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는 용기 - 불합리한 세상에 대처하는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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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제로도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 건 아니다. 그 결과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움직이려 드는 경우도 많다.

 

분위기를 따르지 않고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왜 쉽지 않은 걸까. 실제로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이것은 개인을 넘어선 전체의 의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단지 느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그 전체의 의지가 개인을 규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설득당한 사람은 자신이 설득 당한 이유로 분위기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 자리의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것은 아실이 아니다.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행동을 그 자리의 분위기 탓으로 돌리는 것뿐이다.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이 동의해서는 안 될 사안에 동의한 것은 분명 자신의 책임이다.

 

필요하다면 막아서는 사람이 있어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의 분위기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분위기에 거스를 용기가 없는 사람은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꿔 말하면 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 너무 많은 것이다. 정말 로 가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남의 시선을 신경 쓸 리가 없다. 즉 그런 사람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분위기가 주는 압박감이 커서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해야 할 말이나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분위기는 실체로 존재하지 않기에, 그것을 감지하더라도 무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더욱 강력하게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제동을 거는 압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도덕이다. 도덕이 행동의 자유를 저지하고 때로 불합리한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질서가 형성된 사회에서는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사람 혹은 남들이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미움 받고 원망을 들을 것이다.

 

타인의 의견에 따라 자기 인생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그 결과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남의 의견에 따라 살아온 인생이 결코 자신이 원한 인생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또한 자기 인생이지 타인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다면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확실히 말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기분 나빠 하지는 않을까 염려되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으면 표면적인 관계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관계를 진정한 긍정적인 사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불합리하다면 침묵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잠자코 있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느낄 때, 이때 생기는 감정은 사분이 아니라 공분이다. 사적이고 충동적, 감정적인 분개는 무익하지만 사회적 정의에 비춰 잘못되었다고 주장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품는 감정은 공분이다.

 

분노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그것이 열등감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다른 가능성을 단념했거나, 더욱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만이 가지는 강화된 움직임이다.”

 

다음으로, 분노는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정동이라는 사실이다. 화를 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심리적 거리감이 생긴다.

 

정의에 비추어 잘못된 일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감정적인 사분이 아니라 지성적인 공분이다.

 

진정한 분노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성에 속한다. 설사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고독해졌다고 해도, 그렇게 고독해지는 데 윤리적 의의가 있다고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분별은 모든 분쟁의 원인이다. 분쟁은 어느 쪽이 옳은가를 명확히 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필요한 것은 분쟁이 아닌 문제 해결이다. 그러므로 불합리한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해야 할 일은 분노를 타자에게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대화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든 간에 자명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하고 온갖 말을 다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당연하다 혹은 논할 것까지 없다고 하며 상대의 말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코 맞서야 한다.

 

전해지는 말과 전해지지 않는 말이 있다. 물론 이것은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다. 큰 목소리를 낸다고 그 목소리가 반드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쪼록 이 책에 내가 쓴 이 여러분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때 비로소 내 말은 혼잣말이기를 멈추고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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