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누운 밤 창비세계문학 39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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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리오 꼬르따사르는 지난 해 들은 소설수업 때 교수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수업 시간에 예로 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작가의 중단편집 <드러누운 밤>(박병규 옮김, 창비 2017)을 구입했다. 지난 해 12월 11일이었다. 거의 한달 만에 다 읽었다. 소설책을 이렇게 오래도록 읽기도 참 드문 경우였다. 그만큼 저자의 문장를 따라가는 일이 힘들었다.

 이 책에는 모두 14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이 실려있다. 하나 같이 평범하지 않은 소설들이다. 특히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편지를 쓰고 있는 주인공이  입에서 토끼를 토한다. 토끼를 토한다는 사건 자체도 비논리적이지만, 문장들도 그렇다.

 예를 들면

 

  "...습관이란 리듬이 구체화된 형식입니다. 리듬이 우리 삶을 도와주고 받는 요금입니다."

 

이런 식이다.

 

 그리고 또 <비밀 병기>편에서

 

 "그는 미셸의 손 위에 손을 얹는다. 미셸은 나머지 한 손을 삐에르의 손 위에 얹고, 삐에르도 나머지 한 손을 미셸의 손 위에 얹는다. 미셸은 밑에 있는 손을 빼내 위에 얹고, 삐에르도 밑에 있는 손을 빼내 위에 얹는다. 미셸은 밑에 있는 손을 빼내 삐에르 코에 손바닥을 대본다."

 

 의미있는 반복인지 아닌지,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으나 소설들을 읽다보면 부분 부분에서 희곡을 읽고 있는 듯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하나도 재미없는데, 이상하게도 책을 덮어버릴 수 없는 묘한 매혹이 작가의 능력이라고 여겨졌다.

 책 날개 작가소개글에는 "빛나는 상상력으로 가르시아 마르께스, 바르가스 요사 등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 붐 소설을 주도했으며, 전세계를 통틀어 20세기 가장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의 하나로 꼽힌다...이같은 독서경험은 다양성과 이질성의 세계, 우연성과 예회성을 포함하는 삶이라는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쓰여있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 쓴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내가 참 구시대인이구나 하고 반성하게 했다. 작가의 소설에서 '서사'는 이미 그 의미를 잃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단선적일 수 없듯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 역시 복잡하고 설명하기 곤란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마지막에 <작품 해설>에서 옮긴이도 말한다.

 

 "꼬르따사르 단편은 보르헤르 단편처럼 역자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매우 좁다. 재량을 발휘하여 맛깔스럽게 표현하고 싶은데도 다음 구절이 이를 용남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원문을 충실하게 옮긴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렇기에 의역이 아니고 직역일 수가 있고, 그래서 더 작가의 문장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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