의 실현에 공헌할 수 있는 탐구심과 지식 그리고 보람을 갖춘 젊은이의 육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제 바칼로레아는 학교와 정부 및 구제기관과 협력해 도전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엄정한 평가 시스템 개발을 위해 노력한다. ⓒ국제 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은 세계 각지에서 배우는 젊은이들을 위해 사람들이 갖는 차이를 차지아로서 이해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정상덩을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평생에 걸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마음을 갖고 학습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국제 바칼로레아에서 정의하는 '배우는 사람의 태도'라는 것은 ①탐구하는 사람 ②지식이 있는 사람 ③생각하는 사람 ④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 ⑤신념을 가진 사람 ⑥마음을 여는 사람 ⑦배려가 있는 사람 ⑧도전하는 사람 ⑨균형 잡힌 사람 ⑩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책의 말미

뜬구름만 잡는 철학적 논의는 현대사회에서 죽은 지식과 같다. 아무리 높게 평가를 해주더라도 이상만 좇는 이상주의자에 불과하다. 현상계로 내려오지 못하는 철학논증은 묘비명에 쓰기에나 딱 알맞다. 저자 또한 이에 대해 선을 확실하게 긋고 있다. 지식이 있어야 하며, 영어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 토대에 철학이 있어야한다고 견지하고있다.


그렇다. 철학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드물다. 하지만, 철학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가히 무궁무진하다. 대화를 함에 있어, 결정을 함에 있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은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본서에서는 지식에 치우친, 과학에 치우친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이지 지식과 과학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사고에는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과학도, 지식도 본래 나아가려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철학이라는 것은 반드시 소크라테스, 비트켄슈타인의 사상이 아니다. 나의 선택을 설명할 나의 언어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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