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31년 로워 엘리배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2018년 내슈빌까지 이어진다. 4대를 이어내려간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그들과 함께 한 모든 것들 풀벌레, 파랑새, 폭풍우, 토마토, 어치 등의 이야기다. 이동진이 추천했다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책은 작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오늘 관찰한 것들의 일기 같기도 하고, 무던하게 그려간 기록하고 싶은 날의 풍경 같기도 하다. 로워 앨리바마, 버밍행, 콜라라도 등지를 오가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아직은 세상이 조금 덜 발달했을 때에 그의 곁에는 파랑새도 있었고, 갈색 집 굴뚝새도 있었다. 연못에 내려앉은 수련 때문에 개구리나, 밤, 거북이가 살아갈 공간이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늙은 개과 붉은 꼬미 말똥가리가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태어나던 날 사랑스러운 아기를 중심으로 기꺼이 우주가 되어준 사랑하는 친족들이 있었다. 


아이는 자란다. 까마귀가 탐내는 홍관조의 알과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어미 새의 몸부림을 보며, 굴뚝새가 아기 새에게 물려주는 애벌레들을 바라보는 눈이 옆에 달린 어치의 겅중거림을 보며 그렇게 이 죽음들을 딛고 일어서는 또 다른 세계를 보며.

이는 비단 곤충과 동물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종조부, 조부모, 심지어 부모님들까지 저자라는 태양을 지켜주던 우주들은 하나씩 제 시간에 맞추어 소멸되었고 그와는 반대로 또 다른 태양은 태어나고 저자 또한 어느덧 아이를 보호하는 우주가 되었다.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언젠가 있었던 시골집 툇마루에서 손자인 내게 선풍기를 양보해 주고는 개와 닭과 고양이가 있던 마당을 물끄러미 내다보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고, 지금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새나 다른 동물들의 탄생과 죽음의 광경들이 어지럽게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가 작별을 이야기할 때마다' 책의 제목을 계속 곱씹으며 지금 우리게 헤어짐을 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circle of life. 생명의 순환이라는 라이온킹을 지나는 커다란 주제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죽음이 그것에 그치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을 딛고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나고 그렇게 새로운 세대가 이 땅에 찾아온다는 것. 그것은 자연스럽고, 어떻게 보면 거룩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꽤 마음이 쿵쿵거리는 책. 연휴는 이미 많이 지나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조용히 이 책을 잡으시길 추천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더 빨리 걷고 더 빨리 말하며 더 오래 일하라고 명령하는 문화에 살며, 바로 거기서 생산성이 나온다고 생각하게끔 배웠다. (중략)  사람들 대부분은 속도를 늦추지 못하는데, 그렇게 하면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를 잃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인의 56퍼센트가 1년에 단 1주일의 휴가를 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집중력 개선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말하는 것이 그토록 쉽게 잔혹한 낙관주의로 변질되는 것이다. (p.299)


1. 지금 아이폰을 켜서 확인한 나의 스크린타임은 일일 평균 5시간 53분이다.(이것도 지난주 대비 34%나 떨어진 수치라고 한다) 조금 더 뜯어보자면 소셜미디어에 6시간 32분을 투자했고 정보 및 도서에 4시간 36분을 사용했다. 게임에 3시간 9분을 갖다 버렸으며 이하 쇼핑 및 음식, 엔터테인먼트 순이다. 일일 평균 149번의 화면을 깨웠으며 제일 먼저 사용한 앱은 블로그 64번, 다음이 45번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인스타는 24번 페북은 12번에 그쳤다. 알람은 324번 울렸는데 팀즈가 176번, 당근이 134번이다. 카톡은 76번에 그쳤다. 


굳이 이 숫자를 보지 않더라도 최근 손목에서 울리는 이 알람이 진절머리나 워치를 벗어던진 적이 있다. 손목에 터널 증후군이 생긴다면 아마 워치 때문일 거라 말하며 예전에 처박아둔 시계를 고쳐 차고 다녔다. 하지만 단지 일주일이었다. 내 손목에는 다시 애플워치가 채워졌고, 워치의 알람에서 팀즈와 당근을 빼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를 봤다. 여전히 내 당근 리스트에는 애플워치 울트라가 자리하고 있다.(비싸서 못 삼)


아마 누구의 사정도 그렇게 녹록지 못할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하루 24시간 중 많게는 1/3, 적잡아도 1/5 이상을 스마트폰을 깨우거나 혹은 폰이 우리를 깨우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소수마저 코쿤이 했다는 디지털 디톡스(요즘 이 금욕 상자가 또 불티나게 팔린단다) 같은 방법으로 개인의 자제력에 기대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미 이는 개인이 막아설 수준을 넘어셨다.


