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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형식 ㅣ 책세상 작가선 6
엄창석 지음 / 책세상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유혹의 형식≫은 주인공 ‘나’가 소설 속 ‘소설가 J씨와 시점에 관한 소설작법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고도 되어 있듯이 시점이 혼재돼 있다. ‘삼인칭 시점 속에서 일인칭 화자를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주인공 ‘나’는 ‘‘일인칭 개입 삼인칭 소설’이라는 생소한 명칭을 붙이고 있다.’ 소설은 ‘여자’가 첫 등장인물로 시작되었다가 ‘나’가 나와 이야기를 진행시키다가‘ 곽정’이라는 인물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다시 ‘나’가 곽정의 삶속에 등장하게 된다. 책의 뒷부분에 작가의 인터뷰 내용도 실려 있다.
15쪽 “...사람은 누구나 겉으로 종사하는 부분과 자기 일생의 무게가 쏠려 있는 곳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타인의 삶은 피상적이고 거짓이며, 우울하다. 근원적인 욕망은 따로 뿌리를 내린다...애초의 신성한 단순성이 깨지는 상태를 곧 유혹이라 하고, 유혹의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라고 했다. 야나키타의 저서는 그 같은 개념으로 역사적 사실을 진술해나갔다. 이를테면 시간과 싸우기 위해 문자를 발견하고 흐르는 공간을 잡아두기 위해 자尺를 만들었다고 한다.”
--> 책 제목에도 들어있는 ‘유혹’은 야나키타라는 일본인의 책제목 ≪유혹의 옹호≫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애초의 신성한 단순성이 깨지는 상태를 곧 유혹이라 하고, 유혹의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라고 했다.’는 부분에 연필로 밑줄을 긋고 책을 덮었다.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러한가, 내 삶 또한 그런가, 신성한 단순성은 어디쯤에서 깨어진 것일까, 뭐 이런 생각들이었다.
이 책은 줄거리며 책 속 문장을 짚기보다 뒷부분의 인터뷰 내용에서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작가는 곽홍란(문화예술 MC)과 ‘유혹 앞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가졌다.
181쪽 “...앞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다양한 문체를 가지게 된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저는 문체라는 것은 작가의 특성이라기보다 개별 작품의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182쪽 “...독자에 따라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사실 가장 소망하는 것은 시적인 감각이 가득 배어 있는 문체입니다.
---> 나는 시적인 감각이 가득 배어 있는 문체의 대표적인 국내 소설이 조세희의 ≪난·쏘·공≫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중에 문장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었다고 작가도 말하고 있다. 조금 건방진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어쩌면 그래서 엄작가의 작품들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89쪽 “...‘화살과 구도’라는 말은 어떤 구도 속에 화살이 날아들었다는 뜻이죠. 말하자면 ‘구도’는 현 세상의 정황을 가리키는 것이고, ‘화살’은 어떤 이상을 상징하는 것이죠. 구도하는 것은 세상을 작가로서 객관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의도이고, 화살은 저의 시적, 문학적 공격성을 뜻합니다.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를 읽으면서 왜 책 제목이 활과 리라일까를 계속 생각했었다. 화살과 구도에 대한 작가의 말에서 다시 ≪활과 리라≫를 펴서 읽다가 그만, 계속 읽게 되었다.
190쪽 “저는 문학이라는 것을 발견이라는 말로 종종 대치합니다. 성찰이나 고백에 대해서는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작품을 쓸 때는 늘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살펴가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끼는 편이죠.”
210쪽 “...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야릇한 두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작품을 쓰면서 제가 당한 여러 난관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난관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205쪽 “...작가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작품이 일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죠. 작가는 인물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인물이 다 말을 했기 때문이죠.”
--->우습게도, 전업 작가도 아닌 나 역시 혼자 이런 저런 글을 쓰면서 연초에 장만한 일기장을 거의 펼치지 않게 되었다. 글을 읽거나 쓰다가 퍼뜩 생각나는 내 일상을 노트북 한글에 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주로 이전에 쓰다만 글을 다시 읽으며 수정을 하거나, 구상중인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글은 내가 쓰지만 글 속에서 인물이 어떤 삶을 살지 나 자신도 궁금해지는 일이 소설을 쓰는 일이 아닐까.
207쪽 “...제가 조금 전에 작품을 쓰는 것은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고 그랬죠. 우리는 한 여행지에 있는 동안 다음 여행지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작품을 진행할 때 그 자체로서 작품에 몰두하지만, 그 시간은 다른 곳을 찾아가고 싶은 욕망이 깃드는 시간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