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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평점 :
이 세계의 가장 느리고 약한 것들과의 연대
우리는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행복과 위로, 애도와 회복, 자유로움과 같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한 경주마 ‘투데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로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녀 ‘은혜’, 아득한 미래 앞에서 방황하는 ‘연재’, 동반자를 잃고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끝없는 애도를 반복하는 ‘보경’, 『천 개의 파랑』은 이렇듯 상처 입고 약한 이들의 서사를,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따뜻한 파랑波浪처럼 아우른다. 세계의 구석에서 누구도 홀로 물방울처럼 울지 않게 말이다.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천변만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천 개의 파랑』은 변하지 않는 것, 이 세계의 가장 느리고 약한 것들과 기꺼이 발걸음을 맞추며 걷는다.
(출판사 리뷰 중 일부분을 인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겠네요.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윗 문장은 '콜리'가 '보경'에게 말하는 내용이다. 남편을 잃고 난 뒤 혼자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온 보경에게는 상처를 보듬을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아무리 바삐 살아도 잊히지 않는 상처 속에서 살아온 그에게 있어 '시간'이라는 단어는 흔히들 말하는 '흐른다'라는 표현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멈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동안 나는 상처를 어떻게 대했는지, 상처를 받아 위로를 구하는 이에게 나는 어떤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슬프면 슬픈 대로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울고 싶으면 울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 그저 잠만 자며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감정이 조금 추슬러질 때 잠깐 산책을 갔다 오든 책을 읽든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만들어 보든 하나씩 해보자고,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종종 좌절을 마주했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동시에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책을 끝까지 다 읽다니, 잘했어!'와 '이제 하나 읽은 거 가지고 뭘 할 건데?'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 이외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의 시간은 나의 그것에 비해 너무 빨라 보였고, 그 속도에 조급해졌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충분히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고 얘기하지만, 정말 힘들 땐 그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모두 힘을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로가 가진 슬픔은 결코 연결되지 못한 채 내 슬픔, 네 슬픔 분리되어 있음을 느낀다.
『천 개의 파랑』은 그런 우리에게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잠시 멈춘 시간 속에서 사는 이들, 아니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존재들 간의 끈질긴 연대를 그리며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그 연대 속으로 초대한다. 함께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보자. 큰 힘을 들이지 말고, 아주 천천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겠네요.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림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림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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