2.OTT가 주범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들이 극장을 예전처럼 찾지 못하는 이유를 이 집중력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10분에서 5분, 5분에서 1분 이내의 쇼츠로 길들여진 이들에게 2시간의 러닝타임은 지옥 그 자체라고 한다. 극장 올빼미가 예전에는 비매너 중의 비매너였는데 요즘은 꽤 자주 보이는 게 이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3.SNS의 순기능을 이야기하며 빠르고 광범위한 지식 습득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단언한다. SNS를 통해 우리는 짧고 단순한 발언을 하며, 보는 이는 그 즉시 세상을 이해하는(척 해야) 하고, 동의하든 반대하든 좋아요나 댓글을 달 것을 강요받는다. 그런데 알고리즘에 의해 거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글만 보이기에 반대 의견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성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생각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도둑맞은 집중력> 제목 그대로 저자는 몰입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를 14가지의 현상을 들어 조망한다. 멀티태스킹, 수면 부족, SNS, 자기 합리화(문제는 네 안에 있어), 싸고 형편없는 식단, 신체적 심리적으로 감금된 아이들 등 몰입하지 못하는 세대의 이유 뿐 아니라 잘못된 ADHD의 진단, 텍스트를 읽지 못하는 사람 등 몰입하지 못하며 발생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도 꽤나 예리하게 짚어 낸다. 그리고 이것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현대사회에 일어난 구조적, 집단적인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개인적, 사회적 해결 방안 등을 제안한다. 


저자가 스스로 해결한 집중력의 문제를 대처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사전 약속을 통해 지나친 전환을 멈춤 

2. 나의 산만함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꿈(나를 게으르게 여기보다 다른 것에 집중함). 

3.SNS를 사용하는 시간을 줄임. 

4. 생각이 배회하게 내버려둘 뿐 아니라 배회하는데 집중함. 

5. 정해진 수면시간을 지킴. 

6. 자녀나 어린 아이들의 삶에 깊이 관여함.(최대한 자유롭게 놀아줌)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방법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1. 감시 자본주의를 금지(SNS 등) 

2. 주 4일 제 도입 

3.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되찾게 도와줌


최근 들어 계속 고민하던 주제라 꽤 많은 밑줄을 그으며 읽었고, 마음이 슬프면서 울렁거렸다. 나도 모르게 빼앗긴 내 시간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자꾸만 아무 생각 없이 거꾸로 가는 우리가 좀 답답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맞다. 싸우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워치는 팔아버리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하루키를 좋아한다. 딱히 왜인지 이유를 말하긴 좀 어렵지만 하여튼 좋아한다. 그의 이름을 알린 <상실의 시대>가 딱 나의 대학시절 유행했고, 그때부터 하루키의 소설은 다 찾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단한 감동이나 무언가 설명하지 않고는 못 배길 커다란 앎이 몰려온 것도 아니다.(물론 그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스스럼 없이 예라고 답한다. 


이 책은 1980년에 중편소설로 문예지 <문학계>에서 출판되었다. 당시만 해도 신인작가였던 하루키는 이후 여러 문예지에 실었던 단편들을 엮어 책을 출판하곤 했는데 단 하나 빠져있던 작품이 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었다. 그렇게 하루키 덕후들 사이에서도 미스터리에 가까웠던 이 책이 4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나는 이 책은 선물 받은 후 연휴를 기다렸고, 하루의 시간이 주어지자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갔다. 

하루키의 거의 모든 책이 그렇지만 덕후들은 이 초현실적인 경계를 즐기고, 이 논리도 순서도 없는 장난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하루키의 이야기는 고역이다. 이 책도 그렇다. 


