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힘 1 -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이규태 지음 / 신원문화사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고 불황이 지속되어 인심이 흉흉한 시절이지만 최근들어 반가운 소식이 들리곤 했으니 바로 스포츠 분야에 진출한 선수들의 선전이 그것이다. 야구 월드컵이라고 하는 WBC에 진출한 선수들이 일본과 몇번을 겨루며 결승에서 만났던 날, 9회말 뒤지던 상황에서 점수를 내어 따라 잡았을 때, 가슴 속에는 타오르는 뜨거운 감동이 전해졌다. 비록 아쉽게 지고 말았지만 세계적인 경기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 우리 선수들의 노력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슴뭉클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때론 2002 월드컵을 치르고 나서 식어버린 우리네의 열광적인 모습을 "냄비근성"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IMF 외환 위기 때는 전국민이 나서서 금모으기를 하여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진풍경을 이뤄내기도 했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변화무쌍하고 순간적이면서도, 가슴 속에 진한 정을 품고 사는 민족. 그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조선일보사에서 오랫동안 글을 쓴 저자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00년대 초에 출간되었던 책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이 책 "한국인의 힘"은, 어렵고 힘든 시대를 맞아 절망적인 상황을 우리들의 본 모습과 참 마음을 통해 극복하고 발전시켜가자는 취지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도 하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의 본 모습을 이해한다면, 다시 한번 손을 쥐고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담아 전진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야 할 우리들의 자랑과 특징, 장점을 소개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쉽게 단정적으로 묘사하지 못한다. 생각과 행동, 말과 표현이 너무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우리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먼저 우리의 감정적인 면(정서)를 잠시 짚으며 이야기를 꺼낸다.

예를 들자면 우리에게는 "정"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영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정이란 것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고착된 것일까? 저자는 농경 사회를 중심으로 한 정착 사회가 지속되고 그 과정에서 집단적 거주 문화가 자리하면서 정이란 것이 타 민족에 비해 훨씬 중요한 것으로 자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론적 설명을 떠나, 정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단어이자 우리의 근원적 정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힘이로 실체를 이루는 요소라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계산을 정확히 하고 자기 중심적인 개인 주의를 지향하고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비해 우리는 인간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모습이 많다. 예를 들어 손님을 초대하여 파티를 한다면, 외국인들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대접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마실 것을 대접하여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로 맞는다. 돈을 지불할 때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봉투에 넣어 주지만 외국인들은 있는 그대로 사용하고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점은 우리에게만 독특한 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고대로부터 거울이나 칼, 다양한 물건 등을 이용해서 약속을 정하는 전통이 이어져 오면서, 법과 계약이 중요한 지금의 시대에도 법적인 계약서의 효력보다는 상대방과의 신뢰를 더 중시하는 맹점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에게는 재물을 탐하지 않는 선비 정신이 있었다. 조선 세조 때, 재상인 이승소가 가까운 이웃을 모른 척 하며 사는 것을 보고 세조 역시 재물을 탐하는 신하에게 "신이 누구더라?"고 물으며 거리를 두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고위직 공무원들의 기본 재산이 수십억을 넘는 지금의 시대에는 다소 맞지 않는 면도 있겠지만, 물질주의에 빠져 선비 정신을 팽개치고 눈 앞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이들에겐 분명 따끔한 교훈이 아닐까 싶다.

시간에 대해서는 어떨까? 외국인들의 눈에 항상 "빨리빨리"로 비춰지는 우리의 모습은 삶이 바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지리적 위치가 대륙과 바다를 잇는 길목이기에 이 길목 문화로서 과도 의식에 사로 잡혀 시간에 관한 개념이 짧아지고 삶이 각박하여 생존이 바쁘고 급해지면서 다음을 생각하기 어려운 근시안적이고 서두르는 모습이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은, 단지 바쁘게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변명하기 보다는 역사적으로 자리한 행동에 대해 은근한 서글픔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물론, 여기에도 단점이 있다. 시간의 가치를 판단할 때 시간의 절대적 가치를 무시하고 인간적인 면과 일을 중심으로 따지다 보니 오늘날의 서구적인 시간 관념이 필요한 사회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라고만 하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문제로, 저자는 이에 대해 일 중심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발전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싣고 있다.

직장 생활에 관해서라면 집단 의식을 빼놓을 수 없다. 담당자가 아닌 경우에는 나몰라라 하는 외국의 문화와 달리 우리는 동료가 처리해야할 일에 대해서도 회사를 또는 집단을 대신해서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 도의적 책임과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것이 더 인간적이고 발전적인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집단 의식이 사회적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미덕으로 남아 있기에 지금의 우리 사회가 현재의 구조를 지탱하며 발전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저자의 세번째 이야기는 명예에 대한 글이다. 팽형이란 것이 있다. 죄인을 뜨거운 물에 삶아서 죽이는 벌인데, 실제로 이것을 집행하지는 않고 미지근한 물에 얼굴을 넣어 시늉만 냈다고 한다. 그러나 죄인은 마치 죽은 것처럼 가족들에게 인계되어 죽을 떄까지 외부인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살았다고 하니, 명예를 중시하는 우리에게 있어 이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또한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끝까지 밝히려고 하는 외국인들과 달리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억울함을 알리는 우리의 모습은 명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가져온 비극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항상 자기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모습이라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보여주려는, 오해받기 쉬운 마음,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손님으로 오는 이에게 항상 따뜻하고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모습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의 따뜻한 전통이자 마음이라고 하겠다.

저자가 전하려는 말은 후반부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의 무한한 잠재의식"이라는 제목의 5장에서는, 한국인의 다양한 장점을 보여준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우리는 일본이나 서양과는 다른 자연 친화적인 민족이고, 여성들에게 선택권과 기회를 부여하는 것 역시, 비록 가부장적 모습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서양에 비해서는 훨씬 더 평등한 인간 관계이며, 원칙적이고 기계적이기 보다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경영하는 모습이 진정 잠재력을 발휘하여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류 의식에 젖은 우리들이 가끔 그로 인해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동류 의식에 대한 우리 자신을 비웃기 보다는 그만큼 끈끈한 정으로 뭉친 우리들의 모습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한국인이 위대하다거나 한국인이 문제가 있다거나 어떤 점이 좋고 나쁘다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알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우리의 본질을 짚어봄으로써 장점을 발전시키고 단점을 보완하여 시대에 맞는 한국인의 힘으로 승화시키자는 것이 저자의 의도일 것이다. 한 세대를 앞서 간 분의 의미있는 교훈들을 되짚어 보며 내일을 준비하는 자세로 새로운 모습의 우리들을 만들어가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저자 소개
http://people.naver.com/DetailView.nhn?frompage=nx_people&id=29368

저서 목록
http://book.naver.com/search/book_search.php?sc=3&srchlogic=&squery=%C0%CC%B1%D4%C5%C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