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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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잊지 못할 기억이 남은 그 정류장,


나를 나이게 하는 사람과 기억이 있는 그 정류장으로,


밖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인 '나'는 10년째 필사 중이다. 3년 전에 폭력 남편으로부터 친동생과 조카 둘을 구해 친정집으로 데리고 왔다. 직장이 있는 부모님과 동생을 대신해 조카를 맡은 '나'는 중압감과 집안일에 치여 살며 시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나'의 소원은 단 하나다. 집에서 나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는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나'의 소원이 이뤄질 수 있는 기회가 곧 찾아온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은 내면의 언어와 "근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돌봄의 어려움(p.180)"과 "잊은 척했던 환멸(p.181)"에 대한 이야기다.










40세의 꿈꾸는 시인인 '나'는 가족이라는 족쇄에 얽매여 자신의 존재조차 지워져 버릴 위기에 처한 투명한 존재다. 원래 있어야 할 '나'의 모습의 일부가 마치 가족 공동체 생활이라는 지우개로 지워진 것처럼 텅 비어 있다. 작품을 읽으며 문득 시인의 독특한 시선으로 일상을 관찰하고 묘사해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주인공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게 금방 확연해졌다.




'나'의 정체성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를 향한 열망인데, 그 부분조차 크게 손상되어 있다. 가족이라는 유기체의 일부로 있는 한 '나'의 가슴을 달구는 시에 대한 열망은 희미해지고, 인생의 꽃은커녕 새싹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은 시들어 버린다.










주인공이 이토록 힘들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돌봄 노동을 모두가 나눠가며 짊어지지 않고 하나가 전담하는 유동적이지 못한 가족 내 제도가 그 원인 중 하나다. 주인공의 말마따나 아이를 키우는 건 "가르치고 보듬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가족은 공동 희생 구조(p.113)"임에도 말이다.




"위로를 받아도 될 상대에게 마음대로 어깨조차 기대지 못하는(p.146)" 동생과는 달리 전화를 걸어 ”내가 기댈 수 있게 빨리 오라(p.147)“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오는 상대가 있는 '나' 사이의 간극은 또 어떻게 설명할까.




반대로 '나'가 동생을 부러워하는 점은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에서 찾고 있다는 점처럼 보인다. 가족의 일원이라도, 방해받지 않고 독립되어 존재해야 하는 부분이 함몰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나'는 몰랐다. 자신이 집에서 나와도 가족들은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집을 나온 후에야 그 투명했던 존재에 색이 돌기 시작하고, 금이 갈지도 모른다. 그때야 비로소 그녀 만의, '나'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후기.




책의 줄거리와 나의 감상을 듣던 지인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결말만 놓고 보면 두 작품은 닮아 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인형의 집》 속 주인공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집을 나온 것에 비해, 소설 속 ’나‘가 집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우연을 가장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의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둘을 같은 관점으로 볼 수 없고, 소설 속 ’나‘의 운명이 더욱 비극적이라고 대답했다.




우울증을 앓는 나에겐 비극이 곧 희극이지 않냐고 지인이 물었다. 글쎄, 희극이 되기엔 내게 소설 속 '나'는 너무 투명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이 소설이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동생은 참을성 있게 내 대답을 기다려줬다. 나는 간신히 입을 벌려 발음했다.

"시."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그 창백한 연두색 싹이 불쑥 커 올라 이파리를 막 뻗치는 기분이 들었다. 활짝 펼쳐진 잎들은 앞다퉈 반짝였다. 이런 기분을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나는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 P64

피지 못한 꽃, 이라는 말을 들은 날에도 나는 시를 쓰지 못했다. 필사 노트만 두꺼워지고 있었다. 낙선자로만 평생을 살아가면 어쩌나 싶은 마음.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되어, 패배자가 되어, 이대로 무용한 인간이 돼버리면 어떡하나 매일 두려웠다. 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연둣빛 싹이라도 될 수 있다면, 아니 새하얀 뿌리 한 쪽 될 수 있다면. - P117

