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매로 월세 2천만 원 받는다 - 경매 달인 유영수 원장이 공개하는 필살기 나는 경매로 월세 2천만 원 받는다 1
유영수 지음 / 아경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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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먹고 살기가 팍팍해지고 무엇보다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들은

현실에서 어떻게 하든 더 잘벌고 더 저축하여 미래를 대비하고자 한다.

 

그 방법으로 어렸을 때부터 공부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잡아서 안정되게 살고자 한다.

그러나 IMF이후 우리는 평생직장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학습을 하였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것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4~50대는 정상적인 결혼을 한 사람들에게는 한참 자녀양육에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될 시점이다.

또한 노후준비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한 나이때에 직장은 더 이상 우리에게 안정된 경제활동을 하게 해주지 않는다.

 

자 그러면 어찌 해야 하나.

 

사람들마다 다양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중 하나. 부동산경매를 통한 재테크를 강조한 책이 나왔다.

저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경매시장에 진입을 하였지만 첫 운도 좋았고 무엇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기에 경매도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배운것은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개인이 이 책을 읽고 혼자 경매를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경매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경매를 통해 인생역전 아니면 자그마한 노후설계등을 하게 된

많은 사례를 이야기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보고 경매도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다만 경매가 뭔지, 경매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경매를 배우고자 한다면 어떤 각오와 생각을 하여야 하는지를

실제 경험사례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요즘의 재테크 수단은 대개 주식과 부동산 예금이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 부동산의 분야는 참으로 방대하다. 토지부터 시작하여 상가, 아파트와 주택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가운데 부동산 경매의 분야가 욕심을 버리고 발로 뛰는 열정을 갖고 좋은 스승밑에서 잘 배우기만 하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경매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점을 강조한다.

다만 경매학원을 빙자하여 사기투자를 유도 하는 곳도 많으니 조심하길.

이 저자의 학원을 한번 두드려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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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정문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알고 있는 아니 관심을 조금이라도 두면서 알고 있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중 한 두개를 말해보자.

 

첫째,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이슬람원리주의자들로 여성들의 교육과 취업을 전면 금지하였으나

나름대로 치안을 회복하였으며 나라를 안정시켰다.

 

둘째,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크메르 루주가 자국민을 200만명을 학살한 인류사의 최대 비극이다.

 

하나만 더, 유고슬라비아의 세르비아가 나머지 나라들을 무참이 인종청소등을 하였기 때문에 나토는 유고를

공습하여 발칸 지역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위 사실들을 우리는 어떻게 알게 되었고 그 사실들은 다 맞는 말일까.

 

여기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해외 분쟁지역의 내용들이 모두 틀리거나

맞더라도 일부만 맞는 왜곡된 사실들이라고 온 몸으로 증언하면서 기록한 책이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탈리반은 모든 점령지역에서 금지시킨 여학생 교육을 자신들 본거지인 동남부 파슈툰 지역만은

예외로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파슈툰지역 600여개 학교에 3만명이 넘는 여학생들은

탈없이 등교하고 있었다........카불을 비롯해 북부 타지크족과 우즈베크족 지역 그리고 중부 시아파

하자라족 지역에서만 여성을 압박했다는 시실을 언론들이 잡아내지 못햇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든..어쨌든

....교육 금지는 그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뼈대였다.."

 

"부패 척결이라고?

무급 구세군이라고 주장했던 탈리반전사들은 갓 은행에서 인출한 듯 빳빳한 유에스달러를 자랑스레 흔들고 다녔다.

점령지역 집집을 헤집고 다니며 강조짓도 했다...아편을 비롯해 국경 밀무역에서 뜯은 음침한 통과세를 각 지방

전쟁군주들에게 뿌리며.."

 

둘째,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미국이 저지른 1969년~1973년의 1기 킬링필드가 있고 민주캄푸치아 집권기

즉 크메르 루즈의 1975년~1979년의 2기 킬링필드로 구분된다.......1기는 베트남과의 국경지역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주위를 미국이 차별 폭격한 1기에서 대략 60만명, 크메르루즈의 2기에서 대략 80만명의 양민들이

살해되었다. 이게 킬링필드 전모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98년부터 코소보는 내전상태에 빠져들었다. 코소보의 알바니아계는 알바니아로 가서 난민생활을 하였다..

이 난민촌에 병실 250개짜리 호화판 병원이 들어서는가 하면, 샤워장엔 펄펄 끊는 물이 흘렀고,

유치원에는 독일 어린이 표준용 자전거와 장난감이 넘쳐 났고, 파리 표준 화장지와 생리대가 여기저기 뒹굴었다...

