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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 신앙과 과학의 통합을 추구한 우리 시대 기독 지성 25인의 여정
리처드 J. 마우 외 지음, 캐서린 애플게이트 외 엮음, 안시열 옮김 / IVP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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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에 접했던 경험 몇 가지를 먼저 꺼내본다.


1) <박성진 "창조과학, 비과학·유사과학이라 생각하지 않아">라는 제목의 어떤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사

2) 현재 출석 중인 교회에서 주최하는 '창조과학예배' 포스터.

제목은 <창조론과 진화론>이고 포스터 한 쪽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원숭이가, 한 쪽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대결 구도라 생각했을 것이다.

3) 공동체의 한 구성원과 얘기를 하다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비판적으로 한 번 읽어보라고 했더니 "그런 책 읽으면 (신앙이) 흔들릴 것 같고 혼란해질 것 같아서 안 읽을래요." 라는 답을 들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창세기 1장 1절 -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사도신경 -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지으신 창조주라고 고백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고 고백한다.

물론 여기까지도 괜찮다.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연세계를 지으실 때, 진화라는 방법을 쓰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진화를 선택지에서 제외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오히려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질문은 순식간에 선전포고가 되어버린다.

싸우자고 꺼낸 말이 아닌데 말이다.질문을 던진 그 누군가는 본의 아니게 원치 않는 낙인을 얻는다.

무신론자, 불순종의 아이콘, 신앙이 흔들리는 자 등등.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현대판 종교전쟁을 보는 것만 같다.

진화라는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신앙과 과학을 둘러싼 질문들이 싹을 틔우고 결실을 맺기에 아직은 척박한 현실이다.

대부분은 이 주제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몇 억 광년 떨어진 별이 관측되었는데 그 별은 도대체 언제 생긴 것인지, 가인이 도피성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디서 온 것인지, 창세기에 공룡은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신앙-과학 논쟁을 모르더라도 신앙생활을 지속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관심이 있는 소수의 일부는 진화를 무신론자의 구호 정도로 여긴다.

또 다른 일부는 쌓여가는 질문들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힘들어 한다.

교회에서 신앙과 과학이 서로 주고받으며 쌓았던 이야기를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그러하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혹은 들어주기를 바랐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야기를 쓴 25명 중 적어도 한 명쯤은 당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면, 그들은 누구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다.

신실할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 성실하며, 진리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신앙과 과학 중 어느 한 편에 서서 싸우지 않아도 된다.

싸워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점을 조금 먼저 이 고민에 직면했던 이들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킨스의 책을 거부했던 청년처럼 주저하고 두려워하지는 않기를 소망한다.

이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기꺼이 동행해 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쭙잖게 나의 이야기로 끝을 맺으려고 한다.


신앙-과학 논쟁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사람은 ‘칼 세이건’이다.

어느 날, 서점에 들렀다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저자라서 무심결에 산 책이 「코스모스」였다.

친절하고 섬세한 그의 글은 지금 다시 보더라도 매력적이지만, 그가 그려낸 인류와 인간의 실존은 지극히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다.

우주 한 구석에 처박혀서 살아가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존재.

경건하고 싶으면 예배당을 가지 말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라는 그의 말이 틀리지만은 않았다.

피조 세계의 광활함과 아름다움 앞에 자복하고 겸허해질 수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 같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크게만 느껴졌으니 적어도 세이건이 의도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우연’은 종종 찾아오기 마련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말하더라도 괜찮다.

전능하신 그 분께서는 쓰지 못할 사람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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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의를 묻다 - 특혜국가와 적폐청산
김광기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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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한 때 대한민국을 '정의' 열풍에 휩싸이게 했던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너도나도 정의로운 사회를 그려보며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안타깝지만 눈에 띠는 큰 변화는 없었다.

정의에 대한 담론 형성 등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 있었지만 체감상으로 그러했다. 

달라진 것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유야무야되며 정의는 자취를 감추어 갔다.


시간이 흘러 2016년 겨울이 되었고 정의는 다시 국민들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

정의를 원하는 외침이 촛불이 되어 광장에 모였다.

빛이 비추니 적폐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올라오는 부정의(不正義)의 다발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지난 겨울, 그리고 적폐의 싹이 돋아난 시점부터 지금에 이른 시간들을 기억해야 한다.

정의롭지 못한 그 시간들을.

헌정사상 최초로 파면 당한 대통령과 그의 졸개들을.

이윤에 눈이 먼 대기업 총수를.

기득권에 빌붙어 기생하는 비겁한 자들을.


저자는 최근에 우리가 겪은 사건들을 '기록'한다고 적었다.

기억을 위한 기록.

그리고 남겨놓은 그것들로 하여금 기억하는 것.

