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의 첫 동화 작품입니다. 파스텔톤의 몽당연필들과 인자해 보이는 교장 선생님의 표지가 따뜻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림책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미술관 전시실 앞에 선 듯한 설렘과 떨림이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쓰레기장 주변 흙 속에 묻혀있던 검은색 몽당연필을 교장 선생님이 발견하여 깨끗하게 씻고 단정하게 깎아서 오래된 필통 속에 넣어주십니다. 거기엔 노랑, 빨강 색색의 몽당연필들이 가지런하게 들어있습니다. 냄새 나고 거무추레한 새 몽당연필을 다른 몽당연필들이 박대합니다. 그때 몽당연필 중 하나가 우리 모두는 아이들에게 버려졌다가 교장 선생님에게 발견되어 이곳에 함께 있으니 사이좋게 지내자고 합니다. 그리고 한때 어린 소년이었던 교장 선생님과 그 교장 선생님을 넘치도록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의 이야기와 한때 어린 나무가 성장하여 연필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많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루스 로건의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라는 책에서도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떨어뜨린 분실물을 수집하여 고이 보관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쓸모없고 볼품없고 버려진 작은 물건들 속에도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몽당연필들도 언젠가는 새연필이었을 것이고 그것을 받은 아이들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으며 설렘을 주었을 것입니다. 많은 공책에 꾹꾹 눌러 글씨를 남기고 그림을 그리고 친구에게 보내는 쪽지를 채웠을지도 모릅니다. 물건에는 추억이 담겨 있지요. 작은 몽당연필을 소중히 여기는 교장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물건을 아끼듯이 사람을 아끼고 추억을 아끼시는 분이신 것이죠. 할머니가 주신 암탉이 갓 낳은 달걀을 가지고 새 연필을 바꾸러 달음질쳐 가다가 넘어져서 허망하게 깨질 달걀을 본 어린 교장 선생님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하지만 할머니의 푸근한 웃음과 새 달걀은 교장 선생님은 다정함과 친절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어른이 된 것 아닐까요? 그리고 한때 푸르른 잎을 달고 찬란한 청춘을 자랑했던 나무들도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 연필이 되어 아이들의 작은 손에 안깁니다. 아름답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죠. 저는 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어느 곳에 가든 맘에 드는 나무가 있고 형광빛 나는 듯한 5월 신록도 좋아하고 점점 기운이 넘쳐가는 6월의 나무도 좋아합니다. 한여름을 지나고 조금 지쳐보이는 9월의 나무도 좋아하고 잎을 떨구기 전의 마지막 광채인 단풍도 좋아합니다. 추위를 온몸으로 인내하는 한겨울의 나무도 좋습니다. 어떨 때는 꽃보다 예쁜 것이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무가 연필이 됩니다. 연필을 막 깎았을 때의 냄새는 정말 좋습니다. 물건이 넘쳐나고 더 새로운 것,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에 발밑에 버려진 몽당연필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고 깨끗이 닦고 칼로 소중하게 깎아 필통에 가지런히 넣어주는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외에 연필을 잡아본 적이 없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나서 다시 연필이 사방에 굴러다닙니다. 아이를 위해 연필을 깎고 냄새를 맡아봅니다. 잃어버린 혹은 망각한 소중한 것들을 한번 새겨보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