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전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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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금발을 휘날리는 멋진 영웅으로 다가온 브래드 피트의 모습이 한층 더 빛을 발한 영화 "트로이"는 영웅 아킬레스(아킬레우스)로 분한 그의 영웅담 뿐 아니라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에릭 바나)와의 박진감 넘치는 결투 장면은 물론이고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다이앤 크루거)의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반지의 제왕에서 보여준 강렬한 인상과 달리 나약한 소년의 모습을 보여준 올랜드 블룸의 파리스에 이르기까지 여러 배우들과 그들이 맡은 주인공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아킬레스건이라는 용어가 실은 아킬레스의 약점에서 시작된 것임을 이해한다면, 트로이는 단순한 한 편의 흥미로운 전쟁 영화가 아니라 유럽 문학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칭송받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일리아드)"를 바탕으로 하는 고전임을 알 수 있다.

고전은 오래된 작품을 가리킨다.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찰스디킨스,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은 물론이고 파스칼의 팡세, 몽테뉴의 수상록, 플라톤의 국가론,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등, 유사 이래로 인간이 쓴 모든 작품은 그 분야를 떠나 고전인 셈이다. 흔히 고전을 읽는다고 하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고전문학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은 고전이라는 말에는 문학작품 외에도 과거의 철학과 역사 등 모든 것을 배우고 이해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이고 현재를 통해 미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고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가치관은 실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것을 그대로 이어가거나 새롭게 바꾸어가는 과정의 산물이기에 고전을 통한 깨달음을 무심코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이다.

얼마전에 참석한 독서 강의에서, 표정훈님은 고전을 꼭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고전은 가급적 읽되 난해하고 깊이있는 내용을 모두 읽을 필요는 없고, 대신에 간단하게 요약된 작품들을 골라서 읽는 것은 유용하다는 조언을 주기도 하셨다.(참고 http://blog.naver.com/lupin2/70037376290) 많은 이들이 고전의 필요성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책 "왜 고전을 읽는가"의 저자 이탈로 칼비노는 머리말에서 고전의 가치에 대해 여러 개의 명제를 정의하며, 다음과 같이 간단히 결론짓고 있다. "고전이 무언가에 유용하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낫기 때문인데, 이를 비유하자면 소크라테스에게 독약을 앞에 두고 왜 음악을 연주하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음악 한 소절은 배우지 않는가라고." 고전은, 필요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있음을 칼비노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2. 소개

이탈로 칼비노가 생전에 다양한 작품에 대해 평가하고 해설한 내용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펴낸 이 책 "왜 고전을 읽는가"는, 사실 "고전"이라는 의미를 이해하는데만 해도 상당한 수준의 이해력이 필요한,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일반적으로 고전문학 정도만 가볍게 스쳐 지나는 것이 대중들의 기호라면, 이 책에서는 저 먼 기원전의 호메로스부터 찰스디킨스나 톨스토이, 헤밍웨이와 같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의 특징적 작품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특히 문학 작품 외에 인문학 분야의 다양한 책들에 대해서도 다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강유원님의 강의 중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책과 학문의 분야가 세밀하게 분류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 아니며, 고전이랄 수 있는 작품들을 쓴 작가들은 어떤 분야를 정확하게 나누지 않고 그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담았다"는 것이다. (참고 http://blog.naver.com/lupin2/70037654621) 이 책에서 다루는 고전들 역시 특별한 분류가 필요하지 않고, 이탈로 칼비노가 나름대로 선별하고 관심을 가졌던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소개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배경과 영향 등에 대해 연관적으로 짚어가는 점은, 고전을 읽기에 앞서 의미를 이해하고 준비하는 "입문서"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다음 링크로 미룬다.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where=nexearch&query=%BF%D6+%B0%ED%C0%FC%C0%BB+%C0%D0%B4%C2%B0%A1

