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그라피아 - 위대한 작가들의 창조적 열병
앨리스 플래허티 지음, 박영원 옮김 / 휘슬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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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쩌면 나와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 심지어 내 머릿속과 꿈속 일들까지도 깔끔하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앞 여백에 쓰여 있는 내 조각글이다.

 김정운의 책을 읽고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생각나서 책을 펼쳐보니 온통 책갈피 표시 띠지가 빽빽하게 붙여져 있다.

 

책 시작 전에

"창조적인 작가란 다름 아닌 글쓰기에 문제를 겪는 사람이다. -롤랑바르트르"

라는 한줄 글이 쓰여 있다. 그리고 서문 '창작과 정신병, 그 치명적 만남에 대하여"에서 작가는 쓰고 있다.

"글쓰기는 인간이 이룩한 가장 뛰어난 업적이다."

"글은 우리로 하여금 특이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나는 지치도록 글을 쓰는 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위로가 되었다. 서문의 꼭지글 '한밤중에 걸리는 신성한 질병, 하이퍼그라피아'에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사하도록 만드는 힘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두뇌이기도 하다. 다빈치의 정교한 손동작에서부터 아름다운 대상을 바라보는 인지능력에 이르기까지 두뇌의 많은 부분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 중에서도 미적 표현에 대한 심리적 욕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가 있다.

 그 첫 번째가 귀 뒤쪽에 위치한 한 쌍의 측두엽이다...창조적인 글쓰기와 놀랄 정도로 큰 연관성을 가진 두 번째 뇌 부위는 변연계이다...측두엽과 면연계는 문학이 아닌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미적 욕구의 밑바탕이 된다...

 글쓰기에 대한 나의 정열과 함께 이 책에는 의사라는 내 직업적 특성도 반영되어 있다. 나 자신이 하이퍼그라피아를 직접 겪었고 그 경험은 내 환자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하이퍼그라피아는 질병인 동시에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경험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라고 밝히고 있다.

 글쓰기를 멈출 수 없거나 나처럼 지칠줄 모르고 글을 쓰는 이들에게 탐독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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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김익록 엮음 / 시골생활(도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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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살림에서 있었던 <무위당 생명학교> 4기 강의를 빠지지 않고 다닌 상으로 받은 책이다. 이철수 목판화가의 책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무위당 장일순을 아시나요?"

 모른다. 오래 전에 어떤 책에서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자료 정도로 알고 있었던 이름이다. 이철수의 판화를 좋아해서 해마다 달력을 사기도 하고, 그의 책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를 아무 쪽이나 펼쳐 읽어보며 수첩에 옮겨 써 보기도 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스승으로 여겼다고 한다.

 머리말이 시작되기 전 표지를 열면 나오는 쪽에 쓰인 글귀는 아, 가슴을 짓누른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달이 나이고 해가 나이거늘 분명 그대는 나일세"

 

 책은 무위당 장일순의 시 같은 짧은 글과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그 중에 따로 메모해둔 글귀들이다.

 

 "눈물 겨운 아픔은 선생이 되게 하라."

 "이름 없이 일을 해야 한다 / 돼지가 살이 찌면 빨리 죽고 /사람이 이름이 나면 쉽게 망가진다."

 "집착에 빠지는 것은 잠자고 있는 것이다 /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일상의 삶이 곧 도(道)다. 지극한 정성으로 바치는 마음이 되어 밥 먹고 똥 싸야 한다."

 "기(氣)의 성숙을 기다려야 한다 / 아침 저녁으로 / 잠을 자고 깨어난 뒤 / 또 자기 전에 / 일체에 감사하는 배례(拜禮)를 바쳐야 한다 / 그러면 기가 다 모인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 아, 수행하라는가 보다 생각하고/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게 좋아요 / 그것이 바닥을 기어서 천리를 가는 것입니다"

 

 "해월 선생이 일찍이 말씀하셨어요 / 밥 한그릇을 알게 되면 / 세상만사를 다 알게 된다고 / 밥 한그릇이 만들어지려면 / 거기에 온 우주가 참여해야 한다고."

 

하고 밝힌 글에서 한자로 써놓은 글귀는 한자를 따라 써서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나 뿐만 아니라 읽는 누구라고 한 번쯤 생각를 해보도록.

 

一碗之食含天地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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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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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7월에 구입한 책이다.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구입해놓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작가 김연수가 옮기고 책 뒤편에 해설을 썼다.

 모두 15편의 소설이 들어있다.  <깃털>에서는 공작과 함께 사는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공작과 함께 사는 모습이라니, 상상조차되지 않는다. 그 집 티비 위에는 치아교정받을 때 만든 치형이 올려져 있는데, 그걸 보고 두쌍의 부부가 이야기를 나눈다. 거실 티비 위에 올려진 치형을 실제로 본다고 생각하면 섬뜩할 것 같다.

 <칸막이 객실>에서 주인공 마이어스는 팔 년 만에 만나는 아들을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이혼하기 전 부부의 싸움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달려들자 마이어스는 아이의 목을 졸랐고,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마이어스의 등과 콩팥 부위를 주먹으로 때렸다. 그렇게 헤어진 뒤 단 한번의 전화도 엽서도 없었던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아들을 만나기로 한 역에 내리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아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인 값비싼 시계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이 아이가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그는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기차 객차를 분리시키는 바람에 그가 앉은 자리를 못찾게 되면서 가방까지 잃어버린다. 뒤엉켜버린 여행, 뒤바뀐 기차...그제서야 며칠 동안 자지 못한 잠속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소설 중에서 글을 읽고 생각하게 만든 소설은 마지막 글인 <대성당>이었다. 주인공의 부부에게 아내가 젊었을 때 알던 한 맹인이 찾아온다. 주인공은 평생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맹인을 대하는 일에 당황해하고, 티비에 나오는 대성당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맹인한테 묻는다.