 

"미국 공군이 주도했던 나토 연합 폭격대는 '인도주의 전쟁'이라면서 병원 21곳, 학교시설 200여곳, 사원 18곳,

역사유적지 9곳을 비롯해 라디오센터 건물과 23개에 이르는 방송시설을 파괴했다.."

 

어떤가? 우리가 알고 있던 실상은 서방언론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아니 주로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실이 아니던가?

 

책은 이외에도 미군의 폭격으로 지금도 남아 있는 불발탄과 집속탄으로 어린아이들과 힘없는 사람들이 계속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라오스를 통해 끊나지 않은 전쟁을 이야기 한다.

 

또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제2의 홀로코스트를 통해 이스라엘의 위선을 폭로한다.

 

아쉬움이 큰 버만민족동맹과 소수민족의 갈등, 아웅산수치의 버마의 속사정은 분열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를 종군기자라고 알고 있는 기자들의 실상과 허상을

낱낱히 밝히는 점이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우리가 종군기자란 말을 쓰는 것은 "1951년 한국전쟁 중 대구 피난지에서 기자들을 훈련시켜 전선에 파견하면서부터" 라고

그 어원을 밝히고 그 말의 오용을 지적한다. 전쟁도발자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기사로 쓰는 것은 언론의 본래 임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전쟁도발자들에게 부역하는 행위라 말한다.

 

이는 방송기자들은 '떡칠화장'에 온 신경을 다 쏟고, 신문기자들은 '신변잡기' 온 정열을 다 바치는 결과로 지금도 나타난다고

그 허상을 지적한다. 그 결과가 사람들은 종군기자가 전쟁보도랍시고 쏟아내는 잡담 같은 '감상문'을 통해

마치 영화 보듯 소설 읽듯 전쟁을 즐기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우려한다.

 

'전쟁과 언론은 필연적으로 적대관계"여야 하며 정치 없는 전쟁 취재는 자위행위일 뿐이라며 " 발사명령을 누가 왜

내렸는지를 취재하는 일이 소위 종군기자의 몫이라 여기게 되면 그 주범은 언제나 정치였고 그 정치는 전선에만

있지 아니하고 전 영역에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종군기자는 전선기자 또는 전쟁기자라고 불러야 하며, 이는 철저하게 전쟁도발자들의 정치행위가 갖는 의미까지도

파악하는 능력, 위험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으며, 무용담으로 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그것을 둘러싼 정치행위의 의미까지도 감당해야 하는 기자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사실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될때의 당혹감과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어 느끼는 새로움은 특히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어떤 기자이고 어떤 방송인지를 더불어서 파악하는 안목이 절실해짐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우리가 외신이랍시고 바라보는 것의 속살이 어떤것인지를

알게 되는 과정을 저자가 직접 몸으로 뛴 16년의 기록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분쟁지역의 실상을 날것 그대로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16년의 기록/정문태/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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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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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SBS와 대전방송의 역사스페셜 다큐멘터리인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를

책으로 펼쳐낸 것이 이 책 '대백제'다.

 

한마디로 백제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일본 열도와 중국 대륙까지 진출한 거대한 고대 국가였고,

동북아시아 최고의 선진 문물을 가진 문화강국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러한 백제의 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이유가 스스로의 무지와 무관심 때문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자책을 하면서

앞으로도 더욱 분발하려고 한다는 제작팀의 각오가 남다르게 표현된다.

 

우선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일본의 천황가와 기타 중요한 계급은 모두 백제의 왕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이루어낸 것이고

거기에서 신의 존재로까지 격상되었으며 지금도 이 전통은 남아있다.

 

정신적으로도 불국토를 꿈꾸었으며 지상에 미륵불 세상을 이루려 하였고, 이 정신은 역사 최조의 석탑등의

건설과 태안과 서산의 마애 삼존불등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백제는 당시 최강의 하이테크 국가로서 첨단 기술로 철을 창조하였고 이는 바로 최첨단 하이테크 기술을

백제가 보유하였던 증거이며 일본 국보인 칠지검도 바로 이 기술의 걸작품이었다. 또한 금속기술도 당시 최고의

기술이었으며 그 예술적 가치는 시대를 초월한다.

 

당시 백제의 음악과 의복은 일본 음악과 의복, 즉 패션의 원조이기에 지금의 표현으로 치자면

한류붐은 이미 1,500년전에 일본에서 있었다.