정류장에는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손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무수한 어느 날의 여름밤이었으나 그 사람과 나는 열대야에 딱 맞춤한 장면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순간이라는 것도 짐작했을 것이다. - P88

가장 아름답고 생기에 넘쳐 문학에 투신하기 좋은 시기에 우리는 그 생기의 대부분을 가족 대소사와 관련 노동에 투입하고 있지만, 그래서 가끔은 개점휴업 상태인 것만 같은 자괴감에도 시달리지만, 최소한 셔터를 내리지 않는다고, 멈추지도 꺼지지도 않을 거라는…… 반딧불이만한 신호를 보내고 싶었는지도. - P180

그러니 오늘 밤에도 써야겠다. (…) 오늘도 달리고 있는 당신들의 흙먼지와 흙먼지 속에서 기어이 피어오르는 우리의 언어에 대해서.

작가의 말 중에서.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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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초호화 스카이버 금장 에디션) - 1947년 오리지널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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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페스트의 경기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전부는

경험과 추억뿐일 것이다.

본문 368쪽.












《페스트》에 없는 게 있다면 어설픈 위로나 황급한 미화다. 카뮈의 글을 읽으면 독자로서 신뢰받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나면 항상 기운이 난다.






《페스트》는 평범한 현대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퍼지면서 개인과 사회가 겪게 되는 일을 기록한 연대기 형식의 소설이다. 습관적으로 살아가던 일상이 페스트로 인해 방해받으면서 공포와 혼란이 시작되지만, "공포와 더불어 진지한 성찰이 시작되었다.(p.35)"




소설 속엔 의사 리외, 신문기자 랑베르, 파늘루 신부,기회주의자 코타르, 장 타루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자 페스트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개중에는 페스트 때문에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인물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하는 인물도 있다. 이들의 심경 변화와 고뇌를 지켜보는 것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다.




서술의 호흡이 긴 만연체로 쓰였지만 생생한 묘사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오랑 시가 겪는 자원 조달, 물가 상승, 환자 수용, 의료 인력 부족, 백신 연구, 관광산업의 위기 등의 문제와 오랑 시민이 겪는 공포와 불안, 희망과 체념이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70년 세월의 틈을 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특히 격식을 갖춘 장례식이 폐지되고 관, 수의, 묘지도 없이 한 구덩이에 함께 묻히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매장 제도나, 시립 운동장에 설치된 수용소에 격리된 사람들이 하릴없이 경계의 눈빛으로 앉아 있는 광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구급차가 도착하면 들것으로 날라 줄지어 놓았다가, 살짝 뒤틀린 벌거벗은 시신들을 거의 나란히 붙여 구덩이로 미끄러뜨리고, 먼저 생석회를 뿌리고 그 다음에 흙을 덮었는데, 그것도 다음에 올 주인들의 자리를 마련해 두려고 아주 얕게만 덮었다. 그 다음 날 가족을 불러 서류에 서명을 받았는데, 이것이 이를테면 사람과 개 사이의 차이점이었다. 사람의 죽음은 확인되고 관리된다는 것 말이다.


223쪽.






이 작품에서 카뮈의 '저항의 철학'이 페스트라는 소재를 만나면서 폭발했다고 생각한다. 페스트는 말 그대로 전염병이지만, 페스트 대신 전쟁, 나치즘이나 독재 정권을 넣어도 위화감이 없다. 페스트를 마치 인격 있는 존재로 서술할 때에는 그 느낌이 더욱 도드라진다. 책의 덮고 나서야 책의 첫 장에 카뮈가 대니얼 디포의 말을 인용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종류의 감옥살이를 다른 종류의 감옥살이로 재현한다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재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이다.


