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선생님과 몽당연필 고래책빵 그림동화 8
나태주 지음, 이도경 그림 / 고래책빵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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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의 첫 동화 작품입니다. 파스텔톤의 몽당연필들과 인자해 보이는 교장 선생님의 표지가 따뜻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림책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미술관 전시실 앞에 선 듯한 설렘과 떨림이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쓰레기장 주변 흙 속에 묻혀있던 검은색 몽당연필을 교장 선생님이 발견하여 깨끗하게 씻고 단정하게 깎아서 오래된 필통 속에 넣어주십니다. 거기엔 노랑, 빨강 색색의 몽당연필들이 가지런하게 들어있습니다. 냄새 나고 거무추레한 새 몽당연필을 다른 몽당연필들이 박대합니다. 그때 몽당연필 중 하나가 우리 모두는 아이들에게 버려졌다가 교장 선생님에게 발견되어 이곳에 함께 있으니 사이좋게 지내자고 합니다.



그리고 한때 어린 소년이었던 교장 선생님과 그 교장 선생님을 넘치도록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의 이야기와 한때 어린 나무가 성장하여 연필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많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



루스 로건의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라는 책에서도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떨어뜨린 분실물을 수집하여 고이 보관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쓸모없고 볼품없고 버려진 작은 물건들 속에도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몽당연필들도 언젠가는 새연필이었을 것이고 그것을 받은 아이들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으며 설렘을 주었을 것입니다. 많은 공책에 꾹꾹 눌러 글씨를 남기고 그림을 그리고 친구에게 보내는 쪽지를 채웠을지도 모릅니다. 물건에는 추억이 담겨 있지요. 작은 몽당연필을 소중히 여기는 교장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물건을 아끼듯이 사람을 아끼고 추억을 아끼시는 분이신 것이죠.



할머니가 주신 암탉이 갓 낳은 달걀을 가지고 새 연필을 바꾸러 달음질쳐 가다가 넘어져서 허망하게 깨질 달걀을 본 어린 교장 선생님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하지만 할머니의 푸근한 웃음과 새 달걀은 교장 선생님은 다정함과 친절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어른이 된 것 아닐까요?



그리고 한때 푸르른 잎을 달고 찬란한 청춘을 자랑했던 나무들도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 연필이 되어 아이들의 작은 손에 안깁니다. 아름답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죠. 저는 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어느 곳에 가든 맘에 드는 나무가 있고 형광빛 나는 듯한 5월 신록도 좋아하고 점점 기운이 넘쳐가는 6월의 나무도 좋아합니다. 한여름을 지나고 조금 지쳐보이는 9월의 나무도 좋아하고 잎을 떨구기 전의 마지막 광채인 단풍도 좋아합니다. 추위를 온몸으로 인내하는 한겨울의 나무도 좋습니다. 어떨 때는 꽃보다 예쁜 것이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무가 연필이 됩니다. 연필을 막 깎았을 때의 냄새는 정말 좋습니다.



물건이 넘쳐나고 더 새로운 것,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에 발밑에 버려진 몽당연필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고 깨끗이 닦고 칼로 소중하게 깎아 필통에 가지런히 넣어주는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외에 연필을 잡아본 적이 없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나서 다시 연필이 사방에 굴러다닙니다. 아이를 위해 연필을 깎고 냄새를 맡아봅니다.



잃어버린 혹은 망각한 소중한 것들을 한번 새겨보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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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게 보고 크게 보고 - 핑크색 뇌를 가진 라틴계 한국인, 그가 본 일본이라는 나라
박경하 지음 / 행복에너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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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상 일본에 살면서 우리나라 제과회사의 일본 지사 사장으로 일해 오신 분이 쓰신 일본에 관한 책이다. '역사, 문화, 사회생활, 전략, 일본 삶과 나'라는 5개의 꼭지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어떤 곳에 오래 산다고 해서 그곳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이 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찰과 탐구심, 연구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알아보지 않으면 표면적인 현상밖에는 볼 수 없다. 저자는 일본 자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마케팅하고 사업하는 법에 관해서도 치밀하게 연구해 온 것 같다.