 

당시 백제는 우수한 항해술과 조선술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한 세계사적 해상 강국이었다.

 

이 내용만 보자면 그저 가슴이 벅차올라 그 기쁨에 눈물이 주르륵 하고 흘러내리고 온 몸에서 감동이 뿜어올라

손발이 저리기까지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의 의문이 드는것은 이렇게 위대하고 엄청나고 대단한 백제가 왜 그리 무너졌는지에 대한 것은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증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하나 나무랄데도 없이 문화와 기술, 정신과 예술이 당시 최고, 최대였다는 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하여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과 진실은 어떠해야 할까 등에 대한 것은 없고

오로지 '위대하고 찬란한 백제를 찬양하고 몰랐으면 지금이라도 알아서 찬양하라!!"와 같은

메세지는 읽는 내내 불편함이 따라 붙었다.

 

물론 몰랐던 역사적 사실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백제가 갖는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는

그 노력에 점수를 주지만 찬양일변도의 내용은 그 점수를 오히려 깍아먹는다는 점도

제작진이 확인했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책 내용대로라면 도저히 멸망할 수 없는 위대한 나라가 백제다. 그래서 제목도 '대백제'라고

한껏 위상을 치켜올린점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과거가 아무리 훌륭하엿고 찬란하였고 위대하였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그것은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금 해석해야 한다는 , 그래서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많이 부족한 점을 느낀다.

 

지금의 몽골사람들에게 징기스칸의 위대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그것은 과거의 일일뿐 지금의 몽고는

징기스칸이 다시 살아온다해도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는 어렵지 않은가.

 

지금 현재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연계하여 만들었으면 더 좋았던 책이다.

 

대백제/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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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워킹푸어 - 무엇이 우리를 일할수록 가난하게 만드는가
프레시안 엮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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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푸어란 말은 소위 식자층이 쓰는 말이다. 한국말로 옮겨도 근로빈곤층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즉,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말을 누구나 알기 쉽고 이해하기 좋은 말로 바꾸면 어떤 말이 될까. 아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열심히 일해도 하루하루 지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 하는 말은 따로 있을 거 같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여 구체적인 사람들을 여러 직업군에서 만나서 그들의 실상을

하나하나 낱낱이 파헤친 이 책은 어려운 이론이나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다만 구체적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 하나하나의 실상을 알아가다 보면 우리 주위에 아니 우리가 바로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방끈이 길어 더 비참한 직업인 비정규직 교수는 일년에 많아야 1000만원도 못버는 현실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고

그나마 6개월 마다 해고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생활을 살고 있다. 고급인력의 위기는 세계경제가 지식기반산업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의 '위험신호'라고 할 수 있다.

 

동일노동 차별임금의 두 얼굴인 금융 비정규직, 치열한 경쟁을 핑계로 헐값에 팔리는 노동을 하는

영화 스태프, 드라마 보조작가, 비정규직 학원코치등과 이외에 최저임금 노동자, 이주 노동자, 지방대생,

고졸 노동자, 농민, 여성노동자들이 있고 이에 덧붙여진 빈곤 아동과 빈곤 청소년, 빈곤 노인이 그들이다.

 

또한 집이 있어도 가난하고 집이 없어도 가난한 도시 중산층과 대자본에 잠식당하는 자영업자들이 있다.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현실을 알기 쉽게 해준다.

2008년 파견근로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1750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4.6퍼센트에 이른다.

 

연령이 젊을수록,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남성에 비해 여성이, 전일제 근로자에 비해 시간제 근로자나 임시직 근로자가

근로빈곤층이 될 확률이 높다. 이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나타나는 경향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가

급속하 확산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워킹푸어가 급증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주요국의 근로빈곤율을 살펴보면 미국(14.5%), 일본(12.3%), 한국(11.7%)이나

유럽국가들의 근로빈곤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스웨덴등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근로빈곤율은 5.0%로 가장 낮았고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5.9%수준에 그쳤다.

 

미국, 일본, 한국에서 워킹푸어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이유는 첫째 고용제도가 미국의 '파트타임', 일본의 '파견직',

한국의 '비정규직'등으로 임금이 낮고 안정적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이고 둘째는 너무나 낮은 사회복지 지출로

생활의 개선이 이루어 질수 없는 구조를 하고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국의 근로빈곤층문제만 따로 떼어내 살펴보면 그 이전의 어렵고 못살던 시대와 분명한 차별성이

존재한다.

