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 씨, 퇴사하고 뭐 하게? 당신을 위한 그림책, You
계남 지음 / 요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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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묶인 자와 회사를 떠난 자 모두를 향한 응원.

많은 여행자들의 로망인 페루. 주인공 라마씨는 페루의 유명한 관광지 무지개산에서 관광객들에게 같이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다 사표를 내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하며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의 영혼 바큐냐를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 과정 속에서 꿈과 자신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을 함께 떠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안녕, 나는 라마야

남미 안데스 산맥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지.

엄마 아빠는 관광객들의 짐을 등에 실어나고

나는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 찍어 주는 일을 했었어.

 

지금은 뭘 하냐고?

내 편지를 한번 읽어볼래?

 

 

첫 번째 편지 - 동료 라마에게

 

계속해서 여러 번 찍는 관광객들 때문에

하루에 백번도 더 넘게 찍힌 날도 있었잖아.

나는 웃는 것도 너무 지겨웠어.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세상이 궁금해졌고, 떠나고 싶어졌어.

우리가 찍혔던 지겨운 사진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가는 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

 

 

그래도 그 일은 정말 힘들었어.

장난꾸러기들이 꼬리를 잡아당기거나

털을 뽑아도 항상 친절해야 한다는

규칙을 지켜야 했으니까.

 

 

어쩌면 나는 도망친 건인지도 모르겠어.

 

 

평범한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도

매일매일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인 것 같아.

 

 

일하면서 서 있기도 힘들고 졸릴 때는 함께 커피를 마셨지.

무심코 마셨던 커피였는데,

 

커피가 자라고 있는 시간 속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한참 서 있었어.

그 풍경과 향을 너에게 전하고 싶어.

 

너와 함께 보고 싶은 풍경이 정말 많았어.

해안가를 여행하면서 알게 된 건 바다마다 색이 다르다는 거야.

 

두 번째 편지 - 비쿠냐에게

 

너는 지금 어디를 여행하고 있을까?

너의 여행은 끝이 났을까?

 

 

라마의 친척이지만, 라마의 다른 삶을 사는 비쿠냐.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라는 비쿠냐.

 

내가 꿈꾸던 비쿠냐의 자유가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었어.

 

 

너와 함께 길을 만들며 걷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어.

정해진 길이 없어도 아름답던 순간.

 

 

나는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 그곳에서 사는 게 꿈이야.

그래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중이고.

 

 

세 번째 편지 - 나에게

 

나는 다르게 살려고 한 게 아니었어.

그저 세상이 궁금했고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지.

 

 

기차를 놓치고, 길을 잃고,

완전한 어둠에 갇히기도 했지만 여기가지 잘 왓어.

가장 어두울 때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큰 힘이 생기기도 했어

세상은 넓고 깊고 어둡고 밝고

위험하고 따뜻했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함께 나누고 싶어

 

마음과 자연에 귀 기울이는

단순하고 자유로운 삶의 이야기를.

 

 

이제 너의 이야기를 들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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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나무 일기
리처드 히긴스 엮음, 허버트 웬델 글리슨 외 사진, 정미현 옮김 / 황소걸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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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가 세세한 부분가까지 살펴보는 것은 단순한 관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명상 행위이기도 했다. 소로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나무를 관찰했다.

 

나무 관찰은 소로가 어쩌다 한 번 씩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다 각도로 나무를 살펴봤다. 가까이 가서 보기도 하고, 멀리 물러나서 보기도 했다. 소로에게 나무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비단 눈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눈앞에 나무가 있어도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영혼 없는 눈으로 나무를 볼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향해 나아갈 때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에 달린 법이다.

 

이 무수한 그림자가 하얀 바닥을 얼룩덜룩 물들이고, 빛이 비친 부분을 한층 밝아 보이게 한다. 이파리 절반을 잃은 이 어린 참나무의 그림자를 보면, 땅에 비친 잎사귀의 그림자는 마치 샹들리에 그림자인 양 원래 모습보다 아름답다. 눈 위에 떨어진 낙엽인 듯 미동도 없다. 하지만 나무를 흔들면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인다.

 

소로의 일기에 숲도 대지도 흙도 다른 모든 것도 기쁨을 위해 존재 한다'고 썼다. 나무는 그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통로다.

 

나무 역시 나를 알아보고 몇 걸음쯤 기꺼이 나를 마중 나온 듯하다. 이제 순조로이 맺어진 이 교유 관계가 이어지리라는 믿음이 든다.

