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발톱
엄창석 지음 / 민음사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황금색 발톱1,2부로 나뉘져 있다. 1부는 후기 자본주의의 서설이고, 2부는 푸른 방, 소녀이다. 첫페이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에로티시즘은 모두의 교차로이다-조르주 바타이유라고 짧은 부제가 붙여져 있다. 이어 색칠하는 여자가 시작된다.

 

21 전 그때 성기 안에 엄첨난 권력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았어요.”

 

27 “...내가 더 이상 일관된 침묵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은 지난 4월 달의 화보에서였다. 성기의 직접적인 변형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모니카 같은 아름다운 은유는 이미 아니었고, 속이 일그러지거나 부식된 하모니카처럼 절망스런 상징도 아니었다. 독사의 아가리 모양으로 탐욕스럽게 벌어진 허공, 난잡한 섹스 뒤에 흘러내린 (사진의 설명) 검붉은 자궁子宮 따위가 성기의 본 모습인 양 조작되고 있었다.”

 

38 “...무역센터에서 내려다보는 시가지 정경에 손이 멎었다. 한 장 가득 들어차 있는 빌딩군. 빌딩들이 껍질을 벗기 시작하고, 콘크리트들이 녹아내린다. 창문과 층들의 경계가 사라지자 빌딩은 짐승들의 거대한 성기로 변한다. 한 장 가득 들어차 있는 짐승들의 성기들. 맨 뒷장의 화보는 난지도 같은 쓰레기 더미를 찍은 사진이었다. 부서진 텔레비전. 깡통, 깨진 주전자. 날개 찢어진 잠자리...... 잡초들가지 뒤섞여 있는 온갖 쓰레기 틈 사이에 언젠가 보았던 뱀이 똬릴 틀고 있고, 흘러내린 자궁이 살바드로 달리의 휘어진 시계 위에 걸려 있었다.”

 

 

 

<황금색 발톱>

 

  두 번 째 작품이 표제인 황금색 발톱이다. 글 속 화자인 가 오촌 아저씨의 아들인 김필릉 씨가 지구의 자전自傳을 보았다고 알려온 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50 “...이상스런 열정과 몰두가 그의 관습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였다. 책 찾기가 열흘을 넘기면서 그는 사회적인 규율을 흐리게 하였다. 책 찾기가 열흘을 넘기면서 그는 사회적인 규율을 팽개칠 수밖에 없었다. 규율에 얽매여서는 <발견>의 눈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암시를 받았던 것이다.”

 

51 <세계 괴기담 모음집>이라고 씌인 책 111쪽의 글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짐승이로다. 늙은 코끼리의 복부이듯 주름진 가죽 위로 짧은 털이 송송 돋아 있고 구름처럼 느릿느릿 움직였으되 실상은 엄청난 빠르기였다. 내가 기거하는 동굴 앞에서 그 짐승을 본 것은 알라께 찬미할 때였으니...... . , 무서워라 육지 위로 올라선 바다의 모습이라. 이랑이 이랑을 삼키고 포세이돈의 성남에 거칠 것이 없도다......>

 

 

---> 위에 인용된 글은 아부 디야르의 글이라고 소개돼 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아부 디야르라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잘랄 알딘 루미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나는 한 때 루미 시인의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를 좋아해서 동아리 카페에 올리기도 하고, 그의 책을 사보기도 해서 루미가 이슬람 신비주의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부 디야르를 두고 놀라운 비범성에는 자신이 못 미친다.’고 루미가 실토했다는 내용이 책 속에 있었다. 루미 시인이 인정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아부 디야르가 젊은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사막에 얼굴을 박고 죽었는데, 폐부 속에 (목 안에) 모래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고 하니, 기이한 질식사를 한 셈이지.”라고 김필릉의 친구가 통화로 알려주었다. 황금색 발톱작품 속의 거대 짐승의 이야기는 신비롭지만 두렵기도 한 이야기였다.

 

 

 

<육체의 기원>

 

  세 번째 작품은 소설기계라는 이름의 글이고, 네 번째가 육체의 기원이다. 이 이야기 속에도 신비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야기 속 한 인물이 배꼽이 자라는데, 그 자라는 배꼽을 자르는 수술을 하다가 죽는다는 내용이다.

 

104 “...욕망이 기관을 만들어낸다.”

 

106~107 “...궁금증이란 가장 세련된 포장지인 것이다...오히려 가장 뛰어난 진리일수록 모순의 틈바구니 속에서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가.”

 

120 “...하하, 제가 보기에 이 글은 전체적으로 일종의 은유인 듯합니다. 격심한 노동에 시달리는 노예들의 배에서 배꼽이 자란다. 그들은 지난 수십 년간 몸을 웅크리고 거북이 옷 속에서 잠을 잤고, 줄곧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다 보니 정말 태아가 된 듯 배꼽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런 얘기지요...... 육체가 심한 고통을 받은 끝에 급격한 퇴행이 이뤄졌다는 뜻인지, 일종의 자기 생존 방식을 뜻하는지는 확실치 않군요......하지만 배꼽을 통해 살려달라고 손을 내미는 장면은 눈에 선한데요. 견딜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이 확연히 전달되잖아요. 좋은 은유란 그 글을 스치기만 해도 은유 자체가 더 활동을 하지요.”

 

 

126 “...혹시, 그 분 자신이 은유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닐까요? 은유처럼 보였던 옛 글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 쪽이, 그러니까 차라리 자신을 은유화시켜 버리는 쪽이, 현실을 피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는지요.”

 

 

--->은유란 그 글을 스치기만 해도 은유 자체가 더 활동을 한다는 것과 은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은유에 대한 해석, 이런 장면이야말로 글을 읽는 재미를 알게 해주는 요소들이라고 생각한다.

 

   

  

<남쪽 원숭이>

 

  다음 작품 합창<빨간 염소들의 거리>에 나오는 부분이기도 했다.

  여섯 번째 작품은 남쪽 원숭이이는 화자의 사촌형인 모창가수의 이야기이다.

 

174 “...농담의 살상력을 아시오. 농담이 사회현상이 될 때 그것은 흉기로 변하는 거요. 농담은 원래가 실체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데서 발생하기 때문에 흉기와 다름없다 이 말요...실체를 살해하는 게 농담이지만 농담의 살해는 진담이 아니어, 재생산된 또 다른 농담이지요. 연쇄적인 농담을 강요하는 것이 그 흉기의 본질이란 말요. 아시겠소? 댁의 형님은 바로 그 흉기(농담)의 칼날 위에 서 있기에 그래서 불쌍하우.”

 

177 “...그 생명이고 이데아라는 것이 사람들에겐 한낱 농담에 불과하다고 말하면 형은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농담이라는 제목으로 아예 책을 쓰기도 했다. ‘농담이 살해하는 것은 진담이 아니라 재생산된 또 다른 농담이라는 역설 같은 진술이 책을 덮고도 여운이 남았다.

 

2부에는 푸른 방에는 기린이 산다소녀, 항구에 닿다두 편이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2부의 두 단편은 본 주제와 관련이 없는 소품들이다. 나로서는 이런 소품들을 쓸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가장 즐겁다는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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