_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서술자가 자신의 이름을 마지막에서야 밝히는 이유도, 페스트의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한 것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태도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기록을 통해서만 페스트, 즉 역사를 통해 얻은 경험과 추억을 기억할 수 있음을. 서술자 자신 또한 역사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량한 사람, 거의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방심하지 않으려면 의지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요, 리외 씨, 페스트 환자로 있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만, 페스트 환자로 있지 않으려는 것은 더 피곤한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 모든 사람이 심하든 약하든 조금씩은 페스트에 걸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이런 상태를 끝내고 싶어 하는 몇몇 사람이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들을 해방시켜 주지 않을 극도의 피로를 자진해서 겪는 겁니다.


318쪽.










집단으로서 페스트 즉, 부조리에 어떻게 대항하는 게 좋을까. 《페스트》는 그것의 답을 찾아가는 성찰의 과정이다. 카뮈는 사랑과 희망을 토대로 이뤄지는 협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마스크 너머로 들어오는 공기에 익숙해진 지금, 나는 가끔 이것이 지나가고 난 후의 일상을 상상하곤 한다. 더 좋은 상황이야 마다않겠지만, 더 나쁜 상황을, 예를 들어, 평생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는 일상을 더 많이 그려보게 된다.




아마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페스트》나 스티븐 킹의 《더 스탠드》를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작품은 감금된 현실을 닮은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현실을 덮어버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현실을 토대 삼아 올라간 작품도 있다. 이 모두는 우리의 ‘지금‘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파늘루 신부처럼 페스트가 유익한 점이 있다고, 사람들이 눈을 뜨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믿는 겁니까?”


리외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모든 병들처럼요. 세상 모든 악의 속성이 페스트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로 인한 비참함과 고통을 보고도 받아들인다면, 미쳤거나 눈이 멀었거나 비겁한 사람인 거죠.”


159쪽.



“내 질문은 이겁니다. 왜 선생님은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헌신하는 겁니까? 선생님의 대답이 내 대답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네요.”


리외는 여전히 그늘에 잠긴 채로, 이미 대답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전능한 신을 믿었다면, 치료를 그만두고 그 수고를 온전히 신에게 넘겼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파늘루 신부조차도 신에게 그런 전능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161쪽.



그래서 프랑스 남부의 많은 성당의 지하에 수세기 전부터 페스트로 쓰러진 자들이 잠들어 있으니, 지금 많은 사제들이 그들의 무덤 위에 서서 전하는 신의 메시지는, 어린아이들조차 보탠 죽음의 재로부터 솟아 나오는 겁니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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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2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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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잃었건 아니건,

복수의 시간이 다가왔다.

《부적 2》, 413쪽.







이제 잭은 혼자가 아니었다. 늑대 인간 ‘울프’와 모건 슬로트의 아들 리처드 슬로트가 길동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잭은 곧 알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와 길동무가 있을 때 또 다른 역경이 그를 찾아올 것을. 그리고 그는 길동무와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혹은 끌고 가거나, 업어 가더라도 함께 가는 법을. 책을 덮고 나서 찾아오는 만족감, 후련함 그리고 이별의 아쉬움.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인지.




1200쪽이 넘는 긴 여정 동안 영웅의 자질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잭은 부적에게 선택받은 자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잭을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은 사랑, 우정과 근성이었다. 특별하기 때문도, 부적 때문도 아니었다. 잭은 언제라도 포기할 수도, 쓰러져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매 순간, 옆에 스피디 할아버지나 부모님, 울프와 리처드가 곁에 없더라도, 그는 혼자 일어서서 싸웠다.





잭은 혼자 일어서서 싸우든지, 쓰러져 죽든지 해야 했다.

576쪽.






《부적》의 문장은 풍부하다. 아낌없는 서술어와 생생한 내면 묘사를 통해 공포, 혼란, 고독, 슬픔, 사랑 같은 세상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캐리》와 《아웃사이더》 외에 스티븐 킹의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 킹의 글은 감성이 풍부한 쪽은 아니었다. 피터 스트라우브와의 합작의 결과물일까. "도널드 덕이 조카 휴이와 듀이와 루이를 목 졸라 죽이고, 미키 마우스가 헤로인에 취한 미니 마우스를 총으로 쏘는, 반(反)디즈니랜드(본문 505쪽)"같은 악몽 같은 판타지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부적》의 탄생에 영감을 준 《톰 소여의 모험》을 끝마치면서 마크 트웨인은 "이것은 엄밀히 말해 소년의 역사이므로 여기서 끝나야 한다. 더 이상 계속되면 남성의 역사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 두 작가가 후속작을 쓴 것도 당연하다. 후속작 《블랙하우스》엔 은퇴한 LA 강력계 형사 잭 소여가 나온다. 하루 빨리 한국에 소개되기를 .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벌의

(현실이)

사슬갑옷처럼.