 

 "대성당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생긴 건지 아시느냐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누가 대성당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지 개념이 잡히느냐는 거죠. 말하자면 대성당이 침례교회 건물과 어떻게 다른지 아시느냐는 거죠."

 

 그러자 맹인은 종이와 펜을 가져오라고 한 뒤 두 사람의 손을 겹쳐 잡고 같이 대성당을 그려보자고 한다. 대성당을 그리면서 맹인이 말한다.

 

 "자네 인생에서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 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그림을 그리던 중에 맹인은 주인공한테 눈을 감고 다시 둘이 같이 그림을 그리자고 한다.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들이 내 손가라들을 타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서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옮긴이 김연수는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자신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비로소 타인과 세계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 목소리를 통해 '뭔가'를 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집이다."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한번도 자전적인 것을 쓴 적은 없지만, 내 작품은 대부분 나 자신에 대한 것들입니다."

 

 열광할 만큼 와닿는 소설은 없었다. 다만 <열>에서

 

 ""암시가 중요한 거야>"..."의도가 보이면 그건 그림을 잘못 그린 거야. 알겠니?"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창작이라는 게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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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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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그림을 볼 때 그림 옆에 쓰여 있는 한자 글귀 내용이 궁금했다. 그 글귀 속에서 어쩌다 아는 글자 몇 개로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림을 보는 것보다 그 글의 내용을 더 이해하고 싶었다. 정민의 책을 읽고 유홍준의 책을 읽어도 그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만나게 된 책이다.

 위에 나온 책과 내가 가진 책은 표지가 다르다. 위의 책과 마찬가지로 2011년에 아트북스에서 나왔지만 뒤에 나온 책이라 그런가보다.

 모두 26개의 그림과 시를 소개하고 있다. 김홍도 최북 강세황  안견 심사정 김정희 정선 등의 이미 많이 알려진 그림 뿐만 아니라 박제가 장득만 허필 등의 그림도 있다.

 두번 째 그림/시 장득만의 <송하문동자도>에 쓰여진 시는 가도의 <심은자불우>에 대한 얘기이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말하길, "스승께선 약초 캐러 가셨어요.

  이 산속에 계신데,

  구름 짙어 어딘지 알 수 없어요.""

 

 이어서 '시정을 어떻게 그리나'라는 꼭지글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애당초, 시를 그림으로 그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은 오래도록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되어왔다. 우선, 시간의 흐름 속에 드러나는 시간예술 문학을 어떻게 공간에 펼쳐내는 공간예술 그림에 옮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이 시와 그림에도 적용된다. 시인의 질문과 동자의 답으로 진행되다가 구름 자욱한 산을 바라보는 방문객의 망망함으로 끝을 맺는 흐름, 그 시간적 전개에서 드러나는 운치와 소박한 해학을 한 폭의 그림에서 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형상을 묘사한 언어표현이라면 그림이 전하기 좋지만, 언어로만 전달되는 추상의 개념을 그림으로 전하기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시인이 은자를 말하기 위하여 은잘를 저 깊은 산속에 숨겨버렸듯이, 그림이 이 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에서 중요한 무엇을 반드시 숨겨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옛그림 속의 글귀가 화가의 창작문이 아니라 대체로 중국 고사나 사서삼경 속의 글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었다. 우리 옛그림과 그 속의 글들의 관계를 볼 때, 그림감상이 중할까, 글 속에 담고 싶었던 뜻이 중할까. 물론 둘 다 중하겠지만,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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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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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고 글쓰는 일을 그저 일상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며 산다. 나의 글쓰기는  세상에 내놓는 게 목적이 아니라 수행자처럼 그렇게 일상으로 여겼기에 글을 다듬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손에 들어온 이 책은 의외의 가르침을 주었다.

 먼저 일종의 문장론에 가까워 딱딱하기 쉬운 책을 소설보다 더 멋진 구성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교정 교열 작업을 하는 저자에게 어느 날 메일이 와서 묻는다.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하고. 그렇게 이 책은 시작하여 마지막에 그 메일 발신인 정체를 밝히는 걸로 끝을 맺는다. 추리소설을 읽듯 흥미진진한 진행에다 문장을 다듬는 일에 대한 본문 내용이 그 어떤 글쓰기 이론서보다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단편 소설을 쓰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저저의 책 <동사의 맛>과 <소설의 첫문장...>을 더 사서 읽었다. 저자의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내 문장이 확연히 달라졌다. 문장이 달라진다는 것의 느낌은 수행자의 수행의 단계가 올랐음을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 책은 문장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소설 한편을 읽는 것 못지 않게 행간에서 멈추게 하는 부분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원칙이라고 여기지 못하는 원칙, 그건 누구나 문장을 쓸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써 나간다는 것이다.

 이 말은 누구나 문장을 읽을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나간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 문장을 읽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 문장을 쓰는 방법도 그와 다를 수 없다.

 더군다나 한글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다.

 ...영어 문장의 되감기는 공간으로 의미를 만들었다면 한글 문장의 펼쳐 내기는 시간으로 의미를 만든 셈이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이다.

 ...'나는.....'이라고 쓰는 순간 글을 쓰는 '나'는 이미 자신과는 다른 '나'를 창조하는 셈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수많은 나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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