3. 요약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칼비노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주제로 하는 이 서사시에 대해 귀환 이야기의 전통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경우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시각적 세밀함과 행위 묘사, 그가 이끌었던 군대가 누렸던 지위를 결코 신비화하거나 이상화하지 않는 윤리적인 측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 이 정도로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결코 이 책의 내용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어떤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신과 인간들의 인접성을 이야기하는데, "우주 안의 공간은 크기와 성질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여러 형태로 빽빡이 들어차 있고 시간의 흐름은 끝없이 증식하는 이야기들과 이야기들의 순환으로 가득차 있음을 말하고 있다"며, 신과 인간과 자연을 위계적인 질서로 나누어 보지 않고 서로 연결된 정밀한 체계로 해석한다. 서사시 안의 모든 이야기들과 다양한 의미들을 단순히 받아들임으로써 ... 어느 한편의 의도에 끌려가지 않고 잘 알려진 신을 비롯해 알려지지 않은 신까지도 두루 아우르는 다양성을 살릴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또한 작품에 대해 속도감이 넘치는 서사시라고 평가했으며 계속되는 운율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시각적인 자극을 전달하며 동사가 현재형으로 쓰여 눈앞에서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결국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부분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설명을 하는 식이다. 사실, 칼비노가 다양한 작품에 부여하는 설명과 의미를 우리가 다시 읽고 이 책 자체를 정리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고전을 읽고 해석한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읽으면 되니까 말이다. 작품을 읽고 이해하고 느끼고 반복해서 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 난해하지만 계속해서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플리니우스의 자연사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러나 사실 확인을 거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인용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시대의 백과사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려면 이 책을 권한다는 것이 칼비노의 말이다. 작가가 왜 사실 확인이 아닌 다른 곳의 내용을 인용했는지에 대해, 칼비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가 모든 영역에 대해 인간이 닿을 수 있는 한계를 기록한 이유는, 인간 존재가 살아 있는 세계의 영역을 형성하기에, 조심스럽게 경계를 그려봄으로써 규정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세계라는 것을 정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플리니우스는 동물, 식물, 광물 뿐 아니라 천체와 지구의 영역들에 집중했는데, 죽음을 이겨낼 수 없는 영혼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오직 현재에만 살아 있음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세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형성하는 사물에 대해 기록하여 인간 중심의 기록을 한 것이다. 제목을 하늘, 인간 코끼리로 정한 것은 이 책에서 가장 철학적인 2, 7권 외에 8권 동물학에서 자연에 대한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칼비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고전을 통해 과거 사람들의 지식을 확인해보고 인간 중심의 현실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라는 권유인 셈이다.

네자미의 일곱공주는 어떤가. 중세 페르시아의 고전으로, 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기록과 고대 동방에서 수집한 이야기에서 발생하여 천일야화로 완성된 소설적 전통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는데, 화려한 언어와 은유법에 주목할 만하다고 평하고 있다.

티랑 로 블랑은 중세 기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무용담으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전 기사의 로망을 읽어야 한다는 제안으로시작하고 있다. 이 글은 잘 알려진 돈키호테와 관련하여 기사 로망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기사 로망은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하다가 스페인을 무대로 하여 부활한다는 역사적 사실도 다루고 있다.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천년의 시대는 소설의 시대였고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기사 로망이 최초의 대중서라는 사실도 언급하고 있다.

고전이 어려운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다. 낯선 것은 개념의 문제로,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시 많은 책을 보고 이해하는 수 밖에 없다.

광란의 오를란도는 엄격한 규칙없이 진행되는 서사시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 줄로 말할 수 있는 것을 여러 연으로 늘려 말하기도 하고, 길게 서술할 수 있는 것을 단 한 줄의 시구로 말하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써 나간다."고 평가했다.