 

첫째, 규모로서 총취업자의 11.6%로  이 수치도 도시근로자 가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1인가구와 농어촌 지역은 빠진 수치이다.

 

둘째, 증가속도다. 1997년 외환위기를 포함해 2003년 카드대란과 2008년 금융위기까지 워킹푸어의 숫자는 급증하고 있다.

 

셋째, 구성의 다양성이다. 노인, 장애인 , 여성가구주 등 전통적인 빈곤층 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워킹푸어를 구성하고 있다.

 

넷째, 갈수록 희박해지는 빈곤 탈출 가능성이다. 이전에는 교육을 통해 부의 대물림 현상이 상쇄되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교육으로 인해

부의 대물림 현상이 고착화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섯째, 사회적 박탈과 배제, 그리고 그 결과인 비가시화다. 박탈과 배제가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유령'이 된다.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고 정치, 언론 등 공론의 장에서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여섯째, 갈수록 커지는 '전염'에 대한 공포다. 고용에 대한 불안감은 실업과 빈곤에 대한 공포가 일상이 된다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현 경제질서가 유지되는 매우 강력한 힘이다.

 

책은 서두의 결론으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워킹푸어의 증가는 나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워킹푸어는 충분한 소비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국내 소비가 부진해지면 기업의 생산활동 역시 정체될 수 밖에 없다. 나라 경제 전체가 축소 균형화된다.

정부의 세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세금을 내는 것이 불가능한 계층이 증가한다면 정부의 재정은 더 악화된다.

결국 재정 재건을 위해 세수를 늘리려 한다면 그 부담은 부자들에게돌아갈 수 있다. 라고.

 

허나 이 정부는 오히려 부자감세를 통해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쓰면 그 영향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돌아간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

 

마른수건을 계속 짜도 물이 나온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결국 그 수건은 찢어지고 말텐데 말이다.

 

속된 말로 착취를 하던 빨아먹든 빨아먹을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공룡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쥐어짜면 결국 남는 것은

사회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것은 역사적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배층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거기에 빌붙어서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곡학아세와 교언영색을 일삼고 언론은 거기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그러니 책의 마지막 항목이 "그대들 , 모두 죽지 말고 살아남기를' 하는 것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낸다.

좋은 날이 올때 까지 살아남으시라. 아니면 그 전에 들고 일어나라고.

 

더물어 이 책은 우리들에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만의 세상에서 사는가 아닌가 하고 .

 

한국의 워킹푸어/프레시안 특별취재팀/책보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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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4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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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공리주의를 창시하였다는 제레미 밴담은 174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또한 파놉티콘(모두 본다라는 뜻)이라는 거대한 감옥건설을 주장하였다고 알고 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와 감옥건설이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책세상문고에서 나온 파놉티콘은 벤담의 파놉티곤의 원문과 더불어 해제의 상세함과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읽기가 수월하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부터 찾아나가보자.

 

또한 파놉티콘과 우리의 삶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자.

 

파놉티콘의 내용

 

먼저 본문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원래의 파놉티콘은 설계도면과 함께 실행방법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양이었으나 이 계획의 실현이

영국에서는 원활치 않아 당시 혁명이후인 프랑스의회에 원글의 논문을 요약정리한것이 우리에게

읽혀지는 것이다.

 

" 이 모델을 가지고 감옥을 건설하도록 해주십시요. 그리고 저를(벤담) 간수로 임명해주십시요.

이 논문을 읽으면 이 간수가 급여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그리고 국가가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파놉티콘은 일종의 사업계획서로 만들어진 프로젝트이다.

 

"만일 다수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파악할 수 잇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들을 에워쌀 수 있는 수단은 유용하고 효력있는, 이를테면 교육은 학생을 둘러싼 전체 환경의 결과물이고

그의 행동 전부를 관찰할 수 있다면, 그들이 어떤 사물들에 둘러싸이게 하는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서 우리가 원하는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그를 놓는 것이라고 한다면

유용하고 효력있는 수단은 사람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것입니다."

 

현재까지의 감옥은 쾨쾨하고 끔찍한 거주지이자 온갖 범죄의 학교이며 비참한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공간입니다.

감옥을 완전하게 개혁한다는 것은 죄수들이 바른 행동을 하도록 교화를 보장하고, 지금까지 신체적 정신적 타락으로

오염된 건강과 청결, 질서와 근면을 확고하게 하며,

비용을 감소시키면서도 공공의 안전을 견고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단한 건축아이디어로 이 모든 것을 이루려는것이

바로 이 논문의 목적입니다.

