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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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에다가 150여 페이지의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제게 참 무게 있는 감상을 남긴 책입니다. 퓰리처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인 이디스 워튼의 단편집입니다. '징구, 로마의 열병, 다른 두 사람, 에이프릴 샤워'의 총 4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징구

'벌거벗은 임금님'의 또 다른 버전.

'벌거벗은 임금님'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신랄한 풍자가 일품입니다. 우아하고 고상한 체하는 맛으로 독서 클럽에 참석하고 있는 숙녀들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제가 낯부끄럽군요. 우리 속에 타인을 재고 '난 너와 달라.'를 외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래서 제가 막 몸둘 바를 모르고 오금이 저렸습니다. 제 속에 있는 허영과 교만을 지적당한 것 같아서죠.

로마의 열병

'내가 네 친구로 보이니... 나 귀신이야.'

납량 특집 저리 가라 할 만큼 등골 서늘하게 하는 마지막 줄이었습니다. 허울 뿐인 우정, 서로 뒤통수 쳤다고 살아온 세월, 드러난 추악한 진실. 그깟 남자가 뭐라고? 이렇게 치부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저자인 이디스 워튼은 19세기 말에 태어났고 여성 참정권도 없었던 시대였으며 여성에게 경제력이 없는 시대였으니 남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기만, 누가 누구를 속였고 기만했는지에 상관없이 의문의 승자는 그 사이에 낀 남자군요. 씁쓸합니다.

다른 두 사람

'내가 아니면 안 될 이유는 없다.'

두 번의 이혼 전적이 있는 아내와의 달콤한 신혼에 끼어드는 수많은 잡음들과 방해요소. 아내의 전 남편들과 끊임없이 엮이며 미처 보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내에게 내가 아니면 안 될 이유가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이전 남편들에게 맞추며 살아왔던 것처럼 현재의 남편인 나에게도 맞추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난히 그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에이프릴 샤워

'사람은 눈물 없이는 어른이 될 수 없어...'

가장 가볍고 편안하다는 역자 후기의 말씀처럼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비슷한 상황이기도 하여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테오도라는 자신의 창작물을 출판사로 보냈고 저는 번역 기획서를 보내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테오도라가 우편으로 보내고 이제나저제나 우체통만 보는 그 간절함이 저는 이제나저제나 이메일 수신함을 클릭, 클릭하는 조바심이겠지요. 오류로 인하여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소녀 테오도라는 무심한 가족의 질책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빠의 든든한 손이었습니다.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인지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 '쓰나미'의 가사가 떠오릅니다. 사람은 눈물 없이는 어른이 될 수 없어... 테오도라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제 자신에게도 이 말을 들려주며 힘을 내봅니다.



제 자신이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날카롭고 신랄한 이야기와 마음의 생채기를 어루만져주는 연고 같은 이야기가 공존하는 놀라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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