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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ㅣ 밀레니엄 북스 99
한비자 지음, 김동휘 옮김 / 신원문화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1. 한비자는
주周 나라의 분열로 혼란을 맞은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秦에 의해 다시 통일을 이룬다. 흔히 말하는 춘추전국시대란 여러 제후국들이 공존하던 춘추 시대와 그 중 강자였던 일곱 나라(진, 한, 위, 조, 초, 연, 제)만이 살아 남아 경쟁하던 전국 시대를 합친 것이다. 그 중 한韓나라는 진晉이 조 한 위로 나누어진 곳으로, 특히 국력이 약했다고 한다. 그 한나라의 왕족 서자 출신으로 태어난 한비가 나라의 부흥을 위해 여러 가지로 연구한 끝에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 펼친 것이 바로 한비의 저서 "한비자"인 것이다. 한비자는 법과 원칙을 바탕으로 하여 훌륭한 임금이 되어 신하와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비록 가치관이 혼재하고 전쟁이 흔하던 시대의 이론이지만 지금의 시대에서도 기업, 정치, 사회 등 여러 분야 뿐 아니라 대인 관계에도 적용해볼만한 내용들이 다양하게 들어 있어 최근에 한비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원래의 한비자는 상당히 어려운 책이다. 고전이라고 하면 따분하고 지루한 내용과 특히 중국 고전의 경우 한자로 된 내용을 어떻게 풀이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므로 편하게 접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이 책은 고전 한비자에서 필요한 내용만을 간추리고 요약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특징이 있다. 마치 흔히 볼 수 있는 처세술에 관한 책이나 탈무드의 여러 가지 우화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때로는 깨달음을 얻으며 때로는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서 삶의 가치관을 배워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점에서, 중국 고전이라는 부담이나 어려움없이 한비자를 접하고 그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2. 내용
이 책은 모두 1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제별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고 성격도 조금씩 다르며 구성 방식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십과편에서는 전해져오는 일화를 통해 어떤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반면에, 그 다음의 고분편에서는 한비가 주장하려는 바를 명확히 전개한다. 설림상편 및 하편에서는 짧은 내용을 통해 의미있는 주제를 전달하려고 하기에 내용이 짧으면서도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군주(임금)가 지켜야할 사항들, 나라가 망할 징조(망징편), 조심하거나 따라야 할 내용들을 적절히 분류하여 정리했으므로, 책 전체로 볼 때 옳은 길을 따라 가며 나라(또는 기업)를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면서 그 반대로 해서는 안되거나 주의해야할 것들을 통해 반대 상황에 대한 예시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책에서는 역자의 짧은 평설을 통해 실제 각 주제별 내용이 어떤 논리나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설명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이나 교훈뿐 아니라 실제 한비가 각 내용을 통해 정확히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 했고 어떤 의도나 상황에서 그러한 글을 썼는지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예를 들어 고분편은 법과 술에 대한 가치관을 정리한 것으로, 왕이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어 측근과 상의하지만, 이는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 되어 잘못된 행동임을 이야기한다. 이런 고분편을 통해 한비가 한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울분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짧지만 한비의 재능을 잘 보여주는 의미있는 글이라고 하겠다.
세난편에서 진언의 어려움에 대해 적고 있다. 진언(상대방에게 어떤 주장을 펼치거나 전달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어 이쪽의 말을 그 마음에 맞게끔 하는데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대화를 해야 제대로 된 설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비는 설득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대화를 하는 방법을 이렇게 언급한다. "벼슬한 지 오래 되지도 않고 또 신임받고 있지도 않는데 있는 지식을 모조리 다 드러내 보이면 설사 자기가 말한 계획이 성공해서 공적을 올렸더라도 상을 받기가 어렵다. 더욱이 계획이 실패한다면 공연한 의심만을 받게 될 뿐 아니라, 말한 사람의 생명마저도 위태롭게 된다" 자신의 능력이 충분하다 해서 자신의 입지가 정확하지 않음에도 모든 것을 드러낼 경우 괜히 이용만 당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이처럼 세상에서는 말과 대화를 잘 풀어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 세난편은 대화의 방법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주는 셈이다. "상대에 따라 말하기"라는 부분에서 특히 유용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라"에서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할 때에는 옳은 말을 하면 금방 마음에 들어 더욱 가까이 하게 된다"고 한다. 즉 의견을 말하고 일깨워 주려거든 먼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안 다음에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하로서의 한비가 강자인 왕이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 쓴 내용들이라고 한다.