 

새로운 감시방식은 감각보다는 상상을 자극하며 그 감시 테두리 안에서 항상 어디든지 존재할 수 있는

단 한사람에게 수백명의 사람을 맡깁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관은 마치 유령처럼 군림합니다.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가 수행해야 하는 목적은 고통의 본보기를 통해 범죄 모방 불식, 수감기간 동안 수감자의 무례함 예방,

수감자 사이의 예의 유지, 수감자의 거주지 청결과 건강 관리, 탈옥 예방, 필요한 교육, 올바른 습관 형성,

부당한 대우에서 보호, 처벌의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복지 제공, 무엇보다 이러한 모든 것은

경제적인 방식으로, 성과지향적인 행정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위 목적을 위한 관리방식은 고통완화의 원칙, 엄격함의 원칙, 경제성의 원칙으로 운영되어야 하는데 모든 대상중에서

경제성의 원칙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합니다. 공공비용을 지출해서는 안되며 어떤 목적을 위해 가혹함이나 관대함을

이용해서도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운영은 사적관리을 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권력에 대한 애정은 잠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으나 금전적 관심은 잠을 자지 않습니다.

공적 정신은 새로움이 사라져 버리지만 금전적 이익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치열해지기 때무입니다.

 

좋음과 나쁨은 비교를 나타내는 상대적인 용어입니다. 나중에 손에 들어온 이익을 보고 나서야 칭찬할만 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택기준입니다. 결국 계약에 의한 사업자의 관리를 통해서만

이 계획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노동 때문에 감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해서는 안되며,규율의 엄격함과 굴욕적인 복장, 조잡한 음식과 자유의

박탈에서 두려움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작업은 고통이 아니라 수감자들의 위안과 쾌락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노동, 그것은 부유함의 아버지이며 가장 훌륭한 재산인데도 왜 저주로 묘사하려 하는가?

 

파놉티콘의 원리는 감시와 경제성을 연결해야 하는 거의 모든 시설에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즉 학교나 병영등 한 사람이 다수를 감독하는 일을 맡는 경우에 모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외 성별격리, 범죄등급과 무리별 격리, 노동에 관하여, 식사조절에 관하여, 의복에 관하여, 징벌에 관하여

청결함과 건강에 관하여 등등 감옥운영에 관한 벤담의 생각이 피력되어 있다.

 

한마디로 죄를 진 죄인을 효과적인 관리와 통제를 통해 경제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나아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을 개조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전체를 개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파놉티콘의 핵심주제이다.

 

벤담의 생애와 사상

 

1748년 런던에서 태어난 벤담은 소송 대리인인 아버지의 법관이 되길 희망한 아버지에 대하여 법 이론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법 이론 연구는 과학적이고 사리에 맞는, 즉 계산된 이익이 구체화되는 법체계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1789년 [사법과 도덕의 원리에 대한 서설]에서 법이 따라야 할 것으로서 과학적이고 계산된 '유용성'을 제시하였다.

 

유용성이란 어떤 행위가 행복 즉 계산 가능한 이익을 증진시키는 경향을 가질 때 옳은 행위이고 반대의 경우는

그른 행위라는 개념이다. 사회와 개개인의 모든 행위의 기준이 되는 원리로 제시하엿고 이의 구체화는

'고통과 거리 두기', '쾌락의 추구'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모든 입법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주장하였다.

 

유용성의 원리에 입각해 모든 처벌은 고통을 수반하는 악이므로 ' 더 큰 악을 배제할 가능성이 있는 한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공리주의 입장에서 처벌이 합리적일 수 있는 경우는 처벌이 범죄자를 교화하거나

그에게서 사회를 보호함으로써 더 이상의 범죄를 막고 다른 사람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벤담은 신체의 처벌에는 저항하였는데 그 이유는 " 이 처벌은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기는 커녕 분명한 손실이며

국가나 다수의 사람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버리는 것" 이기 때문이라고 하엿다.

 

결과적으로 사형제도를 반대하였다. 사형수는 노동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용성이 있음에도

사형은 그 유용성과 이익을 버리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벤담은 노동과 검소를 삶의 규칙으로 삼았다. 그는 접대와 여행을 싫어했고 칩거 생활과 고독을 높이 평가했으며

엄격하게 절제된 식단을 따랐다. 그는 '죽은 시간(불필요한 시간)'을 쫒아 보내려 하면서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은 계산되어 있다"고 말했다.

 

종교적 자선에 반대하고 모든 것을 경제 질서 하에 두려한 벤담은 노동가치설을 철저하게 따랐다.