일본에서 짧은 기간이나마 공부하며 학생으로는 지내봤지만 사회인으로서 일을 하며 지내본 적은 없어서 일본에서 돈을 벌고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늘 있었는데 일본 비즈니스맨들의 특징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케터로서의 분투가 인상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나 책을 통해 삶의 자세를 배운다. 대학원에서 일본 지역학에 진학하면서 일본과 연관되어 지낸 지 그럭저럭 20년이다. 내 인생의 반 정도이다. 내게 파고드는 근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독서를 통해 깨달았다. 호기심도 많고 뭐든 하면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현상의 이면을 파고드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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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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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에다가 150여 페이지의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제게 참 무게 있는 감상을 남긴 책입니다. 퓰리처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인 이디스 워튼의 단편집입니다. '징구, 로마의 열병, 다른 두 사람, 에이프릴 샤워'의 총 4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징구

'벌거벗은 임금님'의 또 다른 버전.

'벌거벗은 임금님'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신랄한 풍자가 일품입니다. 우아하고 고상한 체하는 맛으로 독서 클럽에 참석하고 있는 숙녀들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제가 낯부끄럽군요. 우리 속에 타인을 재고 '난 너와 달라.'를 외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래서 제가 막 몸둘 바를 모르고 오금이 저렸습니다. 제 속에 있는 허영과 교만을 지적당한 것 같아서죠.

로마의 열병

'내가 네 친구로 보이니... 나 귀신이야.'

납량 특집 저리 가라 할 만큼 등골 서늘하게 하는 마지막 줄이었습니다. 허울 뿐인 우정, 서로 뒤통수 쳤다고 살아온 세월, 드러난 추악한 진실. 그깟 남자가 뭐라고? 이렇게 치부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저자인 이디스 워튼은 19세기 말에 태어났고 여성 참정권도 없었던 시대였으며 여성에게 경제력이 없는 시대였으니 남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기만, 누가 누구를 속였고 기만했는지에 상관없이 의문의 승자는 그 사이에 낀 남자군요. 씁쓸합니다.

다른 두 사람

'내가 아니면 안 될 이유는 없다.'

두 번의 이혼 전적이 있는 아내와의 달콤한 신혼에 끼어드는 수많은 잡음들과 방해요소. 아내의 전 남편들과 끊임없이 엮이며 미처 보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내에게 내가 아니면 안 될 이유가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이전 남편들에게 맞추며 살아왔던 것처럼 현재의 남편인 나에게도 맞추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난히 그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에이프릴 샤워

'사람은 눈물 없이는 어른이 될 수 없어...'

가장 가볍고 편안하다는 역자 후기의 말씀처럼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비슷한 상황이기도 하여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테오도라는 자신의 창작물을 출판사로 보냈고 저는 번역 기획서를 보내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테오도라가 우편으로 보내고 이제나저제나 우체통만 보는 그 간절함이 저는 이제나저제나 이메일 수신함을 클릭, 클릭하는 조바심이겠지요. 오류로 인하여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소녀 테오도라는 무심한 가족의 질책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빠의 든든한 손이었습니다.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인지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 '쓰나미'의 가사가 떠오릅니다. 사람은 눈물 없이는 어른이 될 수 없어... 테오도라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제 자신에게도 이 말을 들려주며 힘을 내봅니다.



제 자신이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날카롭고 신랄한 이야기와 마음의 생채기를 어루만져주는 연고 같은 이야기가 공존하는 놀라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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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식당의 밤
사다 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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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사람이 태어나 평생의 사랑을 만나 사랑을 하고 불행한 사건으로 이별도 하고 평생을 못 만나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죽은 후에 하나가 되기도 한다.



- 실수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도 하고 그 죄를 평생 속죄하기도 한다. 피해자가 되어 가해자를 원망하기도 하고 원한을 품기도 하지만 용서하기도 한다. 용서받기도 한다.



-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반대로 그 자식이 어미를 돌보기도 한다. 순간의 실수로 죄를 범하기도 하고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구원을 받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 사랑하지만 어리기에 무모하고 파괴적인 사랑을 하기도 한다. 불안하고 미숙한 삶을 살기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랑이 무르익으며 결실을 맺기도 한다.