6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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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1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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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달려왔다고 하지만

가엾은 방랑자 잭은 곧장 돌아가야 한다네.


본문 62쪽.









《부적》은 이(異) 세계 판타지 소설이지만 공포 소설이며,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 잭 소여의 눈에 비친 세상은 환상적이며, 미스터리하고 무시무시하다. 이것들은 "안전과 합리성(본문 246쪽)"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저자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는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이런 비합리성과 위험을 더욱 강화시켰다. 소년은 이런 부당한 고난을 거쳐 누구보다도 일찍 세상의 질서를 배우고,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운다.




1981년 9월, 12살 소년 잭 소여는 '테러토리'라 부르는 또 다른 세상의 존재를 알게 된다. 테러토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사람, 예를 들어 잭의 아빠 필립 소여는 테러토리와 현실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트위너'였다. 그는 테러토리와 현실 세계의 운명은 얽혀 있다고 믿었다. 테러토리와 현실 세계의 트위너들은 비슷한 시기에 죽음을 맞기도 하고, 테러토리에서 일어난 작은 전쟁이 현실 세계에선 세계 대전으로 번지기도 한다는게 그의 근거였다.




아빠와 후견인 아저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잭을 ”모든 고난과 혼란을 막아 줄 굳건한 성벽(37쪽)“도 사라졌다. 이제 잭과 엄마는 아빠의 동업자 모건 슬로트로부터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테러토리의 여왕 로라 델루시안은 병에 걸려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마치 잭의 엄마 릴리 소여처럼 말이다. 암에 걸린 엄마를 구하기 위해선 엄마의 트위너인 여왕을 구해야 한다.




이렇게 잭은 운명에 떠밀려 미국 땅의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횡단하는 길고 긴 여정에 강제 참가하게 된다. 마시면 테러토리로 갈 수 있는 마법 주스가 담긴 유리병, 샌드위치와 지도를 배낭에 넣고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 운동화를 신은 잭이 걸어간다.




너는 부적을 손에 쥐게 될 거야. 마치 크리스털 공처럼 생겼단다. 방랑자 잭, 캘리포니아로 가서 그것을 가져오렴. 하지만 그것은 책임이자 십자가란다. 잭, 그것을 떨어뜨리는 순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단다.


본문 116쪽.




뉴햄프셔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거리는 약 4988킬로미터다. 잭은 히치하이크로 차를 얻어타고 서쪽으로 가야 한다. 잠잘 곳을 찾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도 벌어야 한다.




잭과 여왕의 목숨을 노리는 모건 슬로트는 돈과 권력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인물이다. 농경사회에 머무는 테러토리의 정치 경제 생태계에 관여해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이 있다.




그러나 잭의 앞을 가로막고 뒤를 바짝 쫓아오는 적은 모건 슬로트뿐만이 아니다. 험한 날씨, 해진 신발, 배고픔, 아동성애자와 노동력 착취자들이 잭이 길바닥 위에서 맞닥뜨린 위험과 장애물이다.




잭은 이런 위험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만의 대처 전략과 싸움 방식을 터득해간다. 의지할 사람 없이 길거리에 나앉아 두려움으로 벌벌 떨던 잭이 포기하지 않고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잭을 응원하게 된다.




”어깨를 활짝 펴! 너는 누구를 구하러 가는 거지? 어디로 가는 거냐고? 이런 꼴로는 열 발자국도 못 갈걸. 사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리지만 적어도 흉내는 낼 수 있잖아."


