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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다시, 책은 도끼다》를 통해 읽게 되었다. 금박으로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을 펴면 ‘이 책에서 마주할 순간들’이 나온다. 1416년의 랭부르 형제의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컬러 그림과 짧은 설명으로 시작해서 1993년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까지, 600년 가까이의 세계사 속의 그림들을 한눈에 훑어보게 돼 있어 마음에 들었다. 책 시작하는 글 <‘세계의 살’을 다루는 예술, 인간 자취로서의 예술사>를 1.2.3.4으로 나눠 쓰고 있다. 그 중에
“당신과 나를 아우르는 방대한 집필 프로젝트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감행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신과 나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것 덕분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과’가 있다. 당신과 나를 하나로 묶어 주는 and는 바로 이야기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이야기는 당신과 내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다리다. 이야기는 멀뚱멀뚱한 타인이었던 당신을 내 곁으로 오게 하는 마법의 도구다.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그 힘에 대한 믿음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이야기는 지식과 지혜를 동시에 전달하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라는 작가의 생각에 매우 깊이 공감한다. 꽤 긴 시작하는 글이 끝난 다음 ‘차례’가 나오는데, 1에서 23까지의 숫자가 매겨져 있다. ‘인쇄술 혁명이 촉진한 종교개혁’ 중 “1448년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 활판 인쇄술은 종교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텍스트는 혁명을 가져온다는 논리의 첫 번째 예가 바로 종교개혁이다.”(103쪽)는 평소 읽고 쓰기를 멈출 수 없는 나 자신 때문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의 중반부쯤 ‘개인의 탄생’에서
“아마 17세기에 그려진 많은 기적 같은 그림들 중에서 가장 낯설고 독창적인 그림 중 하나가 바로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일 것이다. ‘자화상’이라는 용어도 없던 시대에 렘브란트는 유화 사십여점, 동판화 삼십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어떻게 표현하고 기록하든 렘브란트의 유일한 관찰대상은 바로 ‘나’다. 렘브란트에게 ‘나’라는 개념은 자명한 것이 아니었다. 불명확한 자아에 대한 탐구는 종교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렘브란트에게 있어 ‘렘브란트’란 영원한 소재이자 주제다.”
자화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화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소설가들도 그들이 쓴 소설 속에 수많은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고 생각된다. 이어서 이 글의 마무리 부분에(182쪽)
“팔십 년을 상회하는 긴 시간을 살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타인과의 변덕스러운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고, 그 속에서 무한한 기쁨과 절망을 느껴야 한다. 렘브란트가 앓았던 그 고독과 불안이라는 병을 우리 역시 앓는다.”
는 부분은 포스트잇에 따로 적어 붙여두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작품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는 독일에 여행가게 되면 꼭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작품이다. 전쟁 희생자를 위한 기념관에 설치된 이 작품은 천정에 구멍이 뚫려 있어 눈비를 맞고 있다. 책은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인류의 오래된 굼을 확인하고 그 꿈을 이어 가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