1832년 84세의 나이로 죽은 벤담은 자신의 주검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기를 원했다. 친구들이 입회한 가운데

그의 시신은 해부되었고,골격을 재구성해 밀랍느로 만든 두상을 덧붙인 후 런던대학에서 공공게게 전시되어

오늘날에도 그를 볼 수 있다.

 

파놉티콘과 벤담 사상의 해설

 

그러면 이러한 내용과 벤담의 생과 사상을 훌륭한 해제의 설명을 통해 검토해보도록 하자.

 

파놉티콘은 감금시설에 대한 계획인데 벤담은 왜 감금시설을 구상한 것일까?

감금시설과 산업화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벤담들의 사상가와 건축가들은 왜 감옥 건축 계획을 수립했고, 당시

건축가들은 왜 그토록 최상의 감옥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가?

 

근대 감옥은 과거의 감옥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의 흐름에서 발명된 것이다.

감금자체가 처벌인 오늘날과 달리 근대 이전의 감옥은 재판과 형벌을 받기 위한 대기실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주의 질서에서는 생산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이나 처벌로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였다.

형벌의 완화는 구금형으로 인해 감옥에 사람이 넘쳐났고 감옥은 모든 악의 소굴이자 질병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다.

근대 감옥은 재사회화와 교화를 목적으로 하게 되엇고 이에 따라 많은 감옥이 필요하게 되었지만

국가는 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 이 원리는 다행스럽게도 학교나 병영, 즉 한 사람이 다수를 감독하는 일을 맡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70쪽)

즉 벤담에게 파놉티콘은 사회의 모든 것에 적용되어야 할 모델이고 이것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교정하고

생산이익과 완벽하게 결합하게 하는 당시의 사고가 집약된 건축물이다.

 

다시 벤담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만일 다수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들을 에워쌀 수 잇는 , 그들의 행동과 인적관계 , 생활환경 전체를 확인하고 그 어느 것도 우리의

감시에서 벗어나거나 의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수 잇는 수단이 있다면,

이것은 국가가 여러 주요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정말 유용하고 효력있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결국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을 다루려는 기획에서 등장한 가장 극명한

건축 장치가 바로 파놉티콘 계획이다. 오늘날에도 파놉티콘의 다양한 변종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학교와 병영이고 공장이다. 이세가지는 근대국가의 대표적인 집단으로 우리가 알고 있다.

결국 우리는 파놉티콘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 아닐까?

 

파놉티콘은 감옥 건축 계획이지만 벤담이 일생동안 연구하고 생각해 온 것, 즉 법률이나 구호제도, 경찰체계,

특히 교육과 노동, 경제제도를 현실에서 구체화 할 수 있는 표준모델이고 벤담은 파놉티콘을 통해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당대 사회를 완벽한 합리성, 즉 이익 또는 이윤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세계로 재배열하여 ,

마치 만유인력으로 우주를 재구성한 뉴톤처럼 자신의 신념에 따른 새로운 우주를 꿈꾸었던 유토피아 모델중 하나였다.

 

벤담의 사상은 공리주의로 통칭하는 바 인간의 행복이 산술적으로 계산 가능하다고 본 점이고

결국 인간이 모든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

 

또한 공리주의는 유용성에 매우 큰 가치를 부여하고 결과를 중심으로 판단하기에 과정을 무시하게 된다.

 

결국 벰담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노동과 이익을 위한

유용성이 중심이 되는 '완벽한 통제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GNP로 늘상 표현되는 우리 삶의 질에 대한

19683월 18일 캔사스 대학에서 로버트 케네디의 연설문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우리가 늘 경제성장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GNP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데

지금부터 42년전에 대통령후보가 GNP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하고 있다.



 

"우리 국민총생산은 한 해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 광고, 시체가 즐비한 고속도로를 치우는 구급차도 포함됩니다.
우리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됩니다.


 

미국삼나무 숲이 파괴되고, 무섭게 뻗은 울창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탄도 포함되고, 핵탄두와 도시 폭동 제압용 무장 경찰차량도 포함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총샌산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의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런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어떠신가?

 

우리는 결국 벤담이 주장한 파놉티콘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우리의 열정과 정의,올바름과 삶의 가치가 돈이 되지 않거나

유용하지 않으면 의미없다고 하는 세상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닐까?

 

벤담의 공리주의는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지배하고 있다. 파놉티콘의 감옥에서.

 

파놉티콘/제리미 벤담/책세상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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