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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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좋았던 소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소설속의 서사도 좋았지만 그의 문장도 딱 마음에 들었다. 35년 째 폐지 압축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라니, 설정이 신선했다. 옮긴이의 말에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두고 흐라발 자신은 자신의 삶과 작품 전체를 상징하는, 그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세상에 온 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쓰기 위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짙은 초록의 책 표지부터, 두께 등 책 자체도 사랑스러웠다. 책을 읽고 난 뒤 주위 사람들에게 권했더니, 반응이 의외로 시큰둥한 이도 있어 의아했다. 두 번째 페이지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하지만 이 일을, 신께서 축복하신 이 작업을 완수할 힘을 얻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맥주를 마셨다."

 

부분에 ^^표시를 따로 했다. 나 역시 내 삶에 충실하기 위해 반주를 즐기기에. 그리고 그 아래

 

 "...진정한 생각들은 바깥에서 오기 때문이다...진정한 책이라면 어김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를 가리킬 것이다."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내 삶에 있어서 책이 그랬던 것 같다. 책의 가리킴이 있어 오늘의 나도 있을 수 있다는.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다음 장면이다. 주인공의 외삼촌은 철도원으로 사십 년을 일하며 건널목 차단기를 오리거나 내리며 선로 변경을 책임졌던 사람이다. 외삼촌은 은퇴 후에 국경 지대의 한 폐쇄된 역에서 낡은 선로 변경 장치를 사들여 자기 집 정원에 설치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기관차를 타고 정원을 돌았는데. 어느 날 주인공이 그 곳을 찾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언젠가 나와 내 압축기가 머무를 장소를 찾기 위해 외삼촌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밤이 되자 환하게 불을 밝힌 기관차가 오래 된 과일나무들 사이로 방향을 틀며 질주했다. 선로 변경 통제실에 앉은 외삼촌 역시 자신의 기관차 못지않게 몸이 달아올라 부지런히 레버를 움직였고, 큼직한 알루미늄 컵이 사방에서 빛을 발했다. 나는 아이들과 은퇴한 노인들의 고함소리와 환호성을 들으며 걸어갔다. 그러나 와서 합류하라고 부르는 사람도, 한잔하고 싶은지 내게 묻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놀이에 빠져 얼이 나가 있었다. 놀이라고 해봐야 그들이 평생토록 애정을 쏟았던 일의 반복에 불과했지만. 나는 카인처럼 이마에 표적을 지닌 채 걸어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어슬렁거리다가 그곳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나를 불러줄 수도 있었으련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문을 나서면서 나는 또 한번 뒤돌아보았다. 초롱과 선로 변경 통제실의 불빛 속에서 아이들과 노인들의 형상이 어렴풋이 흔들리고 있었다. 기관차가 타원형 선로 위에서 휘파람 속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할 판이었다! 크랭크 오르간에서 흐르는 변함없이 똑같은 노래 같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죽을 때까지 다른 것에는 귀기울일 수 없게 만드는 선율이랄까. 그래도 문가에 서 있으려니 외삼촌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외삼촌은 줄곧 나를 보고 있었고, 내가 나무들 사이에서 갈 곳 몰라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종 조종 장치에서 손을 들어 , 한 몸짓으로, 그저 대기를 진동시키는 듯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나도 어둠 속에서 그의 인사에 답했다. 서로 엇갈리는 방향으로 떠나는 두 열차에 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는 모습이랄까."

 

 책을 읽고 꽤 오랫동안 가슴이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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