- 전쟁의 참화 속에 죽음을 스스로 택하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때로는 한 곡의 음악이 인생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 천부적인 소질을 가졌지만 그것을 운명으로 따라 가기도 하고, 그 운명을 거부하기도 한다. 배신하기도 하고 배신 당하기도 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종류의 삶을 살기도 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변두리 동네의 작고 소박한 가게, 베일에 쌓인 듯한 점잖은 주인장, 소박하고 맛깔 나는 음식, 이야기 좋아하고 정 넘치거나 때로는 사연 있는 손님들, 그리고 물레에서 실 뽑아내듯 굴곡진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가 끊이지 않으며 독자가 작중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는 그런 소설… 어디서 많이 보고 접한 일본 소설의 클리셰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기분 좋게 눈물샘을 자극하고, 배꼽을 자극하는 책이다.



철저한 익명성과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고립, 소외가 지배하는 도시의 어느 한 구석에 이런 훈훈한 곳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이라면 고단한 하루 일과의 끝에,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혼자 있기 싫은 저녁에, 누군가가 해 준 정성이 담긴 소박한 음식이 먹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남의 일에 코를 박고 오지랖을 부리지도,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도 않는 점잖은 주인장이라면 더욱 좋다.



선선한 가을바람 불고 붉은 노을 지는 저녁, 흰 눈 내리고 온기가 그리운 겨울 저녁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따뜻한 국밥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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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읽으면 절대로 잊지 않는 세계사 공부 - 세계사의 흐름이 단숨에 정리된다
신진희 지음 / 메이트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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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참 고통스럽게 꾸역꾸역 세계사와 국사의 역사적 사실들을 머릿속에 욱여 넣었다. 내 머리구조의 문제인지 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잘하지 못한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인과관계가 명확히 성립하면 꽤 이해력이 높은 학습자라는 것을 많은 학업의 역사를 통해 깨달았다. 요즘 말하는 ‘스토리텔링’을 그때도 있었다면 얼마나 역사를 배우기가 좋았을까 싶다. 어쨌든 늦었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과 커 가는 아이들과 세계사에 대하여 더 얘기하고 싶은 마음에 세계사에 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었다.

이 책은 우리 역사 학습자들을 미궁으로 빠트렸던 연대기적인 구성이 아니라, 국가, 종교, 혁명, 제국, 도시, 과학, 법이라는 7개의 열쇳말로 동서양의 유구한 역사를 꿰어내고 있다. 한쪽에 치우친 역사관이 아니라 매우 중립적이고 균형적인 시각을 일관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왕권이란 하늘이 주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동양의 사고와 많은 자들 중에서 스스로 증명하여 인정받은 자가 왕이 되는 서양의 사고가 상반적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랐다는 것이다. 즉, 어느 쪽이 우월한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종교라는 것도 신앙 자체보다도 지배자들이 그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의 통치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자신의 위세를 넓히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정교분리(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의 개념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중세 시대는 정치와 종교가 밀접하게 혹은 철저히 견제 체제로 상존해 왔음을 볼 수 있다. 또,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원시시대에서부터 스마트폰, 인공지능이 생활 곳곳에 스며든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호기심과 탐구를 통해 과학을 발달시켰고 이 과학이 인류의 역사를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가지의 열쇳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단 한 가지 동기이자 원동력을 꼽으라면 ‘욕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돈을 욕망하고, 권력을 욕망한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인 ‘욕망’을 침탈당했을 때는 ‘혁명’을 통해 탈환한다. 이 욕망을 무시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인류의 역사인 것 같다. 공산주의의 실패. 이론적으로만 봤을 때는 종교의 경전 저리 가라 할 만큼 완전해 보였던 이념이지만 결국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간과했기에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본다. 독재주의의 실패. 절대적으로 선하고 절대적으로 지식이 있고 절대적으로 완벽한 누군가가 다스린다면 어찌 보면 완벽한 통치 체제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인간은 없고, 그런 인간이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민주주의.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이 아닐 수는 있지만 인간의 욕망을 존중하여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책이 아니었으면 펼쳐보지 않았을 생각의 나래. 이것이 독서의 힘, 세계사 공부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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