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될 테야』는 홍일표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첫’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빛나는 발견과 노련함이 느껴진다. 찾아보니 30년 동안 여러 편의 시집을 낸 베테랑 시인이다. 제목만 보고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떠올랐다. 엄마에게 화를 낸 맥스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모험을 떠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출간 당시 말썽쟁이 어린이의 반항이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고 한다. 표제작 「괴물이 될 테야」는 “보름달 가면을 쓴 얼굴 하얀 괴물”이 되기를 바라며 “엄마 없는 무서운 밤도/ 햇볕 안 드는 지하방도 꿀꺽” 삼켜버리겠다는 어린이의 다짐을 담고 있다. “학교 가기 싫은 날/ 학교도 먹어 버릴지 몰라”라는 고백이 귀엽고 당돌하다. “아빠가 올 때까지/ 저무는 해를 안고/ 나는 혼자 어두워진다/ 나는 혼자 컴컴해진다(「저녁이 싫어요」)”거나 “나만 아는 비밀(「엄마 생각」)”을 가진 어린이도 괴물이 되면 좋겠다. 지팡이로 땅을 진찰하듯 걷는 눈이 어두운 할머니(「지팡이」), 재봉틀처럼 바다를 꿰매는 통통배(「지팡이」) 등 익숙한 대상을 다르게 보도록 안내하는 재미있는 상상력에 새삼 감탄하다가, “산초나무와 싸리나무 사이에/ 두 마음이 오가는/ 은구슬 반짝이는 출렁다리(「거미줄」)”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빗물을 받쳐 든 ‘땅바닥(「소나기 지나간 날」)’과 쓰러지지 않으려고 서로가 서로를 받쳐 주는 ‘청보리(「봄」)’는 또 어떤가.어른들이 마음을 몰라줘서 “도깨비 뿔을 단 해”를 그리거나(「내 마음」)과 동생만 좋아하는 엄마가 야속해 뒹구는 깡통을 걷어차는 아이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 내 아이의, 혹은 먼 옛날 나의 자화상이 아닐까. 동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건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오리나무(「오리나무」)”에게 안부를 묻는 것 같은 시인의 다정한 목소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진심을 다해 전달하는 49편의 동시. 『괴물이 될 테야』를 아껴 읽게 될 것 같다.
그림책 『오리는 책만 보고』가 귀여운 보드북으로 나왔다. 보드북은 책을 물고 빨기 좋아하는 유아들을 위한 책이라 그전보다 크기가 작아지고 재질은 더욱 단단해졌다. 책 읽기 딱 좋은 날 배고픈 악어가 따라오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책만 보는 노란 오리 한 마리가 있다. 도대체 무슨 책이기에 그렇게 푹 빠진 걸까. 스르륵 오리를 등에 태운 악어는 고놈 맛있겠다며 신이 났다. 하지만 오리는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른 채 그저 책 읽기에 심취해 있다. 말벌을 피하려던 악어가 이리저리 몸을 뒤틀고 급기야 다른 악어들까지 몰려와 오리를 잡아먹기 위해 싸움이 벌어지는데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책만 보는 게 재밌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면 평범한 일상도 마법처럼 아름답고 특별해질 것이다. 책을 놀이감처럼 접하게 될 유아들도 이 그림책을 보며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이 재미있어서 꽉꽉꽉 웃는 오리처럼, 오리를 잡아먹으려다 책 읽기에 풍덩 빠진 악어처럼.
