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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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고 무겁다는 역사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보다 재미있게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도 그러한 책 중 하나다.
남의 일기처럼 재미있는 글이 또 있을까?
조선시대에 쓰인 일기를 읽을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은 실제로 조선시대에살았던 인물들이 쓴 일기를 통해 조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다만 그 시대에 점잖게 앉아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계층은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모두 양반이 쓴 일기로 구성되어 있어 주로 양반의 생활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 책에 수록된 일기에 한 가지 특성이 부여되는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일기에는 개인적인 일화에 더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은 내면까지 적혀있지만 양반들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 것을 고려하고 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자의 일기라 하더라도 허락 없이 읽는 것은 양심에 찔리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나같은 독자도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조선시대 일기와 그에 대한 해설 모두 현대적인 표현으로 적으며 독자와의 거리를 확 좁히려고 신경썼다는 것이다.

본문은 양반들의 일기와 그 일기를 해설하는 저자의 글, 그리고 해당 내용의 이해를 돕는 조선시대의 제도나 문화를 설명한 상자 안의 글, 이렇게 세 가지로 구성되었는데, 앞서 말했듯 우리가 지금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로 풀어내어 독자가 가볍게 읽으면서 조선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뉴비, 고인물 파티, 국룰, CEO 같은 단어로 조선시대 일기 속 상황을 설명하고, 조선시대의 관청에서 일하는 관리의 직함에도 대리, 차장, 과장을 썼을 정도다.

거기에다 저자는 일기에 담긴 조선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이어서, 예컨대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지금 또는 과거에 오랜 시간 시험이나 취업을 준비한 독자는 문과 과거에 계속 낙방하여 무과로 전환하면서 과거 준비에만 총 12년을 보내고 또 수년의 기다림 끝에 관직을 받은 노상추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책에 수록된 사진 자료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저자가 조선시대 일기를 필사한 것이고 (그러니까 실제 조선시대 일기 사진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조선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그림이나 문서의 사진 자료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인데, 저자 개인으로서는 자신이 필사한 자료가 책에 수록되는 일이 의미가 있겠지만 독자로서는 실제 일기의 사진 자료가 들어갔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공정한 시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부정행위가 관례까지 되어버린 난장판 과거시험, 오랜 기간의 공부 끝에 어렵사리 과거에 급제했지만 그 이후 관직을 받기까지 또 기다림의 시간, 그렇게 드디어 관리가 되었으나 겪어야 하는 곤욕스러운 신고식, 수령과 양반 사이의 투쟁, 온갖 이야기에 권위 있고 멋있게 등장해서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턱도 없는 출장비 때문에 자신과 수행단의 의식주를 해결하느라 애쓰며 지방 파견을 가야만 했던 암행어사(‘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암행어사라니!’ 라는 제목에서 암행어사가 되는 일은 그만큼 기꺼운 일이 아니었음이 느껴진다), 투옥과 유배 생활, 할아버지가 쓴 손자 육아일기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는 가족간의 갈등, 부동산에 큰 관심이 쏠린 지금 읽어 더 재미있던 좋은 땅을 차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마냥 을이었을 것만 같았는데 실은 양반을 사칭하거나 중간에 횡령하며 꼼수를 부리기도 했던 노비들의 이야기까지, 생각밖의 조선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에 이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인데, 사실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는 이전 저작 외에는 역사와 관련된 이력이 보이지 않아 책을 읽기 전에는 전문성면에서 조금 걱정했지만, 저자는 전문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문 검수 등에는 고전번역교육원의 교수와 선생의 도움을 받아 책을 집필했다고 했고, 책 말미에 정리된 참고문헌과 도판출처도 그런 걱정은 덜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은 각 일기에 담긴 이야기에 저자의 해설까지 더해지니 ‘역사 드라마보다 재밌는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이라는 문구에 맞게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조선의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재미있고 부담없이 가볍게 읽으며 조선시대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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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미술관 - 캔버스에 투영된 과학의 뮤즈
전창림 외 지음 / 어바웃어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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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문을 문과, 이과, 그리고 예체능으로 나누곤 하고, 사람 또한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으로 나누면서 서로의 사고방식 차이를 재미삼을 정도로 이런 분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그만큼 문과와 이과는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게 하는, 거리가 있는 학문으로 생각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그래도 문과와 예체능은 한데 묶이기도 할 정도로 거리감이 없는데 반하여, 문과와 이과는 정반대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나름대로 여러 예술 분야 도서를 읽고 또 살펴봤지만 과학과 미술의 조합은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이전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때문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는 출간 소식이 보일 때마다 눈길이 가며 ‘대작’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과연 각종 추천 도서와 우수 도서 목록에 오르는 시리즈가 되었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아직까지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지 않았는데 이번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그러니까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 <미술관에 간 수학자>, <미술관에 간 의학자>, 그리고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이 다섯 권 중 호응이 좋았던 내용을 묶은 <과학자의 미술관>이 출간되었고, 이 소식을 보고 ‘내가 이 책으로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으려고 지금가지 안 읽었나보다’ 했다.

