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1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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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울었다. 친구가 처음 눈앞에서 나무로 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땅에 무릎 꿇은 채 친구일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는 나무둥치에 이마를 대고 있는 힘껏, 목청껏 울부짖었다.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친구의 숨결에서 짙은 흙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무덤 속에 누운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방을 휘감은 숨 막히는 땅의 냄새,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갈 인간을 발밑에서 평생 지배하는 강력한 대지의 냄새였다.

 

생명을 먹고 피어난 검은 나무와 꽃과 잎사귀는 주변 공기의 색깔마저 바꿔놓았다. 밤의 검은 대기는 꽃 주변에서만 옅은 분홍색과 노란색, 하늘색과 연두색이 뒤섞인 색깔을 내며 어스름하게 빛났다. 새벽녘에 동이 터서 희부연 햇빛 속에 꽃들이 즉각 흩어져 사라져버릴 때까지 그는 몇 시간이고 매혹되어 바라보곤 했다.

 

동이 틀 무렵에 그는 마침내 검은 나무 앞에 도착했다. 숲속 부옇게 밝히는 첫 새벽 햇빛 속에서 검은 나무는 어쩐지 전보다 작고 무해하며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는 조금 안심했다.

 

불꽃은 나무 주변의 대기는 물론 하늘과 땅을 모두 붉게 물들이며, 춤추며, 휘파람 같은 알 수 없는 노랫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두 사람을 잡아먹은 죽은 나무를 휩싼 마지막 불의 개화는 그가 이전에 넋을 잃고 보았던 초현실적인 꽃의 향연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더 슬프고 참담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울었다.

 

고치 속은 따뜻했다. 머리카락이 여자를 절박하게 원했으므로 여자는 쓸쓸하지도 고독하지도 않았다. 다정한 고치 속에 몸을 웅크리고 안겨서 여자는 평온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그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만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낙이 된 소녀는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꿈이 사실이라면 적들이 처음 다가오는 곳, 큰 나라가 시작되는 곳은 바로 이 바닷가였다.

아낙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의자와 상관없이 이곳까지 흘러온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 믿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수평선 너머에서 나타날 것이었다. 그래서 아낙은 바닷가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때 풍요로운 산이었던 구덩이 안에서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사막과도 같이 메마른 모래뿐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부서뜨리기는 아주 쉽다. 나는 그녀도 그렇게 쉽게 부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고무공처럼, 안은 텅 비었는데도, 아무리 힘을 주어도 부서지지 않았다.

 

새의 비명 소리와도 같은 휘파람 소리가 곧 여자의 외침에 대답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다시 한 번, 여자가 하늘을 쳐다보며 길고 슬프게 한숨 같은 곡조를 붙였다. 이에 답하는 비탄에 찬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대기를 뒤덮었다. 마을은 애도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나는 이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돼지처럼 진흙 바닥에서 잠을 자고, 채찍을 맞고, 가축처럼 팔려 다니던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제 그의 세상에는 선도 자비도 용서도 없었다. 그의 존재는 비로소 의미를 찾았다. 눈과 얼음으로 뒤엎인 아름답고 무자비한 세상에 홀로 서서 그는 완전한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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