 

사람들은 대부분 관목참나무가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그 나무가 천하게 쓰이지 않아 나는 정말 기쁘다. 나무꾼의 손수레에 실린 걸 본 적이 없다. 묘목 지대를 방금 구입한 주민이 관목 참나무만 움튼 것을 보고 악담을 퍼붓는다. 하지만 그 나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역할을 한다.

 

소로는 무릇 시인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말했듯이 때때로 벌목꾼이 다니는 길을 여행했다. 그가 숲에 간 이유는 목재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비유적인 언어의 원천을 찾기 위해서다.

 

소로는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갈 대 지나치게 꼼꼼하고 꽉 막힌 도서관원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가 읽고 싶은 자연사 관련 서적 열람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소로는 도시의 어두침침하고 먼지투성이인 대리석 건물보다 차라리 숲의 도서관에서 그런 책을 보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저 강바닥을 보는 데서 나아가 물에 비친 나무와 하늘까지 보려면 다른 의도를 품은 눈, 다시 말해 더 자유롭고 추상화된 시각이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모든 사물은 다양한 각도에서 시선을 받으며, 가장 불투명한 것마저 자기표현에 하늘을 비춘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자기 시선을 두려는 대상은 저마다 다른 법이다.

 

저 멀리 나무꾼의 도끼 때문에 불안에 떨지 않는 상상 속의 나무들이, 가까이 더 가까이에는 숲 언저리와 나의 속눈썹이 보인다. 하늘을 배경으로 줄지어 도드라진 저 숲 말고 내가 얻은 수액, 열매, 가치를 어디서 찾겠는가. 저 숲 속에 내가 일군 숲이 있다. 은빛 솔잎 햇빛을 곱게 걸러내는 나의 숲이.

 

10월은 인간이 더는 순간적인 기분에 의존하지 않는 인생의 어느 시기와 일치한다. 이즈음 인간의 경험은 하나하나 지혜로 영글어가고, 그의 모든 뿌리와 가지와 잎은 성숙함으로 빛난다. 그가 봄여름에 보여준 모습과 그때껏 해낸 일의 결과가 나타난다. 결실을 맺는 것이다.

 

솔잎은 떨어졌다가 다시 살아난다. 마치 달랑 한 해 비축한다고 해서 이 기름진 흙이 생겨 그 안에서 소나무가 자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듯하다. 솔잎은 흙 속에 살며 토양은 더욱 비옥하게 하고 토양은 부치도 점점 늘어나게 한다. 그 토양에서 비롯되는 숲에 계속 사는 셈이다.

 

모든 생명체는 죽은 것보다 산 것이 낫다. 사람도, 무스도, 소나무도 그렇다.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의 생명을 파괴하기보다 보존할 것이다.

 

나는 소나무를 보면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수증기가 조금 섞인 구름이 나무 위로 높이 떠다는 사이, 서쪽에는 빨갛게 달아오른 소나무 수풀 뒤로 해가 서둘러 모습을 감추고 태산 같은 황금빛 구름이 지평선 언저리를 지났다.

이 세상에서 소나무만큼 어떤 허물도 없이 우뚝 선 존재는 없다.

 

실로 모든 사람이 과학적인 인간은 아닌 법이다. 그런 사람들은 코르크나무의 껍질보다 두꺼운 편견의 껍데기 안에 산다. 그것으로는 병 주둥이나 막는 편이 낫겠다. 물에 둥둥 뜨는 편견에 몸을 묶은 그들은 정직한 헤엄꾼이 가라앉을 때도 끈질기게 물에 떠 있는다.

 

굽이치는 새하얀 시트로 싸인 환영 같은 나무, 눈 덮인 가지 덕에 전나무로 변신한 소나무. 아침 햇살에 반질반질한 은처럼 빛나는 얼음 덮인 숲, 하얗게 뒤덮인 나무의 아래쪽 가지 밑에 생긴 작은 에서 아늑하게 보호 받는 기분.

 

감탄 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있는 아름다움. 혹여 내가 발 디딘 이곳에서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른 데서 아름다움을 찾아 헤맨다면 그야말로 헛된 수고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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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1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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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울었다. 친구가 처음 눈앞에서 나무로 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땅에 무릎 꿇은 채 친구일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는 나무둥치에 이마를 대고 있는 힘껏, 목청껏 울부짖었다.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친구의 숨결에서 짙은 흙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무덤 속에 누운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방을 휘감은 숨 막히는 땅의 냄새,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갈 인간을 발밑에서 평생 지배하는 강력한 대지의 냄새였다.