아리오스토의 명시선에서는 아리오스토가 영어 지명을 대상으로 언어의 유희로 즐겨 취했으며, 이탈리아 문학에서 영어를 즐겨 쓴 최초의 문인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역동적인 움직임에 대한 욕구를 복잡한 은유를 통해 드러냈다"며, 칼비노는 사건, 성적인 표현, 폭력적 묘사 등 다양한 내용을 예를 통해 소개한다. 서사시의 경우 원문의 운율에 맞춰 소개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번역본에서 이를 모두 살펴볼 수 없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지롤라모 카르다노 편에서는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읽고 있던 책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아마도 "위안"이라는, 잠과 죽음에 관한 주제를 다룬 책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잠에 대해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과 죽음에 대해 서술한 작가는 특이한 성격의 사람으로, 자서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데, 예술 분야를 제외하고 20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고 한다. 이렇게 독특한 사람의 저술을 다양하게 읽는 것이 바로 고전의 묘미라는 것을 간접 설명하는 셈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갈릴레오는 어떨까? 갈릴레오는 "자연은 책이고 우주는 책이다 그 책 속에서 만물은 체계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했으며, 자연에 관한 이론이면서도 철학적인 이야기를 펼쳐간다. 이러한 기본 개념 속에서 갈릴레오의 대화라는 책과 그 밖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시라노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과학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구에 부딪힌 태양빛은 지구를 회전시킨다. 지구의 운동은 태양에 의해 덥혀진 지구 자체가 뿜어내는 증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뿜어낸 증기는 극지방의 냉기와 만나 다시 지표면으로 돌아가거나, 비스듬한 방향으로만 지구와 부딪히기 때문에 지구가 도는 것이다"라고 한다. 달에 가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고전이 다른 작품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했기에 칼비노의 글에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로빈슨크루소는 섬에 고립된 사람의 이야기에 대한 고전이다. 칼비노는 본문에서 작가인 디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디포가 세밀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글을 잘 썼다고 평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을 잘 이해하는 것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어볼만하다. 결론에서는, 식인종의 풍습이 전쟁 포로를 사형시키는 기독교인들보다 낫고 살인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며 몽네튜와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처럼 고전에서는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거나 다른 작품에 영향을 준 요인을 찾아가며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진정한 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칼비노는 이런 식으로 스탕달, 찰스디킨스, 톨스토이, 그리고 헤밍웨이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의 고전에 대해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 책, "왜 고전을 읽는가"는 원래 이렇게 의도된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쓴 글을 하나로 묶어 정리한 것이기에 책의 제목에 크게 의미를 두기 보다는 칼비노가 각각의 고전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평가하고 분석한 것을 읽고 이해하는데 초점을 두고 읽으면 된다. 물론 내용이 어렵다면 편하게 글을 읽는 기분으로 한번 읽고, 기회가 될 때 한번 더 읽어가는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4. 평가

아쉽게도 이 책에서 소개되는 고전들 중에는 국내에 없는 작품들도 있다. 이는 역자인 이소연님의 후기에도 언급된다. 역자의 후기를 읽어보면 이 책을 선택한 동기와 번역 과정에서의 어려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고전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칼비노의 딱딱하고 개념적인 문체만큼이나 역자의 어려운 표현도 상당히 난해함을 더하고 있어 아쉬움을 준다.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유명한 안정효님은 자신의 글에서 "읽기 쉽게 쓴 글이 가장 좋다"고 했고,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는 최초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서" 쓰는 것만이 진정한 번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비록 역자의 노력이 충분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음에도, 그 노력이 어려운 한자어와 개념적 단어의 채택으로 인해 빛을 잃은 듯 하여 아쉬움을 더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그러나 구어체는 그가 작품 안에 설정한 여러 언어의 층위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단지 흐릿하지만 끊임없이 제기되는 내적 필요성에 의해 천착하게 된 모호한 분야", "그의 라틴어가 말하자면 어두운 유리를 통해 글을 읽도록 만들기 때문이다"와 같은 표현이다. 말은 되지만 뜻을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정도가 심하여 잘 새겨듣고 이해하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표현들이 많음은, 한자어를 남용하는 우리 말의 태생적 한계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칼비노의 표현 자체가 모호하고 어렵게 들리기도 하겠으나,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좀 더 쉽게 풀어서 정리했다면 본문의 난해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을 남긴다. 그렇다 해도, 칼비노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 고전의 사상과 개념을 문장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 역자가 이를 소개하고자 애쓴 노력에 대해서는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고전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고 상식적인 선의 고전도 읽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먼저, 앞서 이야기한대로 방대한 고전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간단한 맛보기 형태로 요약되고 정리된 칼비노의 글을 통해 여러 작품의 개념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고전이 어렵고 난해한 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 그 자체로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두번째로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들의 다양한 작품에 대한 소개다. 비록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도 있다지만,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고전의 작가와 작품을 엿보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러한 작품의 완벽한 이해를 꿈꾸며 새로운 탐독에 빠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책이 칼비노의 이름을 통해 추구하고 있는 독자에 대한 작은 소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렵고 난해한 부분을 극복하면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어떤 목적을 가지는 일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대로 가볍게 읽으며 다음에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여운을 남기는 것도 나름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한다. 고전에 대한 입문서로 가까이에 두고 칼비노의 관점에서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했는지 살펴보며 가끔 고전에 심취하기 위한 일종의 향신료처럼 쓰일 수 있다면 글쓴이(칼비노)와 역자의 노력이 한층 빛을 낼 수 있지는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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