본문 228쪽.



이제 잭은 거리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쳤다. 만일 캐딜락을 타고 가는 것이라면 꿈과 같은 여정이겠지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히치하이크를 해서 이젠 지긋지긋한 사연들을 늘어놓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배려에 기대야 하고,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어야 할 때는 시련의 여정일 수밖에 없었다.


본문 427쪽.




모건 슬로트와 그의 부하들이 잭의 꽁무니를 바짝 쫓아온다. 그때마다 잭은 마법 주스를 마시고 두 세계를 오가며 아슬아슬하게 위험에서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제 마법 주스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6살 늑대 인간 '울프'까지 현실 세계로 데리고 와버렸다. 과연 잭은 울프를 데리고 무사히 서쪽으로 건너가 부적을 찾고 엄마를 구할 수 있을까? 2권 내용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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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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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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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아름답지만

차갑고 섬뜩한 무언가가

침묵하고 있다.










30대 박물관 기사인 주인공 '나'는 바깥세상과 고립된 어느 시골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전시 및 보존하는 박물관을 만드는 일을 맡게 된다. 의뢰인 노파와 그녀의 입양된 딸, 정원사 부부와 함께 박물관을 만들면서 일어나는 일이 '나'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시대도 장소도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작은 마을. 삼 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 마을에는 평생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고 대대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장인들이 있다. 그들은 정원을 가꾸거나, 알 공예품을 만들거나, 잭나이프를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친다.




그 헌신에는 고도의 집중력과 소름 끼치는 광기와 외부 세계와 타협하지 않는 이기성이 있다. 어떤 주제로 선택되어 수집된 컬렉션들에는 일정 정도의 강압성과 이기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이 작품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러니까 정당하게 기증받은 유품만 있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죠?”


“정당하게? 흥, 웃기지 마. 방금 유품의 정의를 설명했잖아? 진짜 유품을 수집하는 일에 정당하고 부당하고가 어디 있어?”


본문 49쪽.



"우리의 선택이 너무나 정확해서요. 멋지게 핵심을 꿰뚫었기 때문에 아무도 불평하지 못하는 거예요. (…) 어쩌면 우리가 유품을 훔치고 나서 생긴 공백을 목격한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망자가 가져간 거야, 하고 말이죠."


본문 150쪽.






침묵 박물관에 가면 유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 실로 전시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물, 공기, 소금, 빛…. 살아있을 때는 꼭 필요한 것들이 죽어서는 적이 된다. 변하지 않는 건 이 세상에 없지만 그럼에도 유품 수집은 계속되어야 한다. 자신이 여기 살았었다는 생의 증거가 수집 및 보관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기에.




“물건을 보존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네요.”


“당연하지. 물건은 그냥 내버려두면 삭아서 없어지고 말아. 벌레, 곰팡이, 열, 물, 공기, 소금, 빛, 전부 적이지. 하나같이 세상을 분해하고 싶어서 안달해. 변하지 않는 건 이 세상에 없어.”


본문 86쪽.






모든 건 박물관을 위해서야.


본문 336쪽.





박물관에 가면 침묵하게 된다. 그곳은 관람객인 나를 반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그곳에 수집된 컬렉션의 보존만을 위해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박물관 또한 특정 주제로 묶인 컬렉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박물관의 이름이 유품 박물관이 아닌 침묵 박물관인 이유가 있을까. 주인공이 마지막에 침묵을 선택한다는 점과 연관이 있는 걸까. 《침묵 박물관》은 오가와 요코가 200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침묵은 미덕이 아니다.




투명한 문체와 무국적성을 띤 장소가 주는 몽환적 분위기가 오가와 요코 작품 세계의 특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결코 모호하지 않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게 《침묵 박물관》은 주인공이 결국 패배한다는 의미에서 공포소설이고, "인간의 존재를 초월한 박물관(본문 15쪽)"이 이기심 위에 세워진다는 점에서 풍자소설이다.





작가정신 작정단 6기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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