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의 철학수업 -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생각법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3
후쿠하라 마사히로 지음, 임해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일본과의 문제가 꺼림직하고, 용서가 어렵기는 하지만 동일한 문화권, 블록경제로 그들과 우리는 경제, 사회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 닮은 점이 많다는 것과 친밀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 담은 '더욱 친해지고 싶은 이웃나라 한국의 평화와 발전을 기원하며'라는 문장이 일본인 저자라는 이유로 고깝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배울 것은 배우고, 같은 처지인 부분에 한해 앎을 공유하는 것은 용서와는 별개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일본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다른 사회적, 문화적 기반이 취약한 실정이다. 이들에게도 공학에 밀려 인문학은 뒷방 노인네의 학문이 되었으며, '1+1=2'임을 증명하기 위해 철학적 사고는 정답을 내놓지 못하는 사변에 지나지 못하게되었다. 이 안타까움으로 인해 저자는 일본에서 책을 펴냈으며, 인문소양의 빈곤에 동감하는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는 이를 수입하게 되었다.


pp.44-45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강연회가 끝난 뒤 질문을 한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광경이었다. "정말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도움이 됐습니다." 강연자가 아니라 질문자에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은 일본엥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나도 이 광경을 처음 봤을 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무척 신선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한 모습이었다.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

저자는 일본의 입시제도에 대해, 정확히는 그 문항에 대해 통탄을 하고 있다. 참으로 익숙한 모습이다. 오래전에 최승호 시인으로 기억이 되는데, 본인의 시를 제제로 한 수능 문제를 풀었더니 75점이 나오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맥락적으로는 맞으나,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 있음). 아래는 저자가 제시한 2014학년도 일본 대학입시 '윤리'과목의 문항이다.


-----

문제7. 구조주의의 대표적 사상가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있다. 다음 3가지 설명을 잘 읽고 그의 사상을 올바르게 설명한 것을 모두 고르시오.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의 절대화를 비판하고 '야생의 사고'와 '과학적 사고'사이에 우열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성적 사고'를 언어의 관점에서 다시 고찰했으며, 언어 활동은 일정한 법칙에 따르는 '언어 게임'이며 '공동체'를 통해 얻게 된다고 보았다.

㉢'미개 사회'의 씨족 및 신화 연구를 통해 개인의 주관적 의의를 넘어서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끌어냈다. 

-----

 

이 문항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시험 다음날 신문에 게재된 이 문제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너무나도 무의미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요즘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게 무슨 윤리 문제인가. 적어도 윤리 분야의 시험이라면 기억력의 정확성을 측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상가의 생각에 대한 학생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문제가 나와야 하지 않은가?(p.49)'


이는 우리나라 문제를 두고 언급을 해도 괴리감이 들지 않는다. 아래는 2016학년도. 즉 2015년 11월에 치루어진 '윤리와 사상'과목의 수능문제다.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상가와 사상의 대응을 묻는 일본 보다는 낫다. 문제를 읽고, 해석함으로서 사상을 추론해 볼 수 있는 여지는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력을 측정할 수 없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출제자의 한계나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OMR카드에 5지선다로 체킹을 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해야 하며, 이원목적분류표라 하여 단순암기를 묻는 문제를 일정 비율 출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p.51

하지만 한편으로 기대할 만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대학 입시가 큰 폭으로 바뀌려는 조짐이 그것이다. 암기력으로 풀 수 있는 지식 편중의 마크 시트 방식의 시험을 폐지하고 종합적인 사고력이나 판단력을 묻는 서술형 문제를 출제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물고기는 헤엄친다" "새는 (  )"

일본 초등학교의 문제다. 물론 정답은 '난다'이며, 일본에서는 그렇게 쓰지 않은 답은 모조리 틀렸다고 처리되었다. 우리라고해서 다를까.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문제를 출제한 교사의 자질을 의심할 것이다. 이유는 정답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상황은 정답이 하나인 경우는 극히 드물며, 여러 개인 경우도 다행히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답이 모호하다.



저 일본인 벙어리인가?

p.87

(프랑스 유학 중)그렇게 한 학기가 끝날 때쯤 학생들이 모여 지난 수업 내용을 점검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 신랄한 지적을 당했다. "너는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토론을 피하고만 있잖아. 네가 외국인인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영어를 못하는 건 당연해.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어?"


제목 또한 본서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TV에 또는 직장에서 외국인이 한국말을 서툴게 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깔보거나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취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어를 사용한데 있어 지나치게 두려움을 가지고있다. 간혹 노래를 듣다보면 한국어인데도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럼 그러려니 하는데, 팝송에서 놓치는 단어가 있으면 그렇게도 악착같이 듣고자 한다.




국제바칼로레아

바칼로레아는 1808년 나폴레옹시대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시험제도로, 우리나라로 치면 논술시험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과 문항의 형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바칼로레아는 세계적으로 그 가치와 위상을 인정받아 국제평가의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식의 문제인데, 이것이 우리의 수능과 같은 영향력을 지닌다. 책에 소개된 국제 바칼로레아의 이념은 아래와 같다. ⓐ국제 바칼로레아는 다른 문화의 이해와 존중의 정신을 통해 보다 좋고 평등한 세계의 실현에 공헌할 수 있는 탐구심과 지식 그리고 보람을 갖춘 젊은이의 육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제 바칼로레아는 학교와 정부 및 구제기관과 협력해 도전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엄정한 평가 시스템 개발을 위해 노력한다. ⓒ국제 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은 세계 각지에서 배우는 젊은이들을 위해 사람들이 갖는 차이를 차지아로서 이해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정상덩을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평생에 걸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마음을 갖고 학습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국제 바칼로레아에서 정의하는 '배우는 사람의 태도'라는 것은 ①탐구하는 사람 ②지식이 있는 사람 ③생각하는 사람 ④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 ⑤신념을 가진 사람 ⑥마음을 여는 사람 ⑦배려가 있는 사람 ⑧도전하는 사람 ⑨균형 잡힌 사람 ⑩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책의 말미

뜬구름만 잡는 철학적 논의는 현대사회에서 죽은 지식과 같다. 아무리 높게 평가를 해주더라도 이상만 좇는 이상주의자에 불과하다. 현상계로 내려오지 못하는 철학논증은 묘비명에 쓰기에나 딱 알맞다. 저자 또한 이에 대해 선을 확실하게 긋고 있다. 지식이 있어야 하며, 영어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 토대에 철학이 있어야한다고 견지하고있다.


그렇다. 철학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드물다. 하지만, 철학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가히 무궁무진하다. 대화를 함에 있어, 결정을 함에 있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은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본서에서는 지식에 치우친, 과학에 치우친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이지 지식과 과학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사고에는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과학도, 지식도 본래 나아가려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철학이라는 것은 반드시 소크라테스, 비트켄슈타인의 사상이 아니다. 나의 선택을 설명할 나의 언어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