 

생명을 먹고 피어난 검은 나무와 꽃과 잎사귀는 주변 공기의 색깔마저 바꿔놓았다. 밤의 검은 대기는 꽃 주변에서만 옅은 분홍색과 노란색, 하늘색과 연두색이 뒤섞인 색깔을 내며 어스름하게 빛났다. 새벽녘에 동이 터서 희부연 햇빛 속에 꽃들이 즉각 흩어져 사라져버릴 때까지 그는 몇 시간이고 매혹되어 바라보곤 했다.

 

동이 틀 무렵에 그는 마침내 검은 나무 앞에 도착했다. 숲속 부옇게 밝히는 첫 새벽 햇빛 속에서 검은 나무는 어쩐지 전보다 작고 무해하며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는 조금 안심했다.

 

불꽃은 나무 주변의 대기는 물론 하늘과 땅을 모두 붉게 물들이며, 춤추며, 휘파람 같은 알 수 없는 노랫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두 사람을 잡아먹은 죽은 나무를 휩싼 마지막 불의 개화는 그가 이전에 넋을 잃고 보았던 초현실적인 꽃의 향연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더 슬프고 참담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울었다.

 

고치 속은 따뜻했다. 머리카락이 여자를 절박하게 원했으므로 여자는 쓸쓸하지도 고독하지도 않았다. 다정한 고치 속에 몸을 웅크리고 안겨서 여자는 평온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그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만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낙이 된 소녀는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꿈이 사실이라면 적들이 처음 다가오는 곳, 큰 나라가 시작되는 곳은 바로 이 바닷가였다.

아낙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의자와 상관없이 이곳까지 흘러온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 믿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수평선 너머에서 나타날 것이었다. 그래서 아낙은 바닷가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때 풍요로운 산이었던 구덩이 안에서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사막과도 같이 메마른 모래뿐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부서뜨리기는 아주 쉽다. 나는 그녀도 그렇게 쉽게 부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고무공처럼, 안은 텅 비었는데도, 아무리 힘을 주어도 부서지지 않았다.

 

새의 비명 소리와도 같은 휘파람 소리가 곧 여자의 외침에 대답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다시 한 번, 여자가 하늘을 쳐다보며 길고 슬프게 한숨 같은 곡조를 붙였다. 이에 답하는 비탄에 찬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대기를 뒤덮었다. 마을은 애도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나는 이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돼지처럼 진흙 바닥에서 잠을 자고, 채찍을 맞고, 가축처럼 팔려 다니던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제 그의 세상에는 선도 자비도 용서도 없었다. 그의 존재는 비로소 의미를 찾았다. 눈과 얼음으로 뒤엎인 아름답고 무자비한 세상에 홀로 서서 그는 완전한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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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철학 - 실체 없는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사는 법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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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에서 뭔가 괴로운 경험을 한 사람은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대인관계를 회피하려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이유로 불안을 내세운다.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혹은 불안해져도 바로 잊을 수 있도록,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자면 위락에 몰입한다. ‘위락은 현실에서 주의를 돌리는 일로, 이에 대해 미키 기요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위락에 공통하는 이유는 우리가 처해 있는 비참한 상태에서 눈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려는 삶의 충동에 있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마찰이 생기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토록 골치 아프고 힘든 대인관계를 피하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괴로운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를 피하기 위해 불안을 만들어 낸다. 불안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 그 구실로서 불안을 내세우며,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대인관계를 피하는 계기가 된다.

 

게다가 보통 질투는 질투 받는 자의 위치로 자신을 끌어 올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상대를 자신의 위치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미키 기요시)

아들러는 이런 심리를 가치 저감경향이라고 부른다. 현실적으로 노력해서 목표로 하는 사람과 동등하게 되거나 뛰어넘으려 하기보다 도리어 상대를 자신과 같은 위치로, 혹은 이하로 끌어내리려 한다. 그렇게 해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특정한 누군가의 성공을 질투하지만, 그 질투하는 상대를 개성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소문의 근원이 불안이라는 말은 진리를 담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불안해서 소문을 만들고 받아들이고 또한 전달한다. 불안은 정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오히려 온갖 정념을 움직이는 것, 정념의 정념이라고도 해야 하며, 그렇기에 정념을 넘어선 것이다.”

 

병에 걸리면 그때까지 죽음에 대해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던 사람도 죽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다만 병에 걸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 알면 불안이 조금은 줄어들지 모른다.