망징편은 나라가 망할 징조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 이는 꼭 한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기업을 운영하거나 정치적인 상황에서도 이 모든 내용은 적용해볼만하다. 특히 "기회를 주어라"는 부분에서는 흥미로운 내용을 적고 있다. "아무리 벌레가 속을 먹고 틈이 크게 벌어져 있더라도, 실제로 부러지고 넘어지려면 강풍을 맞는다든가 호우가 내린다든가 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망할 징조가 있는 것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실제로 망한 것은 아니니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 그 분위기를 오히려 역전시켜 충분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며 지도자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한다.
비내편의 "화는 사랑하는 자로부터"라는 부분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을 이야기한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사람은 사람들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데, 이는 전자가 착하고 후자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각자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그리하는 것이니, 임금이 주의해야할 것은 자신이 죽을 경우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른 부분을 살펴 간교한 무리들의 사욕을 억제할 수도 있다 하니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데 필요한 과정을 해결책을 곁들여 조언하는 셈이다. 역자는 이에 대해 "인간은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그 대책이 바로 법술이다"고 한다. 이는 유가의 덕치와는 대비되는 것으로 한비의 사상을 유가에서 이단시하는 이유라고 한다.
설림상편 및 하편은 일화를 통해 교훈을 주고 있다. 관포지교라는 잘 알려진 일화의 경우에도 "결국 관중 같은 위대한 인물도 포숙의 도움이 있어야만 한다"고 적고 있다. 내저설 상편 및 하편은 임금이 신하를 다루는 방법과 조심해야할 일들에 대해 칠술과 육미로 나누어 설명한다. 외저설 역시 예를 들어 주장을 펼치는 내용으로, 의미있는 내용들이 많다.
오두편은 원칙적인 한비의 가르침이 잘 정리된 내용이다. "성인이란 옛 것을 본따 한결같이 변함없는 기준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인이란 현재를 문제 삼아 그것의 해결을 꾀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시대에 따라 모든 것은 바뀐다"고 설명한다. 세상이 변함에 따라 그 현실에 맞게 다스리고 정치를 해가는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인의만으로는 교화할 수 없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인의에 겸해서 무력이나 상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지은 자에게는 용서 없이 벌을 주며, 상에는 명예가 따르고 벌에는 불명예가 따르도록 한다면 착한 사람이고 착하지 못한 사람이고 모두가 있는 힘을 다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리원칙없이 재주껏 부를 쌓고 지위에 오르는 식의 세태가 있다"며 현실을 비판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변론의 폐해"에서는, 언변이나 의론에만 집중하면 정작 실천과 행동은 뒤따르지 못해 발전이 없으므로 현명한 사람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오두편은 한비자 전체를 통털어 한비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도덕적이거나 인간적인 모습보다는 강력한 국가를 위해 지도자의 모습이 어때야 하고 이를 위해 신하와 어떤 관계를 가지며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백성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어떤 가치관과 기준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옳음을 의미있는 문장으로 주장하고 있다.
3. 이 책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원래의 고전 "한비자"는 중국 고전답게 상당히 길게 복잡한 내용으로 채워진 두꺼운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비자에서 필요한 내용들만을 요약하고 발췌하여 누구나 부담없이 한비자라는 고전 명저를 접하고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게다가 역자가 주제별로 의견을 더하여 한비자의 가치관을 설명해주는 점도 특징적이라 하겠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한비의 일생과 한비자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중국 역사를 잘 모르거나 심지어 열국지 정도라도 읽지 않았다면 후반부에 나오는 소개를 통해 대략적인 흐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참여했던 책 읽기 강의에서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전이 어렵다면 요약판을 통해 그 개념을 익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고전을 모두 읽고 이해하는 것은 시간으로나 난이도면에서도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이럴 때 꼭 필요한 것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한 책이라면,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딱 맞을 듯 하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원전 한비자를 접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이 책 "한비자"는 한비의 사상과 가치관을 이해하는데 길잡이가 되어줄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