소년과 소녀는 여느 고등학생 연인이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이 어느 이상 다가오는 걸 막아서며 막연히 어느 '도시' 이야기를 건넨다.  어느 날 소녀가 사라지자 소년은 직감한다. 소녀가 그 '도시'로 떠났음을. 소년은 소녀를 찾아 도시로 가기로 한다. 벽을 높이 쌓은 도시의 입구의 문지기는 이 문을 넘어서면 다시는 본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 한다. 소년은 그림자를 떼어버리고 도시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가 된다. 소년은 소녀를 마주하지만, 소녀는 소년을 알아보지 못한다. 소년은 도시에서 도망치기로 하지만 문지기의 말대로 소년은 나갈 수 없다. 하지만 떼어버린 그림자가 있다. 소년은 그림자의 탈출을 돕고 도시 안에 남는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는 중년이 된다. 출판업계를 그만두고 어느 작은 마을의 도서관장으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전임 관장인 고야스 씨의 유령과 교류하게 된다. 이상한 일은 하나 더 있는데 도서관의 모든 책을 무서운 속도로 읽어 내려가는 M소년이 그러하다. 어느 날 소녀처럼 M소년도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나는 직감적으로 소년이 그 '도시'로 향했음을 알게 된다. 소년을 찾아 나는 언젠가 마주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도시의 벽 앞에 선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와 만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 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p.684)


도시 안에서 꿈을 읽던 나와, 세상에 던져서 고된 삶을 살아나가는 그림자. 나는 어떤 모습일까? 문지기는 그림자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했지만 결국 그림자의 삶 또한 우리게 필요한 것, 우리를 자라게 하는 것들이었다(사랑, 슬픔, 망설임 같은 감정).

누군가는 억지로 이 둘을 구분 짓지만 우리는 살아가며 알게 된다. 도서관에서 꿈을 읽는 나도,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나도 결국 나로 귀결되는 하나의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이 둘을 갈라 놓는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벽은 상대에 따라 형상을 바꾸어 나간다. 마치 생명체처럼. 이제 하루키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그림자인가? 꿈 읽는 소년인가? 당신의 벽은 어떠한 모양인가?


"글쎄요. 어느 쪽이건 상관없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나 자신이 본체 건 그림자 건. 어느 쪽이 됐건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내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가 곧 나인 거죠.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거예요"(p.754)


나는 지금도 내가 왜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명징하게 답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것도 꽤 많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팀 워커 - 팀과 함께 성장하며 개인의 목표까지 이루는 사람
구사부카 이쿠마 지음, 지소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튜브가 가져온 가장 긍정적인 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직접은 물론이고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서도) 커리어를 가진 이들이 직접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하고, 유튜브 앱을 켜는 것만으로 우리는 쉽게 이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다 보니 알고리즘이 내게 자주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가져다 주는데, 그들만의 조직문화가 꽤 흥미로웠다. 어쩌면 상명하복, 리더는 지시하고 팀원은 손발처럼 움직이는 조직에서 팀원으로 사는 것이 지긋 거려서 조금 다른 문화를 찾아다닌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실리콘 밸리의 조직문화, 구글이나 메타 같은 기업들은 어떻게 일하며 성과를 만들어 내는지, 또 이 메시지를 전해 들은 우리나라의 소위 다음 세대 기업 <네카라쿠배당토> 같은 곳은 이 문화를 어떻게 이 땅에 접목시켜 가는가가 최근의 내게 꽤 흥미로운 화두 중 하나다.

그들을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면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철저한 개인 위주의 업무 롤을 가져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팀을 강조하는 회사들이 많다. 매니저와 팀원들과의 관계 설정부터 역할 분담에 이르기까지.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팀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팀은 꽤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 책을 쉽게 받아든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그들의 팀은 우리의 팀과 무엇이 다를까?


IBM과 구글의 HR 파트에서 근무한 저자는 소위 일을 잘하기 위한 혹은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이들의 일하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5가지로 정리한다.


1) 피드백을 선물로 받아들인다

2) 다른 사람의 개성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3) 작은 것부터 계속 개선해 나간다.

4) 팀과 함께 성장하며 개인의 목표를 이룬다.

5) 신뢰감을 주는 행동을 한다.