조해진 작가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가 넷플릭스 영화로 공개되면서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창비에서 리커버된 책이 나왔는데 전보다 훨씬 산뜻해졌다. 표지에 그려진 로기완의 얼굴이 주연 배우인 송중기를 닮았다. 소설은 시사 주간지에서 한 탈북인의 인터뷰를 보다가 어떤 문장에 이끌려 벨기에 브뤼셀 행을 결심한 ‘나’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뒷부분에서 밝혀지는 이 문장은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살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으로 절망에 빠진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나’는 로의 일기를 읽으며 그가 머물렀던 거리와 공간의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그의 감정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쓴다. ‘나’는 로를 만나러 가는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행위가 스스로를 치유한 것이다. 독자 역시 로가 시시각각 느꼈을 절박한 생존의 욕구, 고통과 슬픔 등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물론 타인에 대해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삶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해진 작가는 새로 쓴 작가의 말에서 ‘알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다시 우리가 최선을 다해 공감해야 하는 것의 전제’가 될 거라고 말한다. 나의 삶과 무관한 타인의 삶. 지금 이 시간에도 유령처럼 떠돌고 있을 수많은 로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나. 소설을 읽으면서 로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낀 것이 부끄러웠다. 아마 책을 덮으면 또 다시 잊고 말 것이기에 더더욱. 조해진 작가가 그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빛의 호위’가 될 따뜻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말숙이네 문간방에 사는 영규는 어느 날 신문 배달을 하다 수상한 사내들이 누군가를 납치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사건 현장에 떨어져 있던 ‘자유당’ 완장이 유일한 증거. 선거를 앞둔 때라 어른들은 잡혀간 사람을 걱정하면서도 어쩐지 쉬쉬하는 분위기다. 납치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영규는 주인집 딸 말숙, 홍철과 ‘하나마나 탐정단’을 결성한다. 납치되었던 사람이 탱자나무 집 정태 형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4.19 혁명을 향해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가 서사의 몰입을 더한다. 특히 3.15 부정 선거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목이 주목된다. 반공 청년단을 비롯한 정치 깡패들이 사람들을 윽박질러 부정 선거를 부추기거나, 사전 투표에 반발하는 민주당 선거 참관인들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끌려 나가는 모습이 영규와 홍철의 시선에서 거침없이 그려진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을 비겁하다고 말한다. p.47어른들은 왜 정치 싸움을 할까. 국민이 잘 살도록 머리 맞대고 얘기를 나눠도 시원치 않을 판에 싸움질이나 하고. 그리고 자유당과 대통령은 왜 욕심을 부릴까. 학교에서 욕심이 지나치면 화가 된다는 것을 안 배웠나? 자유당의 부정 선거를 고발하는 기사가 신문 1면을 장식하고 마산에서 실종된 김주열의 시신이 바다 위에 떠오르자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다. 마침내 1960년 4월 19일 전국에서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거리로 나선다. 그 역사적 현장에는 홍철과 영규 같은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홍철이 총에 맞고 쓰러지자 경무대 앞에 나서서 공권력의 부당함을 외치는 영규가 안타까웠다. 이 책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말숙이 할머니다. 한국 전쟁 때 인민군에게 가족을 잃은 말숙이 할머니는 자유당 열혈 지지자이며 시위하는 학생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지만 김주열 사건을 알고 난 뒤 조금씩 변화한다. 경찰인 아들에게 학생들이 다치지 않게 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급기야 할머니 시위대를 조직하기까지 한다. 할머니라고 얕보지 말라고, 우리는 일제 때 3.1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이에게 만약 우리가 1960년 4월 19일로 가게 된다면 혁명에 참여할 것인지 물었다. 아이는 계엄군 탱크도 무섭고 죽을 수도 있으니 집에 있겠다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나갈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사람들이 총에 맞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부리나케 도망갈지도 모르겠다. 그날 거리에 선 사람들은 초인이 아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깨어 있는 민주 시민의 단합된 힘. 2024년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힘일지 모른다.
죽음을 앞둔 코끼리가 있다. 좋아하는 체리 하나 잡아챌 힘도 남아있지 않은 코끼리 앞에 어디선가 코요테 한 마리가 나타난다. 코끼리는 코요테의 존재가 반갑지 않다. 어떤 목적으로 주변을 맴도는지 뻔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반기지 않는 코끼리에게 코요테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코끼리가 코끼리답게 산 것처럼 자신은 코요테답게 사는 것뿐이라고. 죽음은 두렵다. 나의 죽음도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도 상상할 수 없다. 슬픔을 겁내서 덜 사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코끼리 역시 곧 삶이 끝난다는 생각에 몹시 슬퍼한다. 하지만 코요테의 생각은 다르다. 이 세상에 ‘끝’이란 없으며 모든 생명은 순환한다는 것을 차분히 들려준다. 코끼리를 위로하기 위한 어쭙잖은 개똥철학이 아니라 그동안 세상을 떠돌며 보고 경험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다. 자신을 놀린다고 화를 내던 코끼리도 어느새 코요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비밀로 가득하고 죽고 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코끼리는 마침내 덤덤히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코끼리가 죽기 전 코요테를 만나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슬픔에 몸부림쳤을지 모른다. 김상욱 교수의 책 『떨림과 울림』을 보면 우주에서 죽음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모든 생명은 원자로 돌아가게 된다는 대목이 나온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원자는 영원불멸하니 지나치게 슬퍼할 이유가 없다. 그림책에서 말하는 ‘비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나답게’ 채워가며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