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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 니나 시몬, 희망을 노래하다 ㅣ 삶과 사람이 아름다운 이야기
트레이시 N. 토드 지음, 크리스티안 로빈슨 그림, 김서정 옮김 / 베틀북 / 2023년 3월
평점 :
2022 코레타 스콧 킹 아너 수상작
천재 피아니스트에서 흑인 민권 운동가가 되기까지!
니나 시몬의 탄생 90년, 사후 20주기를 기리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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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엄마가 집에 없을 때 아빠는 유니스를 무릎에 앉히고
그 조그만 손가락을 자기 손가락 위에 얹어, 자기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연주했어요.
유니스는 정말 빨리 배웠어요.
목사였던 엄마는 재즈가 성스럽지 못한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유니스가 세 살이 되자, 어마는 유니스를 데리고 다니며 찬송가 반주를 시켰어요.
엄마가 부드럽게 설교를 시작하면 유니스도 부드럽게 피아노를 쳤어요. 그러다 엄마가 점점 열을 올리면 유니스도 그 리듬에 맞춰 점점 더 흥겹고 신나게 건반을 두들겼어요. 설교와 음악에 취한 신자들이 모두 일어나 몸을 흔들 때까지 말이에요.
마침내 유니스의 연주를 듣게 된 밀러 부인은 유니스가 정말 재능이 뛰어난 아이란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친구 뮤리얼 마차노비치(마지 선생님)에게 소개했지요.
유니스가 피아노 레슨을 받기 위해서 마지 선생님과 밀러 부인은 유니스의 재능을 널리 알렸어요. 교회에서 모금을 했고 지역 신문에 기사를 냈어요. 길거리에서 유니스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백인들은 유니스를 보면 손가락질을하며 말했어요. “쟤가 마지 선생님의 흑인 아이야!”
유니스에게는 계획이 있었어요. 줄리어드 음악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일 년 뒤에 정말 바라던 곳으로 가리라는 것이었어요. 그 유명한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 말이에요.
시험 날 유니스는 악보도 없이 외워서 연주를 했어요. 하나도 안 틀리고요 하지만 그래 봤자였어요. 커터스 음악원은 유니스를 떨어뜨렸어요.
커티스 음악원이 유니스를 떨어뜨린 이유는, 흑인이기 때문이라는 말을요.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니스는 사실인 것 같았어요. 그 옛날의 분노와 상처가 되돌아와 유니스를 덮쳤어요. 생전 처음 유니스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유니스는 음악을 포기 했어요.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피아노에는 손도 대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음악을 외면할 수는 없었지요.
애틀랜틱시티의 한 재즈 클럽에서 여름동안 피아노 칠 연주자를 찾는 다는 말을 해 주었어요. 유니스는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하고, 어수선한 클럽을 찾아 갔어요.
기기는 성스럽지 않은 장소였고, 음악도 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유니스의 엄마가 알게 되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유니스는 이름을 바꿨어요. ‘니나 시몬’으로요.
이듬해 니나는 애틀랜틱시티와 필라델피아의 수많은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했어요. 니나는 새곡도 불렀어요.
그 노래가 음반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열광했지요.
니나 시몬이 세상에 나온 거예요!
1963년, 니나는 뼈저린 노력의 결실을 맺었어요. 카네기 홀에서 성대한 연주회를 열게 된 거예요. 모든 음악인이 서고 싶어 하는 뉴욕의 그 어마어마한 무대에서 말이에요.
북소리는 9월15일에 다시 울렸어요. 버밍햄의 흑인 교회에서 폭탄이 터진거예요.
북소리는 끈질기고 강력하게 계속됐어요. 그 소리가 니나 속에 잠겨 있던 옛 상처를 두들겨 깨웠어요.
니나는 그 상처와 분노를 끌어 모아 거대한 폭풍 같은 노래를 만들었어요.
니나는 공손한 게 지긋지긋했어요. 니나가 겪은 바로, 공손한 태도는 흑인들에게 아무것도 이루어 주지 못했으니까요.
묵직한 새 노래 안에서 니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목소리는 이제 훨씬 단단하고, 거치고, 반항적이었어요.
니나 시몬은 미국 흑인들이 겪어 온 이야기를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니나의 목소리는 사랑과 기쁨과 힘으로 넘쳤어요.
그리고 ‘사랑스러운, 소중한 우리 꿈들아’라고 흑인 아이들에 대해 노래할 때, 니나의 목소리는 희망 그 자체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