이 5가지는 각 챕터의 제목이 되어 구체화 되는데 이 중에서도 그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팀과 함께 성장하며 개인의 목표를 이룬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집중한다. 일본도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유교적 사회 분위기에 기반한 우리나라 역시 팀워크를 말할 때 '적당히 분위기를 파악해 원만히 해결하는 것'을 팀워크가 좋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를 '소극적 팀워크'라 부르기도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이것은 팀워크가 아니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팀워크의 정리는 이렇다.


다른 누군가의 손이 되어 움직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존재감을 무기로 다른 사람을 움직여 하나의 팀을 성과를 올리는 것.


따라서 팀워크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이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팀에 소속되었다면 모두가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어야 하고(그렇게 노력해야 하고), 각자가 하나의 구성요소로 팀에 공헌해야 한다. 축구팀을 예를 들자면 11명의 구성원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의 역량을 가지고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공격수는 골을 넣는 능력, 수비수는 상대 공격을 저지하는 능력을 최우선을 가져야 하며, 이들은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때로 키퍼와 수비수는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팀원에게 말해야 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지하며 그럴 때마다 팀원들과의 협업을 통해 가장 멋진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작업들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팀은 서로가 필요하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이상적인 집단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우리 꼰대들이 저지르는 진심을 담은 실수가 꼭 있다. 우리는 하나야. 우리는 서로 이해해. 그런데 개인주의에 갇힌 애들은 이런 팀워크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심지어 이를 공동체라 명명해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회식 같은 걸로 만들어지는 '선공후사' 따위 가스라이팅은 팀워크가 아니라고. 진짜 팀워크는 모두가 '자신의 일'을 시작할 때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어떻게 하면 이 팀워크를 가져갈 수 있는지 짧은 책을 통해 (심지어 중간중간 밑줄 까치 쳐가며) 우리게 들려준다. 새로운 팀을 구성하거나, 뭔가 다른 팀워크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참고할 법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초엽의 이야기는 늘 디스토피아에서 시작한다. 전작에서 인류가 망한 지구를 뒤로하고 우주로 향했다면  <파견자들>에서는 외계의 위협을 지구로 가지고 왔다. 어느 날 외계의 물질들이 지구를 정복했고 살아남은 인류는 지하세계로 숨어들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범람체'라고 부르는 이 미생물 같은 균들이 인간 속에 침투하면 그 인간의 외형을 빼앗아 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류는 이렇게 육체를 빼앗긴 이들을 '광증 발현자'라 부르며 처단했다.

그렇게 지하로 숨어든, 지구를 빼앗긴 인류는 이를 되찾기 위해 '파견자들'을 만들어 지상 세계를 염탐하기 시작한다. 그 파견자가 되기 위해 훈련 받던 태린은 어느 날 자신 안에도 그 범람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잠깐의 두려움도 잠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린은 여전히 인간이다. 그는 가만히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범람체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은 광인도 아니며, 곳곳에 자신과 같이 같이 범람체를 받아들인 유기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김초엽은 SF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이야기들을 훓어보자면 그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자꾸만 우리에게 던진다. 지금 당신의 모습이 진짜 당신인가? 당신이 보고 듣고 만지고 있는 것들이 진짜 존재하는 것인가? 당신이 이제까지 알아왔던 것들이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 중 지극히 일부분이라면. 그렇게 세계는 당신의 삶보다 훨씬 크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신념체계(사회, 제도, 종교 등등)를 무너뜨려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태린은 결국 지상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범람체와 공존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한 이들을 목도한다.


불균형하고 불완전한 삶의 형태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태린은 경계 지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 답을 찾아내주기를 바랐지만, 어쩌면 아이들도 명확한 답에는 다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단지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삶의 원리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만이 가능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태린은 그것이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질문이라고 생각했다.(전자책 p.300)


디스토피아로 점철된 세계와 그 안에서 살아내려고 하는 이들은 자꾸만 우리 신념체계 밖에 서 있는 소수자를 떠올리게 한다. 존재함에도 다수에 의해 스스로 존재 자체를 지워야 하는 사람들, 내가 여기 있다고 그렇게 목소리를 높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 목소리에 대꾸해 주지 않는 사람들. 

소설 속 이 유기체들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은 지상과 지하의 경계 지역으로 조금씩 나와 그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가이드를 맡은 전직 파견자 자스완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혹시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느냐고.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온전히 인간의 것인가? 질문은 꽤 묵직하고 단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