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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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을 못 살게 굴던 남학생에게서 나를 읽었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도드라진 속옷 끈이 왜 그렇게 신기했을까. 
당겼다 놓고 도망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나보다 덩치가 큰 친구에게 붙잡혀서 팔 전체가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꼬집히기도 했다.
딱 한 번의 기억이지만 한 친구의 가슴에 손이 닿았고 바로 이어 뺨을 후려갈겨 맞은 적도 있었다. 덕분에 '손걸레'라는 별명도 얻었다.
다행히(?) 팬티가 어떤 모양이고 어떤 색깔인지 궁금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일명 '아이스께끼'로 불리는, 치마를 들추는 장난은 한 기억이 없다.

지금은 그 친구들과 종종 모임도 가지고 단체 카톡방에서 서로 얘기도 하며 지내고 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기도 하는 그 때의 기억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호기심'이었다는 변명으로는 위로도 보상도 할 수 없는 기억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꼬집고 한 대 후려 패는 것으로는 풀리지 않을, 말로서는 다 설명하지 못할.

김지영의 남동생에게서도 나를 읽었다. 라면을 먹을 때마저도 상대적 우위를 누렸고 누나 2명을 제치고 혼자서 (할머니가 쓰시던) 방을 차지했던 그.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할아버지나 아버지 옆에서 늘 밥을 먹었고 입학선물이라며 통장에 모아둔 돈으로 첫 학기 등록금을 내어주신 할머니가 있는 나.
차이점이 있다면 여자 형제가 없고 장손이라는 라벨을 태어날 때부터 달고 살았다는 점 정도.
분명한 것은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구조 혹은 환경의 수혜자로서 김지영의 동생과 나는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는 것.

김지영의 어머니 오미숙도 낯설지 않았다.
내게는 그녀가 61년생 김은경이자 39년생 백숙자로 느껴졌다.
엄마, 할머니이기 전에 여자로서의 그녀들의 삶은 반강제적으로 마땅히 해야된다고 받아들였던 것들에 가려져 있었다.

미안하다.

20여 년 전 교실에서
명절 때마다 마주했던 식탁에서
대학 입학의 달콤함에 젖어 있던 은행 창구에서

행위의 문제이기 전에
그녀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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