<과학자의 미술관>은 단순히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일부를 묶은 것이 아니라 양장본으로 재탄생 시키면서 디자인과 내용에 더욱 신경을 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를 활용하여 미술작품 안에 숨겨진 과학을 표현한 책 커버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그 커버를 벗기면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모나리자와 미술관을 옮겨 놓은 듯한 목차를 보며 책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음을 알 수 있었고, (단권으로 출판된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내 눈으로 직접 비교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판형을 키우면서 명화 도판 크기도 키웠으며 책 말미에 있는 ‘History of Science and Art’ 코너도 <과학자의 미술관>에 추가된 부분이라고 하니 내용도 보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의 저자들은 화학공학, 수학, 의학, 물리학 등을 전공하고 교수나 의사로 활동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고, 특히 전창림 교수님은 미술과 화학의 접점을 찾는 일을 꾸준히 해오셨기 때문에 글이 더욱 기대되었다.

책은 프롤로그, ‘화학자의 미술관’, ‘물리학자의 미술관’, ‘수학자의 미술관’, ‘의학자의 미술관’, 특별부록인 History of Science and Art 그리고 작품 찾아보기 순으로 구성되었는데, 화학, 물리학, 수학, 의학 중 미술과 가장 떼어놓을 수 없는 분야는 ‘화학’이 아닐까 싶다.
회화의 주재료인 물감이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장은 ‘화학자의 미술관’이고, 화학 작용으로 인한 작품의 변색과 독이 된 물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연금술사와 산소 같은 화학에 대한 이야기와 미술 작품에 분석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화학자의 미술관’을 읽으면서는 화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림 속 상징을 통해서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지식 또한 상당하다는 게 느껴졌다.

다음 장은 ‘물리학자의 미술관’이고, ‘화학자의 미술관’에서 회화를 다루었다면 ‘물리학자의 미술관’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다루고 빅토르 바자렐리, 조지아 오키프, 잭슨 폴록,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추상적인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다룬다.
그리고 ‘물리학자의 미술관’을 읽으면서는 물리학자가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존에 내가 미술 작품을 보는 것과 이렇게 다르구나를 느낄 수 있었는데, 클로드 모네 그림 속 물결을 보며 파동에 대해 생각하고 수면을 보고는 반사와 투과를 떠올리다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미술 작품을 이런 시각으로 볼 기회가 있었을까 싶다.

세 번째 장 ‘수학자의 미술관’을 읽으면서는 원근법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 미술의 기초를 쌓는 데 도움이 되었고, 미술 속 수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황금비율에 대한 내용도 빠지지 않고 다룬다.
또 유명한 고대 수학자들을 한 점의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 <아테네학당>을 현대의 수학자가 지나칠 수 있을리가 없었으니, <아테네학당>을 함께 보며 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를 비롯한 고대 수학자들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물리학자의 미술관’과 ‘수학자의 미술관’ 모두에서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을 다루어서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을 각자 어떻게 보았는지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마지막 장 ‘의학자의 미술관’을 읽기 전에는 의학과 미술이 이렇게 책이 쓰일 정도로 관련이 있나 싶었지만, 코로나19 이후로 더욱 주목을 받은 페스트(흑사병), 스페인 독감, 에드가 드가와 빈센트 반 고흐 등 많은 예술가들이 즐겼지만 뇌세포를 파괴하고 환각을 일으키는 압생트 같은 익숙한 소재부터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질환인 농축이골증처럼 처음 보는 질병에 대한 지식을 통해 내가 몰랐던 그림의 배경과 예술가에 대해 알아가며 의학 또한 미술 작품과 예술가를 깊이 이해하게 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술을 마시면 왜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는지, 와인은 건강에 좋다고 하던데 얼마나 마시면 되는지와 같이 독자가 궁금해 할 생활 밀착 의학 정보를 알려주는 건 덤이다.