 

신체의 상처나 병이 완전히 낫는 것, 즉 치유나 완치 상태가 아닌, 증상이 거의 없어지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으며 별다른 문제가 없을 정도까지 좋아진 상태를 완화라고 한다.

 

살아 있는데 자신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병이 걸리기 전에는 가치 있다고 여겼던 일들이 조금도 가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가치는 살아 있는데 있다. 살아 있는 것이 그대로 타인의 기쁨이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늙음도 질병과 마찬가지로 퇴화가 아닌 변화다 늙은 현재는 젊었을 때에 비해 열등한 것이 아니다. 단지 늙은 상태에 있을 뿐이다.

 

나이가 들면 분명히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니다. 예전에 갖고 있던 것이 지금은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젊을 때도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젊었을 때난 나이 들었을 때나 그 무엇을 소유한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비교적 꽃이 피는 기간이 긴 매화와 달리, 벚꽃이나 모란은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또 언제 질까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하지만 꽃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꽃이 피기 무섭게 바로 지더라도 그건 자연 현상일 뿐이며, 빨리 지고 마는 자신의 운명을 슬퍼할 일은 아닌 것이다.

 

미래는 무엇 하나 정해져 있지 않다는 현실을 알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 불안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이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앞날이 보인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레일이 없다는 건, 상식적인 방식대로 살아갈 필요가 없으며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다. 인생은 색다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다 보면 때때로 심연을 맞닥뜨리게 되는 데 그때는 심연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심연으로 뛰어들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불안하겠지만, 이때의 불안은 다른 사람에게 맞춰가며 남들이 하는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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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는 용기 - 불합리한 세상에 대처하는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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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제로도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 건 아니다. 그 결과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움직이려 드는 경우도 많다.

 

분위기를 따르지 않고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왜 쉽지 않은 걸까. 실제로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이것은 개인을 넘어선 전체의 의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단지 느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그 전체의 의지가 개인을 규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설득당한 사람은 자신이 설득 당한 이유로 분위기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 자리의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것은 아실이 아니다.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행동을 그 자리의 분위기 탓으로 돌리는 것뿐이다.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이 동의해서는 안 될 사안에 동의한 것은 분명 자신의 책임이다.

 

필요하다면 막아서는 사람이 있어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의 분위기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분위기에 거스를 용기가 없는 사람은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꿔 말하면 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 너무 많은 것이다. 정말 로 가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남의 시선을 신경 쓸 리가 없다. 즉 그런 사람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분위기가 주는 압박감이 커서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해야 할 말이나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분위기는 실체로 존재하지 않기에, 그것을 감지하더라도 무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더욱 강력하게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제동을 거는 압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도덕이다. 도덕이 행동의 자유를 저지하고 때로 불합리한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질서가 형성된 사회에서는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사람 혹은 남들이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미움 받고 원망을 들을 것이다.

 

타인의 의견에 따라 자기 인생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그 결과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남의 의견에 따라 살아온 인생이 결코 자신이 원한 인생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또한 자기 인생이지 타인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다면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확실히 말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기분 나빠 하지는 않을까 염려되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으면 표면적인 관계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관계를 진정한 긍정적인 사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불합리하다면 침묵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잠자코 있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느낄 때, 이때 생기는 감정은 사분이 아니라 공분이다. 사적이고 충동적, 감정적인 분개는 무익하지만 사회적 정의에 비춰 잘못되었다고 주장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품는 감정은 공분이다.

 

분노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그것이 열등감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다른 가능성을 단념했거나, 더욱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만이 가지는 강화된 움직임이다.”

 

다음으로, 분노는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정동이라는 사실이다. 화를 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심리적 거리감이 생긴다.

 

정의에 비추어 잘못된 일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감정적인 사분이 아니라 지성적인 공분이다.

 

진정한 분노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성에 속한다. 설사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고독해졌다고 해도, 그렇게 고독해지는 데 윤리적 의의가 있다고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분별은 모든 분쟁의 원인이다. 분쟁은 어느 쪽이 옳은가를 명확히 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필요한 것은 분쟁이 아닌 문제 해결이다. 그러므로 불합리한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해야 할 일은 분노를 타자에게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대화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든 간에 자명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하고 온갖 말을 다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당연하다 혹은 논할 것까지 없다고 하며 상대의 말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코 맞서야 한다.

 

전해지는 말과 전해지지 않는 말이 있다. 물론 이것은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다. 큰 목소리를 낸다고 그 목소리가 반드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쪼록 이 책에 내가 쓴 이 여러분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때 비로소 내 말은 혼잣말이기를 멈추고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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