정의로운 나라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저자는 그가 속한 대학의 교수들과 함께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에 이름을 올렸다.

적어도 이 책에서 그가 말한 것들이 현실에서는 한 발짝 물러선 방관자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진정으로 분노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써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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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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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을 못 살게 굴던 남학생에게서 나를 읽었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도드라진 속옷 끈이 왜 그렇게 신기했을까. 
당겼다 놓고 도망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나보다 덩치가 큰 친구에게 붙잡혀서 팔 전체가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꼬집히기도 했다.
딱 한 번의 기억이지만 한 친구의 가슴에 손이 닿았고 바로 이어 뺨을 후려갈겨 맞은 적도 있었다. 덕분에 '손걸레'라는 별명도 얻었다.
다행히(?) 팬티가 어떤 모양이고 어떤 색깔인지 궁금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일명 '아이스께끼'로 불리는, 치마를 들추는 장난은 한 기억이 없다.

지금은 그 친구들과 종종 모임도 가지고 단체 카톡방에서 서로 얘기도 하며 지내고 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기도 하는 그 때의 기억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호기심'이었다는 변명으로는 위로도 보상도 할 수 없는 기억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꼬집고 한 대 후려 패는 것으로는 풀리지 않을, 말로서는 다 설명하지 못할.

김지영의 남동생에게서도 나를 읽었다. 라면을 먹을 때마저도 상대적 우위를 누렸고 누나 2명을 제치고 혼자서 (할머니가 쓰시던) 방을 차지했던 그.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할아버지나 아버지 옆에서 늘 밥을 먹었고 입학선물이라며 통장에 모아둔 돈으로 첫 학기 등록금을 내어주신 할머니가 있는 나.
차이점이 있다면 여자 형제가 없고 장손이라는 라벨을 태어날 때부터 달고 살았다는 점 정도.
분명한 것은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구조 혹은 환경의 수혜자로서 김지영의 동생과 나는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는 것.

김지영의 어머니 오미숙도 낯설지 않았다.
내게는 그녀가 61년생 김은경이자 39년생 백숙자로 느껴졌다.
엄마, 할머니이기 전에 여자로서의 그녀들의 삶은 반강제적으로 마땅히 해야된다고 받아들였던 것들에 가려져 있었다.

미안하다.

20여 년 전 교실에서
명절 때마다 마주했던 식탁에서
대학 입학의 달콤함에 젖어 있던 은행 창구에서

행위의 문제이기 전에
그녀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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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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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을 못 살게 굴던 남학생에게서 나를 읽었다.
김지영의 남동생에게서도 나를 읽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그 때의 기억들.
여자로서의 그녀들의 삶은 반강제적으로 마땅히 해야된다고 받아들였던 것들에 가려져 있었다.
미안하다.
그녀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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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사회학
김광기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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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당연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합당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더라도 '그건 당연한거야'라는 한마디로 수월하게 넘어간 경험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한편 '무엇이 당연하다는 것입니까?'라는 반격을 받았던 경험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무난하게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드디어 잘 쓰지 않던(?) 머리에 시동이 걸린다.


'내가 당연시 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을 만나면 여러가지 이유로 피곤해진다.

엄밀히 말하면 '머리'가 피곤해진다.

별 생각없이 살아왔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철석같이 믿었던 것들이 산산히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피아간 생겨버린 균열에 대한 고민 등으로 인해서.

그리고 그 피곤함을 온전히 마주한다면 이유가 어떤 것이든 그 순간부터 '당연시 여기던 것에 대한 고찰'을 시작하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위해 15년 동안 '이방인'과 '사회'에 대해 천착하였다.

15년 동안 그가 쏟아부은 시간과 땀을 생각한다면, 이 책을 어찌 몇시간, 몇일만에 오롯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감히'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밖에 없다.


감히 말한다.

누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나 인식하지 못한 사실들에 대해 저자는 명쾌한 설명을 제시한다.

세밀한 관찰에서 비롯된 풍부한 예시는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딱딱하지 않고 거침없는 문체 또한 책을 읽어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는 저자가 썼던 다른 책들과 논문에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리뷰의 끝자락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학문의 세계에서 '사회학'의 역할이 '이방인'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왜 '이방인'일까?

이 책을 통해 확인하길 바라며 끝을 맺는다.


**


토박이들이 쌓아왔던 공고한 성은 위태위태해지고, 그 견고한 성이라는 위용 뒤에는 토박이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떠받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토박이들로 하여금 자각하게끔 하는 데는 '이방인'만한 존재가 없다. 즉, 그러한 '믿음'이 터무니없는 환상과 연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환상에 기초해 현실이 건설되었다는 인식을 갖게끔 부추길 수 있는 존재는 '이방인'뿐이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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