이렇게 본문이 끝나면 <과학자의 미술관>에 추가된 특별부록인 ‘History of Science and Art’로 간단한 시대별 미술의 특징과 대표 작품 그리고 과학사를 한눈에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책은 그림과 사진 자료도 중요한 법이다.
그래서 명화 도판 크기를 키웠다는 소식이 반가웠는데,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그림 자료도 여럿에 심지어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운 그림 자료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명화 크기가 워낙 크다보니 책의 한 페이지를 그림으로 가득 채워도 작은 부분까지 속속들이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 사실 일부는 그 이전에 선명도가 아쉬웠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부분을 큰 그림에서 떼어 확대한 부분도로 어느 정도 보완했다.

또한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자료뿐만 아니라 과학 지식을 설명하는 그림과 사진 자료들을 적극 활용해서 특히 사람들이 어려워 하는 물리학과 수학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과학자의 미술관>은 과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미술을 보며 시야를 넓히고 싶고, 또 과학과 미술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고 싶지만 <미술관에 간 지식인> 다섯 권을 다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독자에게 좋은 선택지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이미 읽었어도 이렇게 예술적인 디자인에 튼튼한 양장본으로 과학과 미술, 이 두 분야 융합의 결정체를 소장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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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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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영혼, 사후세계, 초자연현상을 소재로 한 20세기 초 영국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철학적 사유가 담긴 책으로, 공포심을 자아내지는 않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읽지 못하는 독자도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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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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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기이한 이야기>에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널리 알려졌던 소설가이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작품에 접목시킨 최초의 작가 중 한 명이라는 메이 싱클레어가 쓴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제일 앞에 위치한 ‘그들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에서는 오스카 웨이드와 불륜을 저지른 해리엇 리가 마주하게 되는 사후 세계를 볼 수 있고, ‘징표’는 남편 도널드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올케 시슬리의 유령이 보이는 시누이 헬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은 시슬리가 남편 도널드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세 번째로 수록된 ‘크리스털의 결점’은 100페이지가 넘어 이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 중 가장 길이가 긴데, 소설의 주인공 애거사 버럴은 어느 날 다른 사람의 몸에 닿지 않고 심지어 멀리 있어도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되고 그 능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면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작가 메이 싱클레어는 애거사의 힘이 발휘되는 과정과 그 힘의 정체에 대해서 섬세하게 묘사했다.


‘증거의 본질’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로저먼드가 세상을 떠난 후 폴린 실버와 재혼한 에드먼드 마스턴에게 전처 로저먼드의 유령이 찾아와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은 사랑에눈이 멀어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게 된 오르가니스트 윌프리드 홀리어 이야기다.



“오, 제발. 그런 말 말아요. 당신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윌프리드.”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처럼 이야기하시는걸요. 만일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아들이 자기 죽음을 바랐고 그 소망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갔음을 알게 된다면.......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

p.253



‘희생자’에서는 폭력성 있는 남자 스티븐 애크로이드가 결혼까지 앞두었던 연인 도시가 자신을 떠나자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고용주 그레이트헤드 씨를 치밀한 계획 하에 죽이는데, 살인 과정이 주는 긴박함 때문에 일곱 개의 단편소설 중에서도 페이지가 가장 빠르게 넘어갔으며 살인이라는 흉악한 범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일곱 편의 소설 중 가장 철학적 냄새가 짙고 복잡한 세계관을 가진 ‘절대적 세계의 발견’을 읽으면서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좇으며 살아온 스폴딩 씨가 마주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방문할 수 있다.


스폴딩 씨가 마주한 사후세계는 책의 첫 번째 단편소설에서 해리엇 리가 본 사후세계와는 또 다르다.
해리엇 리가 본 사후세계는 지옥에 가까운 반면에 스폴딩 씨가 있는 사후세계는 천국에 가까우며 더욱 정신적이고 철학적이다.

스폴딩 씨는 이 사후세계에서 그렇게 동경하던 철학자 이마뉘엘 칸트를 만나 정신적 상태 그 자체인 이 특별한 세계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선형적으로 확장하는 일차원적 시간이 아닌 삼차원의 입체적 시간을 경험하는데, 나도 스폴딩 씨가 보고 느낀 것을 작가가 묘사한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의 어마어마한 평면들이 교차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한 공간의 평면들이 돌아가며 뒤섞이는 것과 같았다. 다른 시공간들이 일어났다가 쓰러지고, 둘러싸고 둘러싸였다. 그리고 거대한 장면 속 작디작은 부분에, 탄생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자신의 삶이 곧 다가올 천상에서의 삶과 함께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서 보면, 한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참기 힘들었던 엘리자베스의 불륜도 사소하고 별것 아닌 사건이었다.

p.341



이렇게 <기이한 이야기>에서는 유령, 영혼, 사후세계,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지만 공포심을 자아내려는 목적이 아니고 철학적이기 때문에 밤에 읽어도, 오늘처럼 비가 내려 어둑어둑한 날에 읽어도 (이런 날에 잘 어울리기는 하다) 무서운 느낌이 전혀 없으니 무서운 이야기를 못 읽는 독자가 읽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뷸륜 관계가 나오는 단편소설이 몇 편 있어 불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그 부분이 조금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한 20세기 초 영국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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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
한국역사인문교육원(미래학교) 지음 / 창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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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는 역사인문 평생교육기관인 한국역사인문교육원 저술교실의 열여섯 명이 각자 한 주제씩 맡아 자료를 수집하고 써낸 글 열여섯 편을 묶어 출간한 책이다.
(한국역사인문교육원 대표 오정윤 씨는 지은이 중 한 명으로 이름이 올라갔지만 이 책을 전체적으로 개괄하는 머리말만을 썼다)
열여섯 개의 글은 문체와 구조가 비슷해서 각 글을 쓴 사람이 달라도 이질감 없이 한 권의 책 같았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 그리고 궁녀와 내시, 이렇게 주요 궁궐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궁궐과 사람들’.
다음으로 군주의 상징인 용, 추녀마루 위에서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잡상, 그리고 조선의 궁 건축에 영향을 끼친 철학적 텍스트 <주역>을 다룬 ‘궁궐과 상징들’.
그 다음으로 유교 이념과 궁궐의 정치문화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오례, 관리들의 등급과 경력과 신분을 나타내는 이력서와 같은 품계훈작, 조선의 궁,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 그리고 조선의 새로운 도읍의 행정부로 조선의 심장과 같다는 한성부를 다룬 ‘궁궐과 제도들’.
마지막으로 왕의 다양한 호칭과 그 의미, 왕과 왕비가 영원히 잠드는 공간인 왕릉,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실의 유교 사당 종묘,그리고 국왕의 권위의 상징이자 예술적 집합체인 옥새를 뜯어보는 ‘궁궐과 의례들’.

책은 이 모든 것을 너무 깊지는 않되 조선 궁궐 내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요한 부분은 콕콕 찝어 다루어서 조선 궁궐 내의 문화라고는 드라마나 영화로 접한 것이 전부인 입문자가 읽기에 적당해 보인다.

<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교과서적인 책으로, 사진과 그림자료 그리고 표를 활용하고 번호를 매겨 주제에 대한 여러 내용을 잘 정리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시와 환관이 같은 직책을 말하는 것인지, 궁궐 여성들을 부르는 여러 호칭들은 무슨 의미이고 어떻게 나뉘는지와 같은 궁금증을 풀 수 있기 때문에 조선 궁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호칭이며 그 문화가 복잡하게 보여 대강 넘어가고는 한다면 인물 구분을 명확히 하고 드라마와 영화를 더욱 즐기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사진과 그림 자료는 흑백으로 인쇄되었는데, 그건 둘째 치더라도 한눈에 보아도 선명하지 않은 사진과 그림이 여럿이고 심지어 크기가 작은데도 이미지가 깨져서 대강의 형태만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는 점이 책의 완성도 떨어뜨린다.

그리고 앞으로 보완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
앞서 말할 것처럼 이 책은 역사인문 평생교육기관저술교실 사람들이 나름대로 조사해서 쓴 글을 묶은 것인데, 책날개에 있는 지은이들의 한 줄 소개를 보면 궁궐문화원 책임연구원/선임연구원이나 역사문화 전문해설사나 문화유산 해설사나 박물관 전문해설사와 같은 활동을 한 이력이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필자도 보인다.

역사를 어느정도 깊이있게 전공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쓰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향후 시민들의 평생학습과 생산적 학습은 이런 방향의 성과물로 결과를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한국역사인문교육원 대표 오정윤 씨의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다만 이번에 책 내용의 근거가 되는 문헌의 출처를 자세히 표기했거나 역사를 깊이 있게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탄탄한 경력을 가진 전문가의 감수가 있었다면 책이 더 전문적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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